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 (명나라)
명나라 작가, 정치인, 학자, 관료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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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비교
명나라 작가, 정치인, 학자, 관료
명나라의 저명한 작가, 정치인, 학자였던 손광은 자는 문융, 호는 월봉이다. 1574년 진사에 급제하여 이부주사로 관직을 시작, 태상시소경, 계료경략총독 등 요직을 거쳐 남경병부상서에 올랐고 태자소보에 책봉되며 최고위 명예를 얻었다. 문재와 무략은 물론 서화에도 능했으며, 40여종 7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다.
연관 연혁
1543
손광은 자를 문융(文融), 호를 월봉(月峰), 호상산인(湖上散人)이라 하였으며, 명나라 절강성 소흥부 여요현 손가경(오늘날 저장성 츠시시 헝허진) 출신이다.
1570
융경 4년 순천부 향시에서 47등을 차지했다.
1574
[진사 급제 및 이부주사 제수]
32세의 나이에 갑술과 회시 1등, 진사 제2갑 4등으로 급제하여 이부주사에 제수되며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만력 2년 32세의 나이에 갑술과 회시 1등, 진사 제2갑 4등을 했다. 이후 이부주사에 제수되었고, 원외랑과 낭중을 역임했다.
1584
만력 12년 2월, 태상시소경에 올랐다.
1594
만력 22년 6월, 우첨도어사를 겸하였으며, 고양겸을 대신하여 계료경략총독에 올랐다.
1605
만력 33년 11월, 남경병부상서참찬기무에 올랐다.
1606
만력 34년 5월, 3년 고만(考滿)으로 태자소보에 책봉되었다.
1609
만력 37년 9월, 남경 하늘에서 울림이 들린 일로 상주를 하였고, 이로 인하여 사직을 요청하였으며 이를 재가받았다.
1613
손광은 1613년 5월 27일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