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우 (야구인)

야구선수, 스포츠인, 감독, 코치,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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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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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의 전설적인 좌완 투수 송진우는 21년간 한화 이글스에서만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입니다. 통산 210승, 2048탈삼진, 3003이닝 등 KBO 리그 역대 최고 기록을 다수 보유했으며, 최고령 노히트 노런, 200승-세 자릿수 세이브 등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초대 회장으로 선수 권익 향상에도 기여하며 '회장님'으로 불린,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 중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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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송진우 탄생]

KBO 리그의 전설적인 좌완 투수 송진우가 충청북도 증평군에서 태어났다.

1966년 2월 16일 충청북도 증평군에서 송진우가 태어났다. 그는 훗날 KBO 리그의 위대한 투수로 불리게 된다.

1982

[황금사자기 우승 주역]

세광고등학교 2학년이던 송진우는 팀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으로 이끌며 아마추어 야구계에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광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송진우는 1982년 팀의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이끌며 빼어난 실력으로 야구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1983

[대통령배 준우승 견인]

이듬해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고교 야구에서 꾸준히 뛰어난 활약을 선보였다.

1983년 송진우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고교 무대에서의 뛰어난 기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984

[동국대 입학 및 대학 야구 우승]

동국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송진우는 팀의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우승에 기여하며 대학 야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으나, 이후 팔꿈치 부상으로 잠시 공백기를 가졌다.

1984년 동국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송진우는 팀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후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대학 마운드에서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1988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 '세일통상'에서 활동하며 서울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 국제 무대 경험을 쌓았다.

1988년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후 실업 야구팀 세일통상에서 활동하던 송진우는 서울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며 국제적인 경험을 했다. 같은 해 1차 지명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했다.

1989

[빙그레 이글스 입단 및 프로 데뷔]

계약금 4,000만원, 연봉 1,200만원의 조건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첫 해 완봉승을 포함 9승 10패 9세이브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1989년 송진우는 계약금 4,000만원의 조건으로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프로 데뷔 첫 해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9승 10패 9세이브의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팀의 핵심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KBO 데뷔전 완봉승]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와의 데뷔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는 단일 시즌 데뷔전 완봉승 최다 타이 기록이었다.

1989년 4월 12일 대전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출장을 한 송진우는 완봉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KBO 리그에 데뷔했다. 이 기록은 롯데 박동수와 함께 단일 시즌 데뷔전 완봉승 최다 타이를 이뤘다.

[OB전 2피안타 완봉승]

OB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단 2피안타만 허용하는 완벽한 피칭으로 완봉승을 기록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1989년 8월 25일 송진우는 OB 베어스전에서 2피안타만 내주는 압도적인 투구로 완봉승을 거뒀다.

1990

[11승 달성]

프로 2년차인 송진우는 11승 7패를 기록하며 팀의 선발 로테이션을 굳건히 지켰다.

1990년 송진우는 시즌 11승 7패를 기록하며 안정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1992

[KBO 최초 다승-구원 동시 1위]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단일 시즌 다승(19승)과 구원(17세이브) 1위를 동시에 차지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전천후 투수로서의 역량을 과시했다.

1992년, 송진우는 팀의 마운드 사정이 좋지 않자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맹활약, KBO 리그 최초로 단일 시즌 다승(19승)과 구원(17세이브) 부문 1위를 동시에 석권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1994

[팀 명칭 변경 (한화 이글스)]

소속팀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 이글스로 명칭을 변경했으나, 송진우는 꾸준히 팀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며 프랜차이즈 스타의 면모를 이어갔다.

1994년 송진우의 소속팀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 이글스로 팀 명칭을 변경했다. 그는 이후에도 한화 이글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다.

1999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초대 회장 취임]

선수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에 앞장서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며, 이후 동료 선수들로부터 '회장님'이라는 존경의 호칭을 얻었다.

1999년 송진우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어 선수들의 지위 향상과 한국 야구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 공로로 그는 동료 선수들에게 '회장님'으로 불리며 존경받았다.

2000

[선수협회 공식 창립 및 초대 회장 추대]

KBO 리그 선수들이 권익 보호를 위해 '한국 프로 야구 선수협회' 창립 총회를 열고, 송진우를 초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2000년 1월 22일, KBO 리그 선수들은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한국 프로 야구 선수협회' 창립 총회를 개최했고, 송진우가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회장으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며 선수들과 팬들의 귀감이 되었다.

[KBO 최고령 노히트 노런 달성]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역대 11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으며, 이는 최고령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이었다.

2000년 5월 18일, 송진우는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9이닝 동안 3사사구, 6탈삼진으로 KBO 리그 역대 11번째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당시 최고령 노히트 노런으로 그의 꾸준한 기량을 증명했다.

2001

[역대 6번째 세 자릿수 선발승 달성]

두산 베어스전 선발승을 통해 KBO 리그 역대 6번째로 세 자릿수 선발승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루었다.

2001년 5월 10일, 송진우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선발승을 거두며 KBO 리그 통산 6번째 세 자릿수 선발승 투수 대열에 합류했다.

2002

[KBO 골든글러브 수상 (투수 부문)]

18승과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압도적인 시즌을 보내며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2년 송진우는 시즌 18승과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뛰어난 활약으로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선동열 기록 경신, 147승 달성]

SK 와이번스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선동열의 종전 기록(146승)을 뛰어넘는 147승을 달성했다.

2002년 4월 23일 청주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송진우는 승리 투수가 되며 통산 147승을 기록, 선동열이 보유했던 146승 기록을 경신했다.

[KBO 최초 150승 달성]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승리하며 KBO 리그 역대 최초로 통산 150승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쌓았다.

2002년 5월 19일 대전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송진우는 KBO 리그 역대 최초로 통산 150승을 달성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2003

[마무리 보직 변경]

시즌 중 마무리 투수로 기대했던 용병 피코타가 퇴출되자, 팀의 요청으로 시즌 막판 마무리 보직을 맡아 팀의 마운드를 안정시켰다.

2003년, 마무리 투수 피코타가 부진으로 퇴출되자 송진우는 시즌 막판에 마무리 투수 보직으로 변경하여 팀의 구원진을 강화했다.

[통산 500경기 출장]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역대 6번째로 통산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2003년 9월 13일, 송진우는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37세 6개월 27일의 나이로 KBO 리그 역대 6번째 통산 5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2004

[이강철 기록 경신, 1701탈삼진 달성]

KIA 타이거즈전에서 김경진을 상대로 탈삼진을 잡아내며 이강철의 종전 기록을 넘어 KBO 리그 통산 1701탈삼진을 기록했다.

2004년 5월 22일, 송진우는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김경진을 상대로 탈삼진을 기록하며 이강철의 통산 1700탈삼진 기록을 경신, 새로운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

2005

[KBO 최고령 무사사구 완봉승]

SK 와이번스전에서 39세 6개월 22일의 나이로 KBO 리그 최고령 무사사구 완봉승을 기록하며 나이를 잊은 투구를 선보였다.

2005년 9월 8일, 송진우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두며 39세 6개월 22일로 KBO 리그 역대 최고령 무사사구 완봉승 기록을 세웠다. 이는 박철순의 종전 기록(38세 5개월)을 경신한 것이었다.

[11시즌 두 자릿수 승리 달성]

KIA 타이거즈전에서 승리 투수가 되며 개인 통산 11번째로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하는 꾸준함을 과시했다.

2005년 9월 14일, 송진우는 KIA 타이거즈전에서 5.2이닝 동안 6안타 4볼넷 2실점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어, 통산 11번째로 두 자릿수 승리 시즌을 만들었다.

2006

[KBO 최초 200승 및 세계 두 번째 대기록 달성]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KBO 리그 최초로 통산 200승을 달성하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으며, 이는 일본 에나쓰 유타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200승-세 자릿수 세이브 기록이었다.

2006년 8월 29일 광주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송진우는 선발 등판하여 5이닝 4피안타 1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며 KBO 리그 최초 통산 200승(157선발승)을 달성했다. 또한, 이는 일본 프로야구의 에나쓰 유타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200승과 세 자릿수 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한 기록이었다.

2007

[KBO 투수 최고령 출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41세 3개월 10일의 나이로 KBO 리그 투수 최고령 출장 기록을 세웠다.

2007년 5월 26일, 송진우는 대전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 9회말 1-3 상황에서 등판하여 41세 3개월 10일의 나이로 KBO 리그 투수 최고령 출장 기록을 경신했다.

[KBO 최고령 세이브]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41세 3개월 15일의 나이로 KBO 리그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달성했다.

2007년 5월 31일, 송진우는 사직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9회초 2-5 상황에 등판하여 유격수 땅볼, 삼진, 2루 땅볼로 경기를 마무리하며 41세 3개월 15일로 KBO 리그 최고령 세이브 기록을 세웠다. 이는 박철순의 종전 기록(40세 4개월 18일)을 경신한 것이었다.

[KBO 최고령 홀드]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41세 3개월 20일의 나이로 KBO 리그 최고령 홀드 기록을 수립했다.

2007년 6월 5일, 송진우는 수원에서 열린 현대 유니콘스전 6회 1-4 상황에서 등판하여 1⅔이닝 2피안타 2삼진 1볼넷 무실점의 호투로 KBO 리그 최고령 홀드를 기록했다.

2008

[KBO 최고령 선발 승리 투수]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42세 3개월 9일의 나이로 KBO 리그 최고령 선발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8년 5월 25일, 송진우는 대전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5이닝 3피안타 1실점의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며 42세 3개월 9일로 KBO 리그 최고령 선발 승리 투수 기록을 세웠다.

[KBO 최초 2000탈삼진 달성]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송지만을 상대로 탈삼진을 잡아내며 KBO 리그 사상 최초로 통산 2000탈삼진을 달성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2008년 6월 6일, 송진우는 대전에서 열린 히어로즈와의 경기 8회 2사 후 송지만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내며 KBO 리그 사상 최초로 통산 2000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KBO 최고령 완투]

롯데 자이언츠전 강우 콜드 게임에서 42세 5개월 9일의 나이로 KBO 리그 최고령 완투 기록을 세웠다.

2008년 7월 25일, 송진우는 사직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선발 등판하여 5회말 2사후 강우 콜드 게임이 선언될 때까지 완투하며 42세 5개월 9일로 KBO 리그 최고령 완투 기록을 경신했다.

2009

[한국프로야구 성구회 창립 초대 회장]

양준혁, 전준호 등과 함께 '성구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취임하며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2009년 1월 13일, 송진우는 양준혁, 전준호 등과 함께 한국프로야구 '성구회'를 창립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했다. 성구회는 은퇴 선수들의 복지 향상과 야구계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단체이다.

[KBO 최고령 승리 투수 및 210승 달성]

두산 베어스전에서 210승을 달성하며 KBO 리그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을 동시에 경신했다.

2009년 4월 8일, 송진우는 대전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 6회초 0-2 상황에서 등판하여 1.2이닝 2탈삼진을 기록하며 승리 투수가 되어 통산 210승을 달성했고, 동시에 KBO 리그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을 세웠다.

[KBO 최초 통산 3000이닝 달성]

두산 베어스전에서 KBO 리그 사상 최초로 통산 3000이닝을 달성하며 한국 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임을 입증했다.

2009년 4월 9일, 송진우는 대전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 7회 무사 상황에서 등판하여 KBO 리그 사상 첫 통산 3000이닝 투구라는 경이로운 대기록을 달성했다.

[현역 은퇴 선언]

21년간의 찬란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하며 현역 은퇴를 전격 선언했다.

2009년 8월 16일, 송진우는 더 이상 명성에 걸맞은 피칭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21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한화 이글스 영구 결번 (21번)]

한화 이글스는 송진우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등번호 '21'번을 구단 역사상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2009년 9월 22일, 한화 이글스는 송진우 선수의 빛나는 공헌과 기록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의 등번호 2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은퇴 경기 및 영구 결번식]

21년간의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 경기를 치르고, 성대한 은퇴식에서 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를 떠났다.

2009년 9월 23일, 송진우는 은퇴 경기를 치렀으며, 21년간의 프로 생활을 기념하는 성대한 은퇴식에서 팬들과 동료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정든 마운드를 떠났다. 이로써 그의 찬란한 선수 경력은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다.

2010

[요미우리 자이언츠 코치 연수]

은퇴 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키웠다.

2010년부터 송진우는 일본의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코치 연수를 받으며 선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도자로서의 새로운 커리어를 준비했다.

2011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 복귀]

코치 연수 후 친정팀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복귀하여 후배 양성에 힘썼다.

2011년부터 송진우는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의 투수코치로 임명되며 KBO 리그에 복귀, 지도자로서 후배 투수들을 지도했다.

[배우자 사망]

배우자 정해은이 간암으로 사망하며 슬픔을 겪었다.

2011년 7월 1일, 송진우의 배우자인 정해은이 간암으로 사망했다.

2015

[KBS N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 활동]

KBS N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경기를 해설하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송진우는 KBS N 스포츠의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며 방송을 통해 야구 팬들과 소통했다. 이 시기 선수 시절 글러브에 바셀린을 발랐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21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 취임]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지도자 커리어를 이어갔다.

2021년부터 송진우는 스코어본 하이에나들 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새로운 팀에서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2024

[세종원스톤세미프로야구단 감독 취임]

세종원스톤세미프로야구단의 감독으로 활동을 시작하며 야구계에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

2024년부터 송진우는 세종원스톤세미프로야구단의 감독을 맡아 야구 발전에 지속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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