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보 (촉한)

인물, 정치인,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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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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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의 신하 왕보는 유장의 부하로 시작해 유비 휘하에서 면죽현령, 형주 의조종사를 지냈다. 221년 유비의 오나라 정벌군에 참전하여 222년 이릉 대전에서 전사한 역사적 인물이다. 특히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를 보좌하며 형주 수비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경고하고, 관우의 죽음 후 성벽에서 떨어져 자결하는 충신으로 묘사되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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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유장의 부하로 봉직]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기 전, 유장의 부하로 근무하며 초년 경력을 시작했다.

익주 광한군 처현 사람인 왕보는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기 전, 유장의 밑에서 일했다. 그의 초년 경력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적다.

214

[면죽현령 임명]

유비가 유장을 축출하고 익주를 차지한 후, 면죽현령으로 임명되어 촉한의 관리로 첫 발을 내디뎠다.

유비가 유장을 축출하고 익주를 차지한 후, 왕보는 면죽현령으로 임명되며 촉한의 행정 관리로서 경력을 시작했다.

215

[형주 의조종사 활동]

면죽현령을 지낸 후, 형주로 파견되어 의조종사(議曹從事) 직책을 맡아 촉한의 정무를 보좌했다.

면죽현령을 거쳐 왕보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형주로 파견되어 의조종사 직책을 맡아, 그곳에서의 행정 및 군사 관련 논의를 담당하며 유비 세력의 안정화에 기여했다.

221

[유비의 형주 정벌군 참전]

관우가 처형당한 뒤 패잔병 신세로 형주를 떠돌다가, 유비가 일으킨 오나라 정벌군에 합류하여 형주 탈환 전투에 참전했다.

221년, 관우가 손권에게 처형당하고 형주를 오나라에 잃자, 유비는 관우의 복수와 형주 탈환을 위해 대규모 정벌군을 일으켰다. 왕보는 이 대규모 원정군에 합류하여 최전선에서 싸우게 되었다.

222

[이릉 대전에서 전사]

이릉 대전에서 육손에게 촉군이 대패할 때, 자귀(秭歸) 지역에서의 패배 중 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며 생을 마감했다.

222년 6월, 유비가 이끄는 촉한군이 오나라 육손의 화공에 처참하게 대패한 이릉 대전에서, 왕보는 자귀 지역에서의 패배 중 적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여 생을 마감했다. 이는 촉한에 큰 손실을 안긴 비극적인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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