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시헌 (1923년)
독립운동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6:46
손시헌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입니다. 1923년 경주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중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학병 반대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이 활동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광복 후 귀국하여 한국독립당에서 활동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으며, 사후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1923
[손석희, 경주에서 출생]
손석희라는 아명으로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 노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유아기 중 잠시 경상북도 김천면에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손시헌은 1923년 2월 10일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 노서리 123번지에서 아명 손석희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잠시 경상북도 금릉군 김천면에서 유아기를 보낸 후, 경상남도 부산 동래 칠산정에서 성장했다.
1926
1926년 아명 손석희에서 손시헌으로 개명하였으며, 호는 월산이다.
1942
[일본 유학 중 조선독립청년단 조직]
일본 다이쇼 대학교 법철학과를 중퇴하고, 박오훈, 최수일 등 동지들과 함께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하여 재무를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학병 및 지원병 반대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42년 7월, 일본 도쿄에 유학 중이던 손시헌은 다이쇼 대학교 법철학과를 중퇴했다. 그는 동지 박오훈, 최수일 등과 함께 "조선독립청년단"을 조직하고 재무를 담당했다. 이들은 여러 차례 회합을 통해 학병 및 지원병 반대 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1943
조선독립청년단의 학병 및 지원병 반대 운동 내용이 일경에 탐지되어, 1943년 7월 초 일본 헌병대에게 체포되었다.
1944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 선고]
일본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1944년 3월, 일본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5
[광복으로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출감]
8.15 조선 광복으로 인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고를 마치고 출감하게 되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조선 광복으로 인하여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출감하였다.
1945년 11월 6일에 조선국 고국으로 귀국하였다.
1946
1946년 5월에서 1947년 8월까지 한국독립당 초급행정위원 직위를 잠시 지냈다.
1977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1977년 8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장을 수여했다.
1990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고자 1990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2002
2002년 10월 19일 별세했으며, 그의 유해는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