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분 (손권 아들)

황자, 삼국시대 인물, 오나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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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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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 삼국시대 인물, 오나라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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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 태조 손권의 다섯째 아들인 손분은 제왕으로 책봉되었으나, 권력자 제갈각과의 갈등으로 인해 서인으로 강등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후 장안후에 봉해지기도 했지만, 황제 손호 재위 중 민간에 떠돈 황제 즉위 풍문으로 인해 일족이 모두 멸족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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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손분 탄생]

오나라 태조 손권의 다섯째 아들 손분이 태어났습니다. 자는 자양입니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235년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나라 태조 손권의 다섯째 아들 손분이 태어났다. 자는 자양(子揚)이다.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235년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52

[제갈각과의 갈등 및 남창 이전]

예장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그릇된 행동을 보였으나, 제갈각의 협박조 서신에 굴복하여 결국 남창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손분은 제갈각의 예장 이전 명령을 허락하지 않고 그릇된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제갈각의 강압적인 서신으로 인해 결국 남창(南昌)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제왕 책봉 및 무창 주둔]

손권에 의해 제왕으로 봉해지고, 군사 요충지인 무창에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공식적인 왕실 직위와 역할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손권이 손분을 제왕(齊王)에 봉하고, 중요한 군사 요충지인 무창(武昌)에 주둔하게 했다.

[관원 살해 및 서인 강등]

남창 이전 후에도 도를 넘는 행동이 계속되자, 제갈각이 보낸 조사 관원들을 살해했습니다. 이 만행으로 손분은 서인으로 강등되고 장안으로 추방되는 큰 벌을 받았습니다.

남창으로 이전한 뒤에도 손분의 도를 넘는 행동은 계속되었다. 이에 제갈각이 관원들을 보내 조사하게 했으나, 손분은 이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손분은 서인(庶人)으로 강등되고 장안(章安)으로 추방되었다.

[제갈각의 번왕 이전 정책]

손권이 붕어하고 제갈각이 정권을 잡자, 번왕들을 군사 요충지에서 내부로 옮기는 정책이 시행되었고, 손분은 예장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손권이 붕어하고 제갈각이 정권을 잡자, 그는 번왕(藩王)들을 군사 요충지에서 나라의 내부로 옮기려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손분은 예장(豫章)으로 옮기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258

[장안후 재봉]

서인으로 강등되어 장안으로 추방되었던 손분이 이후 장안후에 다시 봉해져 명예를 일부 회복했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불분명합니다.

서인으로 강등되어 장안으로 추방되었던 손분이 이후 장안후(章안侯)에 다시 봉해졌다. 정확한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252년 이후 270년 이전의 일이다.

270

[민간 풍문으로 손분과 그 일족 멸족]

황제 손호의 부인이 죽어 손호가 슬픔에 잠기자, 백성들 사이에 손분이 새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풍문이 돌았습니다. 이로 인해 손분과 그의 일족은 물론, 그를 지지한 예장태수 장준까지 모두 멸족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270년, 황제 손호의 부인이 죽자 손호는 슬픔에 잠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를 본 백성들은 손호가 죽은 것으로 오해하고, 손분이 새로이 황제에 즉위해야 한다는 민간의 풍문이 떠돌았다. 예장태수 장준(張俊)은 손분의 모친 묘를 정비하며 이런 풍문에 동조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이 사실이 발각되어 손분과 그의 일족, 그리고 장준은 모두 멸족되는 비극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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