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명 (조선)
조선 문신, 정치가, 재상, 노론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2:06
조선 후기 문신으로, 영의정 이경여의 손자이자 이민서의 아들이다. 숙종 대 문과에 급제한 후 승지, 참판, 판서 등 여러 요직을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 오르며 최고위 관료가 되었다. 노론 4대신 중 한 명으로 세제(영조)의 책봉을 주장했으나, 신임사화로 인해 유배되어 사약을 받고 사망했다. 성품이 온순하면서도 강직했으며, 특히 송설체 글씨에 능했다. 시호는 충민이다.
1663
1663년에 조선 후기의 문신 이건명이 태어났다.
1685
조선 숙종 시기에 문과에 급제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1698
1698년, 서장관의 직책으로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710
서장관 이후 승지, 이조참의, 대사간, 대사성, 강화유수, 이조참판, 도승지, 부제학, 한성부우윤, 호조참판, 경기도관찰사,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형조판서, 홍문관제학, 병조판서, 좌참찬, 예조판서 등 조선의 핵심 관직을 두루 역임하며 고위 관료로 성장했다.
1720
조선 시대 최고위 관직인 우의정(右議政)과 좌의정(左議政)을 역임하며 명실상부한 국정 운영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영향력이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1721
[영조 책봉 주청]
노론 4대신 중 한 명으로 세제(훗날 영조)의 왕세자 책봉을 강력히 주장하고 이를 위해 청나라에 주청자로 다녀오다.
1721년, 이건명은 노론의 핵심 인물인 4대신 중 한 명으로서, 당시 세제(훗날 영조)의 왕세자 책봉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또한, 책봉 주청을 위해 직접 청나라에 다녀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722
1721년 세제 책봉 주청 이후, 신임사화가 발발하여 노론 세력이 대거 축출되는 과정에서 이건명도 유배되었다. 이듬해인 1722년, 그는 결국 사약을 받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