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근 간첩 사건

간첩 사건, 정치 사건, 인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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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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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고위급 인사의 극적인 탈북 사건. 대한민국 정권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다 제3국 망명 시도 중 체포. 위장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한 비운의 인물. 사후 49년 만에 재심을 통해 간첩 혐의 무죄 선고를 받으며, 권위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인권 침해 및 사법 농단 사건으로 기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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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숙청 위기 속 남한 탈출 결심]

메이데이 행사 후 숙청될 것을 눈치챈 이수근이 남한으로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이수근은 5월 1일 메이데이 행사가 끝나면 숙청될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숙청 대상이 될 바에는 남한으로 탈출할 것을 결심한다.

[북한 당에 의해 충성심 의심받음]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 김일성 찬양 기사 불충분으로 당 간부에게 꾸지람을 듣고 충성심을 의심받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은 북한군 창설기념일 기사 작성 시 김일성의 항일투쟁 강조 부분이 불충분했다는 이유로 당 간부에게 꾸지람을 듣고 그 후부터 당은 충성심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북한 이수근 부사장, 판문점 통해 대한민국 귀순]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이 판문점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극적으로 귀순하여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수근은 제242차 군사정전위원회에 출입기자로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판문점으로 나와 오후 4시 30분경 유엔사령부 전사편찬담당관에게 남한으로 탈출할 뜻을 전했다. 그는 북한 경비병의 저지를 뚫고 극적으로 자유의 집 언덕을 넘어 남한으로 귀순하는 데 성공했다.

[이수근, 북한 정권에 대한 환멸과 자유 갈망 표명]

이수근이 남한으로 넘어온 후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을 신문사에 보내 북한 정권에 대한 환멸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드러냈다.

이수근은 남한으로 탈출한 다음 날, 경향신문과의 수기에서 "누구의 납치나 유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이 자기의 결심으로 자유를 찾았다", "나는 지식인들을 야만적으로 취급하며 사람들에게 정치적 감투를 씌워 오금을 못 펴게 들볶는 북조선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고 밝히며 자유세계에서 보람 있게 여생을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북한, 이수근 강제 납치 주장 및 송환 요구]

북한은 이수근이 남한에 의해 강제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며 송환을 요구했다.

북한은 이수근의 탈출 다음 날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회의에서 그가 남한에서 강제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며 돌려보낼 것을 요구했다. 3월 25일에서 26일 사이에 평양방송을 통해 이수근의 형, 처, 자녀들의 육성을 포함한 방송을 3회에 걸쳐 내보내며 강제 납치 주장을 강화했다.

[대한민국, 이수근 귀순 대대적으로 환영]

한국 언론은 이수근의 극적인 탈출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서울시민 환영대회를 개최하는 등 그의 귀순을 열렬히 환영했다.

1960년대 북한이 남한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던 시기였고 박정희 정권 하에 있었기에, 북한 고위급 인사의 귀순은 정권 차원에서 대대적인 선전 수단이 되었다. 언론은 그를 자유를 찾아 극적으로 탈출한 인물로 보도하며 서울시민 환영대회 등 각종 행사를 통해 열렬히 환영했다.

[중앙정보부, 이수근을 국민승공 계몽 사업에 활용]

중앙정보부는 이수근을 7국 1급 판단관으로 대우하며 국민승공 계몽 사업에 활용하고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중앙정보부는 귀순 당시 위장귀순이 아니라고 판단한 후, 이수근을 7국 1급 판단관으로 대우하여 국민승공 계몽 사업에 활용했다. 군부대 및 산업체를 견학시키고 정착금을 지급하며 우석대 조교수 이강월과의 결혼을 주선하고 수기 '장막을 헤치고' 집필을 허용하는 등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

1968

[이수근, 암호문 편지 작성 (논란)]

이수근이 배경옥의 집에서 배경옥에게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우송해 달라며 암호문 편지를 작성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수근은 배경옥의 집에서 "당중앙위원회 5호댁 앞"으로 시작하는 암호문 편지를 작성하여 성경책 표지철 후면에 삽입, 배경옥에게 모스크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우송해 달라고 교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암호문은 증거물로 제출되지 않았으며 배경옥은 고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며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1969

[이수근, 제3국 망명 시도 중 홍콩으로 출국]

이수근이 처조카 배경옥과 함께 위조여권으로 태국을 경유하여 홍콩으로 출국, 캄보디아로 향하며 제3국 망명을 시도했다.

오후 5시 30분, 이수근은 처조카 배경옥과 함께 인장업자 오제녕 명의로 위조한 여권을 이용해 김포에서 홍콩행 비행기에 탑승하여 국외로 탈출했다. 그는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로 향할 계획이었다.

[홍콩 공항에서 한국 영사관에 의해 체포 시도]

이수근이 캄보디아 프놈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홍콩 공항에 나타났을 때 한국 영사관 직원들이 체포하려 했으나 홍콩 경찰의 개입으로 억류되었다.

오후, 이수근과 배경옥은 목적지를 캄보디아로 변경하고 프놈펜행 CPA기를 타기 위해 홍콩 공항에 나타났다. 한국 영사관 직원들이 이들을 체포하려 하자 홍콩 경찰이 이들을 연행했고, 영사관 직원들은 외교관 특권에 의해 즉시 석방되었으나 이수근과 배경옥은 억류되었다.

[이수근, 베트남 사이공 공항에서 중앙정보부에 체포]

캄보디아로 향하던 이수근이 베트남 사이공(현 호치민) 공항 기내에서 중앙정보부 직원에게 체포되어 한국으로 압송되었다.

아침, 홍콩발 캄보디아 프놈펜행 CPA기에 탑승한 이수근과 배경옥은 경유지인 베트남 탄손누트 공항에 도착했다. 기내에서 대기하던 중 베트남 당국의 협조 하에 중앙정보부 직원들이 기내에 들어가 이들을 체포했다. 이후 그날 밤 한국 공군기 편으로 김포를 거쳐 2월 1일 한국으로 압송되었다.

[중앙정보부, 이수근 위장귀순자로 발표]

중앙정보부가 동아일보를 통해 이수근을 북한의 지령을 받은 위장귀순자로 발표하고 철야수사 진행 중임을 알렸다.

중앙정보부는 동아일보를 통해 이수근이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을 통해 월남한 전 중앙통신사 부사장 이수근(45)이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위장귀순했으며, 해외 탈출을 시도하다 체포되었다고 발표했다. 또한 현재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을 적용, 철야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수근, 1심에서 사형 선고]

서울형사지법은 이수근에게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했다.

서울형사지법은 이수근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판문점을 통해 잠입한 후 국가기밀을 누설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기 위해 대한민국을 탈출했다는 혐의 등으로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죄로 사형을 선고했다. 함께 붙잡힌 배경옥도 간첩방조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수근, 사형 집행]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수근이 항소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된 후 두 달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이수근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고 밝혔음에도 항소를 하지 않아 형이 확정되었다. 항소하지 않은 채 두 달 후 사형이 집행되었다.

[배경옥,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이수근과 함께 기소되었던 배경옥이 항소심에서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수근을 포함한 피고인 7명 중 항소했던 4명에 대한 항소심이 선고되었고, 이 과정에서 배경옥은 1심의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이수근은 배경옥의 2심 판결일보다 앞선 7월 2일에 사형이 집행된 상태였다.

1989

[조갑제 기자, 이수근 간첩 혐의 부정 기사 발표]

월간조선 기자 조갑제가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는 기사를 통해 이수근이 북한의 이중간첩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기자였던 조갑제 씨는 월간조선 3월호 기사 '이수근은 간첩이 아니었다'에서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및 중정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이수근이 북한의 이중간첩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며 사건의 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배경옥, 복역 20년 만에 출소]

무기징역형으로 복역하다 20년형으로 감형되었던 배경옥이 마침내 출소했다.

이수근 간첩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20년형으로 감형되었던 배경옥이 출소하여 자유의 몸이 되었다.

2008

[배경옥 재심 무죄 선고, 이수근 혐의 재조명]

서울고등법원이 배경옥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이수근씨를 위장간첩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은 이수근 사건으로 기소되었던 배경옥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이수근씨를 위장간첩으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명시하며 이수근의 간첩 혐의에 대한 의문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2009

[조갑제, 이수근 간첩 혐의 재반박 책 출간]

조갑제 씨가 '이수근은 역시 간첩이 아니었다'는 책을 출간하며 이수근의 무죄를 다시 한번 주장했다.

월간조선 기자였던 조갑제 씨는 '이수근은 역시 간첩이 아니었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며 과거의 기사 내용을 더욱 심화하고 이수근의 간첩 혐의가 조작되었음을 다시 한번 주장했다.

2011

[법원, 이수근 재심 청구권 없음으로 기각]

배경옥 씨가 이모부 이수근을 대신하여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배경옥 씨에게 재심청구권이 없다며 이를 기각했다.

배경옥 씨는 사형 집행된 이모부 이수근의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에 따라 사망자의 재심은 검사, 배우자, 직계친족 또는 형제자매만 청구할 수 있는데, 이수근은 홀로 귀순했으므로 배경옥 씨에게는 재심청구권이 없다는 이유로 법원은 청구를 기각했다. 사실상 검사만이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다.

2016

[검찰, 이수근 재심청구 기각 결정 통보]

대검찰청에 접수된 배경옥 씨의 진정에 대해 검찰이 이수근 재심청구사유가 없다는 결정을 통보했다.

대검찰청에 이수근 재심을 위한 진정을 접수했던 배경옥 씨에게 3년이 경과한 2월, 검찰은 재심청구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정문을 통보하여 재심의 문턱을 다시 높였다.

2017

[대검찰청, 이수근 사건 포함 인권침해 사건 재심 청구]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대검찰청이 이수근 위장간첩조작사건을 포함한 권위주의 정부 시기 인권침해 사건 7건에 대해 직접 재심을 청구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인 9월, 대검찰청은 이수근 위장간첩조작사건 등 권위주의 정부 시기의 인권침해 사건 7건에 대해 검찰이 직접 재심을 청구했다. 이는 검찰이 재심 청구권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과거사 정리에 나선 중요한 사건이었다.

2018

[이수근, 사형 집행 49년 만에 간첩 혐의 무죄 선고]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가 이수근의 간첩 혐의에 대해 마침내 무죄를 선고했다.

사형이 집행된 지 49년 만인 10월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이수근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권위주의 정권 시기 조작된 간첩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고 희생자의 명예가 회복된 중요한 역사적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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