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소벽

가톨릭 성인, 순교자, 인물

num_of_likes 57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6:44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가톨릭 성인, 순교자, 인물
report
Edit

손소벽 막달레나는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기에 순교한 103위 한국 천주교 성인 중 한 명이다. 어린 시절부터 박해로 인한 가족의 불행을 겪었으며,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 속에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켰고, 1840년 당고개에서 참수 순교하였다. 이후 1925년 시복되고 1984년 시성되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801

[손소벽 막달레나 탄생]

한양의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신유박해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마저 일찍 여의며 외할머니와 살았다. 불행한 가정사로 소심해져 천주교 교리를 늦게 배웠다.

손소벽 막달레나는 1801년 한양의 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신유박해로 인해 아버지가 유배형에 처해진 후 순교하고, 얼마 못가 어머니 마저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으며, 가족의 불행한 상황은 그녀를 소심하게 만들어 다른 천주교인들과 떨어져 지냈고, 천주교를 늦게 배우게 되었다.

1818

[최창흡과 결혼]

17세에 최창흡과 결혼하여 함께 교리를 배웠다. 이들은 11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대부분 유아기에 사망했다.

손소벽은 17세에 최창흡과 결혼하여 함께 교리를 배웠다. 이들은 슬하에 11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그들 중 아홉 명은 유아기 때 목숨을 잃었다. 그녀는 온화한 성품과 상냥한 말씨를 지녔으며, 바느질과 수놓기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1821

[비상 세례를 받다]

콜레라가 창궐하던 해에 남편과 함께 비상 세례를 받았다. 남편 최창흡은 훗날 그녀보다 먼저 순교했다.

1821년에 콜레라가 창궐하자, 손소벽은 남편 최창흡과 함께 비상 세례를 받았다. 최창흡은 후일에 그녀보다 먼저 순교하였다.

1839

[어린 딸을 맡기다]

감옥에서 두 살 된 막내딸을 돌보았으나, 탁한 환경과 음식 부족, 그리고 딸이 순교 의지를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친척에게 맡겼다.

손소벽은 그녀의 두 살 된 막내딸도 감옥 안으로 들였다. 하지만, 그곳은 탁한 공기에 어둡고 음식이 부족한데다가, 그녀는 자식이 그녀의 순교 의지를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 딸을 한 친척에게 맡겼다.

[혹독한 고문을 견뎌내다]

체포 후 사위 조신철이 맡겨놓은 교회 물품 출처에 대한 추궁으로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일곱 차례의 심문과 세 차례 주뢰형, 곤장 260여 대를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모든 고통을 견뎌냈다.

체포된 손소벽은 사위 조신철이 베이징에서 가져와 맡겨 놓은 교회 물품에 대한 출처 추궁으로 인해 극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녀는 일곱 차례 심문과 세 차례의 주뢰형에 처해졌으며, 곤장 260여 대를 맞았다. 살가죽이 떨어져 나가고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기해박해 중 체포되다]

기해박해 중 친척집에 숨어 지내다 6월에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장으로부터 동료 교우의 위치를 발설하라는 심문을 받았으나, 하느님을 부정할 수 없다며 거부했다.

1839년 기해박해 동안, 손소벽은 친척집에 숨어지냈지만, 6월에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다. 포장은 그녀를 심문하며 동료 천주교도들의 위치를 캐물었으나, 손소벽은 하느님을 부정할 수 없다며 발설을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이 자기 것이 아니며 구원받기 위해 하느님을 부정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1840

[당고개에서 순교하다]

형조에서 3차례의 고문을 더 견뎌낸 뒤, 한양 근교 당고개로 압송되어 39세의 나이로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 순교하였다.

손소벽은 형조에서도 3차례의 고문을 더 견뎌낸 뒤, 관찬기록(《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마침내 한양 근교의 당고개로 압송되어 1840년 1월 31일에 39세의 나이로 다섯 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 순교하였다.

1925

1925.07.05 사후 85년

[복자 품에 오르다 (시복)]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시복식을 통해 79위 복자에 포함되어 복자 품에 올랐다.

손소벽 막달레나는 1925년 7월 5일에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비오 11세가 집전한 79위 시복식을 통해 복자 품에 올랐다.

1984

1984.05.06 사후 144년

[성인 품에 오르다 (시성)]

서울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시성식을 통해 103위 성인에 포함되어 성인 품에 올랐다.

1984년 5월 6일에 서울특별시 여의도에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미사 중에 이뤄진 103위 시성식을 통해 성인 품에 올랐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