이풍 (조선)

조선 왕족, 문신,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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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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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족, 문신, 종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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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왕족 출신 문신 이풍은 덕흥대원군의 9대 사손으로, 1727년 태어났다. 돈녕도정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영조와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가선대부, 가의대부, 판돈녕부사 등에 올랐다. 《선원보략》 교정 및 수정 작업에 참여하는 등 주요 왕실 업무를 수행했으며, 1795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애는 왕실 종친으로서 국가에 봉사한 삶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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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7

[이풍 탄생]

조선 후기 왕족 출신 문신 이풍이 태어났다. 그는 덕흥대원군의 9대 사손이다.

1727년 10월 23일, 조선 후기 왕족 종실 출신의 문신 이풍(李灃)이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이며, 덕흥대원군의 9대 사손이다. 초명은 양, 자는 양지, 호는 매은이다.

1759

[돈녕도정 제수]

아버지가 별세하자 거상(居喪)을 마친 후, 돈녕도정에 제수되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759년, 아버지가 돌아가자 3년상을 마치고 돈녕도정(敦寧都正)에 제수되었다. 이는 이풍의 공식적인 관직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1770

[영조에 의해 가선대부 승진]

영조가 덕흥대원군묘에 전배(展拜)한 후, 이풍을 가선대부로 승진시키고 동지돈녕부사 겸 부총관에 제수했다.

1770년, 영조가 대원군묘(덕흥궁)에 전배(展拜)한 후, 이풍에게 가선대부(嘉善大夫) 품계를 가자하고, 이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겸 부총관(副摠管)에 제수하였다.

1782

[《선원보략》 교정 당상 임명]

왕실 족보인 《선원보략》의 교정 당상으로 임명되어 중요한 왕실 기록물 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1782년 12월 20일, 이풍은 왕실 족보인 《선원보략(璿源譜略)》의 교정 당상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왕실의 중요한 기록물을 관리하고 정비하는 핵심적인 역할이었다.

1783

[자헌대부 승진 및 파직]

자헌대부로 승진하여 지돈녕부사에 제수되었으나, 곧이어 《선보》의 잘못된 기록에 대한 책임을 물어 파직되었다.

1783년, 이풍은 자헌대부(資憲大夫)에 가자되어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제수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13일, 《선보》에 잘못 기록된 내용에 대한 책임을 물어 파직되는 등 관직 생활에 부침을 겪었다.

1788

[판돈녕부사 제수]

문희묘 향관을 맡은 후 숭정대부로 승진하고, 이어서 판돈녕부사에 제수되며 고위직에 올랐다.

1788년, 문희묘(文禧廟) 향관(享官)이 되어 숭정대부(崇政大夫)에 가자되었고, 최고 품계에 가까운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제수되며 관직 생활의 정점에 도달했다.

1795

[이풍 별세]

향년 69세로 별세하여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마감했다.

1795년 6월 30일, 이풍은 향년 6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첫 부인 진주강씨와 합장되었으며, 그의 신도비는 아들 진안군 이언식이 찬하고 둘째 이민식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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