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관 (서진)
정치인, 장군, 서예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0:38
위관은 위나라와 서진 시대를 살았던 대신으로, 촉나라 정벌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으나 등애를 모함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복잡한 인물입니다. 진나라 건국 후 여러 요직을 거치며 활약했지만, 정치적 암투 속에서 가남풍의 미움을 사 결국 사마위의 모함으로 아들, 손자들까지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서예에 능했던 학자이자 권력의 희생양이었던 그의 삶을 조명합니다.
220
220년 위나라 상서 위기의 아들 위관이 태어났다. 자는 백옥이다.
263
[촉나라 정벌군 합류]
위나라 정위였던 위관은 사마소의 촉나라 정벌군에 합류하여 종회를 보좌하는 행진서군사가 되어 병사들을 감독했다.
위관은 위나라 정위였으나, 사마소가 촉나라 정벌군을 일으킬 때 종회(鍾會)를 보좌하는 행진서군사(行鎭西軍司)로 임명되어 종회의 병사들을 감독하였다.
[등애 체포 및 모함]
촉나라 멸망 후, 위관은 종회와 함께 등애를 모함했다. 사마소의 명으로 등애 체포 임무를 맡아 등애와 그의 아들 등충을 붙잡았다.
등애의 활약으로 촉나라가 멸망한 후, 위관은 종회 등과 함께 사마소에게 등애를 모함했다. 등애를 의심한 사마소가 종회에게 등애 체포를 명령하자, 종회는 위관에게 이 임무를 맡겼다. 위관은 등애의 부하 장수들에게 협조를 얻어 등애와 그의 아들 등충을 새벽녘에 붙잡았다.
264
[성신 옥을 황제에게 바침]
위나라로 돌아온 위관은 성도에서 얻은 '성신'이 새겨진 옥을 조환 황제에게 바쳤고, 황제는 이를 사마소에게 하사했다.
264년 위나라로 돌아온 위관은 촉나라의 수도 성도에서 얻은 '성신(成信)'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옥을 위나라 황제 조환에게 바쳤다. 조환은 이 옥을 사마소에게 하사했다.
[등애 부자 살해 교사]
종회와 강유의 난 이후, 위관은 자신이 등애를 모함한 사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전속을 부추겨 등애 부자를 살해하게 했다.
종회와 강유의 난으로 이들이 죽임을 당한 후에도 등애는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다. 위관은 자신이 등애를 모함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해를 입을 것을 우려하여, 전속을 부추겨 등애와 그 아들을 죽이도록 했다. 이 일로 동료 두예에게 비판을 받았다.
촉나라가 멸망한 후 위관은 정동장군(征東將軍)으로 임명되어 활동했다.
271
[딸의 태자비 간택 무산]
사마염이 위관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 했으나, 가충의 아내가 뇌물을 써서 가남풍이 태자비로 간택되게 했다. 이로 인해 위관은 가충 부녀의 미움을 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71년, 사마염은 본래 위관의 딸을 태자비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가충의 아내 곽괴가 양황후 측근에게 뇌물을 주어, 가남풍이 태자비가 되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훗날 위관이 가충 부녀의 미움을 사게 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276
[선비족 내분 유도]
정북장군 위관은 진나라에 온 선비족 왕자 탁발사막한을 붙잡아 두고, 선비족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주어 내분을 유도했다. 이로 인해 선비족은 쇠퇴하게 되었다.
276년, 정북장군 겸 유주자사 위관은 진나라에 방문했던 선비족 왕자 탁발사막한이 돌아가려 할 때, 조정에 그를 붙잡아 두게 하고 선비족의 유력 인사들에게 금품을 주어 서로 이간시켰다. 이로 인해 선비족은 내분이 일어나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278
[사마염 옥좌 발언]
상서령이 된 위관은 사마염의 잔치에서 옥좌를 어루만지며 왕조의 불안을 경고했다. 이 발언은 훗날 가충 부녀에게 알려져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278년, 상서령이 된 위관은 사마염이 베푼 잔치에서 옥좌를 어루만지며 이 자리가 애석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마염은 위관의 충정을 알아차렸으나 모른 척 넘어갔다. 그러나 이 발언은 훗날 가충 부녀에게 알려져 위관이 그들의 미움을 사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282
[사공 승진 및 구품제 폐지 주장]
282년 사공으로 승진한 위관은 284년에 여남왕 사마량과 함께 구품 제도의 폐해를 지적하며 폐지를 주장했다.
282년 위관은 사공으로 승진하였다. 284년에는 구품 제도의 폐해가 심화되자, 여남왕 사마량과 함께 상소를 올려 구품 제도 폐지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290
[아들 문제로 태보로 은퇴]
아들 위선의 과실 문제로 양준이 번창공주를 궐로 불러들이자 위관은 자청하여 물러났고, 태보로 임명된 채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290년, 위관의 아들 위선이 번창공주와 결혼했으나 술을 좋아하고 과실을 저지르자, 양준은 공주를 궐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위관은 자신이 물러나겠다고 청했고, 결국 태보로 옮겨 임명된 채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291
[사마위의 모함과 죽음]
사마위의 난폭함에 병권 회수를 시도했던 위관은 가남풍과 사마위의 모함에 빠져 파면당했다. 사마위는 위관과 그의 아들, 손자들까지 모두 죽였다.
291년, 위관은 사마량과 함께 난폭한 초왕 사마위의 병권을 빼앗으려 했으나, 이로 인해 사마위의 원한을 샀다. 결국 사마위의 부하 기성이 위관과 사마량이 사마충 황제를 폐위하려 한다고 모함했고, 위관을 미워하던 가남풍은 사마충을 통해 두 사람의 파면 조서를 내리게 했다. 이를 빌미로 사마위는 군사를 이끌고 위관과 사마량을 죽였으며, 위관의 아들들과 손자들까지 모두 살해당했다.
[사후 신원 및 추증]
위관의 죽음 직후 가남풍이 사마위마저 제거하자, 위관의 딸이 아버지의 신원을 청하여 난릉군공에 봉해지고 성공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위관의 죽음 직후 가남풍이 사마위마저 제거하자, 위관의 딸이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줄 것을 청했다. 이 청이 받아들여져, 죽은 위관은 난릉군공(蘭陵郡公)에 봉해지고 '성공(成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