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고려 문신, 시인, 작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2:11
고려 무신정권 시기 활동한 대표적 문인이자 작가입니다. 독창성을 강조한 '신의론'을 주창했습니다. 민족 서사시 '동명왕편'을 지어 고려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국선생전' 등 가전체 문학으로 한국 서사 문학 발전에 공헌했습니다. 시, 거문고, 술을 즐겨 '삼혹호 선생'이라 불렸습니다.
1169
고려의 문신 이규보(李奎報)가 1169년 1월 15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황려(黃驪)이며, 초명은 이인저(李仁氐), 자는 춘경, 호는 백운거사이다.
1190
[천마산 은거 및 <동명왕편> 집필]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개성 천마산에 은거하며 호를 백운거사라 하고, 고려의 정통성을 드높인 영웅 서사시 <동명왕편>을 집필했다.
1190년 예부시에 급제하여 동진사에 뽑혔으나, 아버지의 죽음 이후 개성의 천마산으로 들어가 호를 백운거사라 하고 글을 쓰며 지냈다. 이 시기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왕의 생애를 노래한 영웅 서사시 <동명왕편>을 지어 한국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1199
1199년(신종 2) 동경(경주)에 반란이 일어나자 이규보는 자원하여 종군하여 병마녹사(兵馬綠事) 겸 수제(修製)가 되었다.
1207
[최충헌의 명으로 관직 임명]
당시 권력자 최충헌의 명을 받아 <모정기>를 지었고, 이를 계기로 권보직한림에 임명되며 최씨정권과 인연을 맺었다.
1207년(희종 3) 최충헌의 명으로 <모정기>(茅亭記)를 쓰고 권보직한림(權補直翰林)에 임명되었다.
1213
1213년(강종 2), 40여 운(韻)의 시 <공작>(孔雀)을 쓰고 사재승에 임명되는 등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1218
1218년(고종 5) 좌사간 등의 벼슬을 역임하며 조정의 주요 문신으로 활동했다.
1219
1219년(고종 6), 지방관의 죄를 눈감았다는 이유로 현재의 인천시 계양구 지역인 안남의 계양도호부부사(桂陽都護府副使)로 좌천되었다. 이곳에서 계양산 자락의 정자 이름을 딴 자오당기 등을 남겼다.
1230
[고위 관직 역임과 관계 은퇴]
잠시 위도로 귀양을 다녀온 후 다시 기용되어 집현전 대학사, 정당문학, 태자소부, 참지정사를 거치며 관계의 정점에 올랐다.
1230년(고종 17) 잠시 위도에 귀양 갔다가 다시 기용되어 집현전 대학사·정당문학·태자소부·참지정사를 거쳤으며, 대몽 항쟁 시기에는 몽골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후 1237년(고종 24) 문하시랑평장사로 관계에서 사퇴했다.
1241
말년에 피난 수도가 된 강화도의 학당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국조의 고문대책과 외국에 오가는 서표 등을 지었다. 7월에 병이 심해져 문집 간행이 서둘러졌으나 간행을 보지 못하고 1241년 10월 8일(음력 9월 초이틀)에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