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희 (극작가)

극작가, 연출가, 신극 운동 선구자

num_of_likes 47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4:4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극작가, 연출가, 신극 운동 선구자
report
Edit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한국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입니다. 도쿄 유학 중 토월회를 조직하여 한국 신극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했습니다. 말년에는 불우한 생활을 겪었으나, 제1회 한국연극상을 수상하며 그의 공헌을 인정받았습니다. 총 200편 이상의 작품을 연출하고 대본을 썼으나, 현재는 4편만이 남아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901

[극작가 박승희, 한성부에서 출생]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극작가 겸 연출가 박승희가 한성부 장교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의 고관이었던 박정양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한 극작가 겸 연출가 박승희(朴勝喜)가 한성부(현 서울 중구 장교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의 고관이었던 박정양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호는 춘강(春崗)입니다.

1919

[중앙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일본 유학길에 오름]

박승희는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는 그의 신극 운동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박승희는 1919년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정칙영어학교를 거쳤습니다.

1921

[토월회 조직, 한국 신극 운동의 선구자가 되다]

도쿄 유학 중 메이지 대학에 입학한 박승희는 도쿄 유학생들을 모아 '토월회'를 조직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국 신극 운동의 선구자로서 극작과 연출에 전념하며 새로운 연극의 장을 열었습니다.

1921년, 박승희는 도쿄의 메이지 대학 고등과 영문과에 입학하였으며, 이때 도쿄 유학생들을 모아 토월회를 조직하여 한국 신극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동인 성격이었던 토월회는 점차 전문 극단으로 변신하며 박승희는 극작과 연출에 전념하게 됩니다.

1926

[토월회, 내분으로 첫 해산]

박승희의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내분이 발생하여 토월회가 처음으로 해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토월회 운영에 투자했던 재산을 잃고 곤란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박승희의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나오면서 토월회는 내분에 휩싸여 두 차례 분규가 발생하였고, 1926년에 처음으로 해산되었습니다. 토월회가 해산되면서 운영에 재산을 투자했다가 날리게 된 박승희는 곤란한 처지가 됩니다.

1931

[토월회, 결국 완전 해산]

1928년 통속 연극으로 재기를 시도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고, 결국 토월회는 1931년에 완전히 해산되어 한국 신극 운동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습니다.

토월회 해산 후 1928년에 재기 공연을 올리기도 했으나 별다른 소득이 없었고, 결국 토월회는 1931년에 완전히 해산되었습니다.

1932

[태양극장 결성, 흥행 성공으로 재기]

토월회 해산 후 여러 극단을 조직하던 박승희는 1932년 '태양극장'을 결성했습니다. 이 극단은 흥행에 어느 정도 성공하여 그의 재기에 큰 도움이 되었으나, 흥행극 성격으로 인해 연극계에서 큰 인정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토월회 해산 후에도 박승희는 여러 극단을 조직하였습니다. 이 가운데 1932년 결성한 태양극장만이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하였습니다. 태양극장 공연은 흥행극 성격이 뚜렷하였기 때문에 박승희는 연극계에서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1963

[제1회 한국연극상 수상, 신극 공헌 인정받음]

한국 전쟁 후 불우한 생활을 이어가던 박승희는 1963년 제정된 제1회 한국연극상의 수상자로 선정되어 한국 신극에 대한 그의 공헌을 뒤늦게나마 인정받았습니다.

한국 전쟁 후 경상남도 마산으로 피난하여 10여 년 동안 불우한 생활을 하던 박승희는 1963년에 한국연극상이 제정되었을 때 제1회 수상자가 되어 신극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았습니다.

1964

[극작가 박승희 타계]

한국 신극 운동의 선구자이자 극작가 박승희가 1964년 7월 15일 타계했습니다. 그는 총 200편이 넘는 작품을 연출하고 대본을 썼으며, 그의 작품은 한국 연극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한국 신극 운동의 선구자이자 극작가 박승희가 1964년 7월 15일 타계했습니다. 그는 총 연출작이 200편이 넘고, 각색작을 포함하여 연극 대본도 200편을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 가운데 현전하는 작품은 4편뿐입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