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당나라)
당나라 시인, 관료, 정치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3:01
만당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관료 정치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궁정 파벌 싸움에 휘말려 변절자로 낙인찍히며 불운한 관직 생활과 고독한 삶을 보냈다. 그는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화려하고 관능적인 독특한 시세계를 구축, 특히 연애시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했다. 그의 시는 후대에도 큰 영향을 미쳐 서곤체의 시조로 평가받았으며, 왕안석에 의해 시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 받았다.
812
중국 당나라의 관료 정치가로 만당을 대표하는 한시인 이상은이 812년 또는 813년에 태어났다. 그의 자는 의산, 호는 옥계생 또는 달제어이다. 회주 하내(지금의 허난성 친양 시) 출신이다.
821
[이상은의 아버지 이사 사망]
이상은이 10세 되던 해, 아버지 이사(李嗣)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일로 이상은의 집안은 더욱 어려워졌다.
당의 종실에 해당했지만 몰락하여 지방관료로 지내던 이상은의 아버지 이사가 이상은이 10세 때 병으로 사망했다. 이로 인해 어린 이상은은 다른 두 동생과 여섯 명의 자매와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3년상을 마친 뒤 낙양으로 이주했다.
837
[영호초의 비호 아래 진사 급제]
26세의 나이로 우이당쟁의 우승유파 중진 영호초의 비호를 받아 진사에 급제했다. 이는 그의 관직 생활의 중요한 시작점이었다.
837년, 26세의 이상은은 당시 궁정 관료들의 파벌 싸움인 우(牛)·이(李)의 싸움 가운데 우승유파의 중진인 영호초의 비호를 받아 진사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839
[파벌 갈등 속 왕무원의 비호와 교서랑 임명]
영호초 사후 이덕유파 왕무원의 사위가 되고 그의 천거로 비서성 교서랑이 되었다. 그러나 이는 우승유파로부터 변절자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초래, 이후 불운한 관직 생활의 서막이 되었다.
진사 급제 동년 영호초의 사망으로 상급 시험에 낙방하자, 이덕유파의 태원공 왕무원의 비호를 받게 되며 그의 딸과 결혼했다. 839년 왕무원의 천거로 선망받던 비서성 교서랑에 임명되었으나, 이전 후원자였던 영호초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우승유파로부터 변절자로 몰려 양 파벌 모두에게 외면받게 되었다.
842
[이상은의 어머니 사망]
두 파벌로부터 변절자로 몰려 지방관으로 전전하던 힘든 시기에 이상은의 어머니가 사망하여 큰 슬픔을 겪었다.
관직 생활의 어려움이 계속되던 842년에 이상은의 어머니가 사망했다.
851
불행한 관료 생활을 이어가던 851년에, 그에게 비호를 제공하고 사위가 되어주었던 왕무원의 딸이자 그의 아내인 왕씨가 사망했다.
858
858년, 염철추관직을 다시 잃은 이상은은 향리로 돌아오던 도중 또는 돌아온 후 병으로 형양에서 사망했다. 그의 나이 47세였다. 그의 삶은 당쟁으로 인한 불운과 개인적인 슬픔으로 점철되었다.
960
[서곤체의 시조로 추앙받다]
송나라 초기, 이상은의 요염하고 유미적인 시풍은 서곤체(西崑体)의 시조로 추앙받으며 문단에 큰 유행을 일으켰다.
이상은의 요염하고 유미적인 시풍은 그 추종자들을 만들어내며 북송 초기에 일대 유행을 일으킨 서곤체(西崑体)의 시조로 평가받았다. 서곤체는 조탁을 꾸민 수사와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수법을 특징으로 한다.
1060
[왕안석에 의한 시의 재평가]
북송 중기, 서곤체가 비판받았으나 왕안석은 이상은의 시에 깊은 인간적 통찰이 있음을 인정하며 그의 진가를 재평가했다.
북송 중기에 서곤체가 구양수 등의 비판을 받으며 배척당했으나, 직후 왕안석은 이상은의 시에 두보와 동급의 인간적 통찰이 담겨 있으며 화려한 표현 뒤에 진실된 인격이 엿보인다고 평가하며 그의 시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내렸다. 오늘날 이상은의 평가는 왕안석의 설에 영향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