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하균 (정치인)

독립운동가, 정치인,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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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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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 신하균은 해공 신익희의 장남입니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했으며, 귀국 후에는 아버지의 정치 활동을 돕고 민주당 등에서 활동했습니다. 1956년 국회의원에 첫 당선된 이래 3선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며, 사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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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신익희의 장남으로 출생]

해공 신익희 선생과 이승희 여사의 장남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호는 본관을 딴 '평산'으로, 아버지 신익희 선생이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들이 본관을 잊지 않도록 직접 지어준 이름입니다.

신하균은 1918년 9월 2일 경기도 광주에서 해공 신익희 선생과 그의 정실 부인 이승희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호는 '평산(平山)'으로, 본관인 평산 신씨에서 따온 것입니다. 독립이 보장될지 불확실하다고 여겼던 아버지 신익희 선생은 나중에 죽더라도 아들이 본관을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호를 지어주었습니다.

1923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투신]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상해로 건너가 아버지 신익희를 만나 학업을 이어갔고, 이 시기부터 독립운동 대열에 참가하게 됩니다.

1923년, 신하균은 모친 이승희 여사와 함께 상해로 건너가 부친 신익희 선생을 만났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학업을 계속하며 동시에 독립운동 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940

[한국광복군 활동 및 중국 정부 요직 역임]

중국 상해 광화대학 상과를 졸업하고,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총무처에서 활동했습니다. 또한 중국 국민당 정부 감찰원 위임관, 중국 중앙은행 과원조장, 중앙신탁국 조장 등을 역임하며 독립운동과 정부 관련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신하균은 중국 상해 광화대학 상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총무처에서 근무하며 독립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동시에 중국 국민당 정부에서 감찰원 위임관, 중앙은행 과원조장, 중앙신탁국 조장 등을 지내며 중국 정부 내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45

[귀국 후 아버지의 정치 보좌 및 정계 입문]

광복 후 귀국하여 아버지 신익희의 정치 활동을 보좌했습니다. 이후 민주국민당에 입당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광복 이후 귀국한 신하균은 아버지 신익희의 정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보좌했습니다. 이후 민주국민당에 입당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민주국민당, 민주당, 신민당 등에서 활동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습니다.

1956

[제3대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선]

아버지 신익희 선생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경기도 광주군 제3대 민의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1956년 5월 5일 아버지 신익희 선생이 서거하자, 그의 지역구였던 경기도 광주군 제3대 민의원의원 보궐선거가 8월 23일에 치러졌습니다. 신하균은 이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1960

[제5대 국회의원 재선]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경기 광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1960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경기 광주군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며 국회의원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1963

[제6대 국회의원 당선, 3선 의원 등극]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경기 광주군·이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며 3선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1963년에 실시된 제6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경기 광주군·이천군 선거구에 민정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그는 3선 국회의원으로서 정치적 역량을 계속 발휘하게 되었습니다.

1975

[서거 및 안장]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서울 수유리에 위치한 아버지 신익희 선생의 묘역 근처에 안장되었습니다.

1975년 11월 10일, 신하균은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서울 수유리에 있는 아버지 신익희 선생의 묘역 근처에 안장되었습니다.

1990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어 독립유공자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사후인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신하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여 그의 독립운동 공로를 기리고 예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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