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역사서, 불교 사서, 설화집, 기록유산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5:41
고려 승려 일연이 편찬한 삼국시대 역사서.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달리 설화, 신이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 단군 신화를 비롯한 고대사 기록과 향가 14수가 수록되어 한국 고대사 및 문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국보 및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281
[일연, 삼국유사 편찬]
고려 시대 승려 일연이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편찬했다. 삼국사기와 비교하여 설화 등 신이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고려 충렬왕 7년(1281년), 승려 일연이 인각사에서 삼국 시대의 역사서인 삼국유사를 편찬했다.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와 비교할 때 설화 등의 신이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는 점이 특징이다. 원판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1452
[단종실록에서 '환인' 기록 언급]
단종실록에 삼국유사에 '환인'의 서자 환웅에 대한 기록이 인용되었다고 기록되어, 정덕본 이전의 삼국유사에도 '환인'으로 기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단종 즉위년(1452년) 6월 28일 기록에 《삼국유사》에 '《고기》에서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언급되어, 정덕본 이전에 간행된 삼국유사에도 '환인(桓因)'으로 기록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1512
[삼국유사 정덕본 간행]
조선 중종 7년, 경주부윤 이계복에 의해 삼국사기와 함께 삼국유사의 중종 임신간본, 즉 정덕본이 간행되었다. 이는 현재 한국에 전하는 삼국유사 판본 중 가장 완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조선 중종 7년인 임신년(1512년), 당시 경상감영이 소재하고 있던 경주에서 부윤 이계복에 의해 삼국사기와 함께 삼국유사가 간행되었는데, 이를 중종 임신간본 또는 정덕본이라 부른다. 경주부사 이계복이 쓴 발문에 따르면 마멸이 심한 옛 책판을 대신해 초판본 완질을 구하여 여러 고을에 나누어 판각하여 모으도록 하였다. 이때 원각 판본 가운데 마멸이 심한 부분은 번각본으로 교체되었고, 전체 책판 290매 중 약 40매는 구판을 그대로 사용했다. 중종임신본은 현재 한국에 전하는 삼국유사의 판본으로써 가장 완전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544
[순암수택본 삼국유사 간행]
일본 덴리 대학에 소장된 순암수택본 삼국유사가 간행되었다. 이 판본은 낙장이 없는 5권 완질본이나 가필되거나 윤필된 부분이 많다.
일본 덴리대 소장 순암수택본(순암수택본) 삼국유사는 중종 임신간본이 간행된 해에서 32년 정도 지난 1544년에 간행되었는데, 낙장이 없는 5권의 완질본이다. 심하게 가필되거나 윤필된 부분이 많으며(특히 왕력편에 상당한 내용이 첨가되었다) 서울대 규장각 소장본이나 고려대 만송문고 소장본에서 결락되었거나 오자 또는 결획된 부분을 첨가하거나 바로잡기도 했다.
1904
[도쿄 제국대학본 《삼국유사》 '환국' 인쇄]
일본 도쿄 제국대학에서 출간된 《삼국유사》에 단군신화의 '환인' 구절이 '환국'으로 인쇄되어, 이후 '환국' 조작설 논란의 한 근거가 되었다.
1904년 일본 도쿄 제국대학에서 출간된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조의 '환인' 구절이 “昔有桓國(석유환국)”으로 인쇄되어, 이후 재야사학자들의 '환국' 조작설 주장의 근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는 정덕본에 나타난 '因'자의 이체자를 잘못 새긴 오자로 고증되었다.
1907
[오성월, 범어사본 삼국유사 기증]
광무 11년 오성월이 삼국유사 범어사본(권4~5)을 입수하여 범어사에 기증하였다. 이 판본은 조선 초기의 간행본으로 추정된다.
광무 11년(1907년) 오성월이 삼국유사 권4~5까지 2권을 1책으로 묶은 범어사본을 입수하여 범어사에 기증했다. 이 책은 조선 초기의 간행본으로 추정되며, 조선초 판본 중 유일하게 권4의 여러 편에 구결로 현토가 되어 있다.
1916
일본 덴리대 소장 순암수택본 삼국유사는 1916년 이마니시 류가 서울의 인사동에서 구입해 소장했던 것으로, 이후 덴리대학교 도서관에 기증되어 귀중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이 판본은 조선 중기의 문인 김부의의 아버지가 소장했다가 18세기 안정복에게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1927
1927년, 계명구락부의 기관지 《계명》 제18호는 최남선에 힘입어 《삼국유사》 전체를 게재하게 하였다. 이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삼국유사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1946
[정인보, 단군신화 위조설 반박]
정인보가 《조선사연구(상)》에서 단군신화 자체에 대한 일연의 위조설을 제기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주장에 반박하며 삼국유사의 기록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1946년 정인보는 《조선사연구(상)》에서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위서(魏書) 인용과 관련하여 일제 시대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한 단군신화 자체에 대한 일연의 위조설에 대해 반박하며, 삼국유사의 기록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그의 주장은 이후 북한 학계에서 주류 학설이 되었다.
1954
[최남선, '환국' 조작설 고증 및 위서 논란 입장 표명]
최남선이 《증보 삼국유사》 해제에서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위서 논란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환인'이 '환국'으로 조작되었다는 설은 오자(誤字)임을 고증하여 잘못된 주장임을 밝혔다.
1954년 최남선은 《증보 삼국유사》 해제에서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위서 인용에 대한 여러 가능성을 거론하며 진단하기 곤란하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그는 정덕본보다 고본(古本)인 송석하본, 광문회본, 순암수택본 등을 교감하여 '환인'이 원래 '환국'이었다는 주장은 '因'자의 이체자를 '囯'으로 잘못 새긴 오자였음을 고증하며 조작설을 부정했다.
1965
[문정창, '환인' 조작설 주장]
재야사학자 문정창이 《군국일본조선강점 삼륙년사》에서 삼국유사의 '환인'이 일제에 의해 '환국'으로 조작되었다고 주장했다.
1965년 재야사학자 문정창은 《군국일본조선강점 삼륙년사》에서 일제 하에서 《삼국유사》 정덕본을 영인하면서 이마니시 류가 주동이 되어 한국의 역사를 날조하면서 '환국'을 '환인'으로 고쳤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이후 최남선 등에 의해 '因'자의 오자임이 고증되며 부정되었다.
1975
1975년 한국의 민족문화추진회는 서울대학교 소장 규장각본을 반으로 축소 영인하여 한국고전총서1 교감 삼국유사로 출간했다. 이때 이동환의 교감을 두주로 붙이고, 여러 판본을 대교하거나 인용된 원전의 내용을 찾아서 교감하였으며, 균여전 및 황룡사 구층탑 찰주본기를 부록으로 덧붙였다. 이는 현재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판본이다.
2002
[삼국유사 주요 판본들 대한민국 보물 지정]
삼국유사 권2(니산본), 권4~5(범어사본), 권3~5(최남선 소장본)이 각각 대한민국 보물 제419-2호, 제419-3호, 제419-4호로 지정되었다.
2002년 10월 19일 삼국유사 권2(니산본), 삼국유사 권4~5(범어사본), 삼국유사 권3~5(최남선 소장본)이 각각 대한민국 보물 제419-2호, 제419-3호, 제419-4호로 지정되며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판본들은 모두 조선 초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정덕본과 문자상 많은 차이를 보인다.
2003
[삼국유사 송은본, 대한민국 국보 제306호 지정]
조선 초기의 간행본인 삼국유사 권3~5(송은본/학산본)가 대한민국 국보 제306호로 지정되었다. 현존하는 삼국유사 중 가장 빠른 간본으로 평가된다.
2003년 2월 3일, 송은 이병직이 소장하던 삼국유사 권3~5(송은본, 학산본)가 대한민국 국보 제306호로 지정되었다. 이 판본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현존하는 삼국유사 중 가장 빠른 간본으로 조선 초기 서지학 연구 및 정덕본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삼국유사 규장각본, 대한민국 국보 제306-2호 지정]
중종 임신간본 가운데 비교적 일찍 발간된 완질본인 삼국유사(규장각본)가 대한민국 국보 제306-2호로 지정되었다.
2003년 4월 14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삼국유사(규장각본)가 대한민국 국보 제306-2호로 지정되었다. 이 책은 중종 임신간본 가운데 낙장이 없이 완질이 갖추어져 있는 판본이자 문자의 결락이나 마멸이 가장 적고 인쇄도 선명하여 16세기 전기에 인출된 것으로 판단된다.
2022
[삼국유사,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 등재]
삼국유사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위원회(MOWCAP)에서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022년에 삼국유사가 유네스코의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위원회(MOWCAP)에서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