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 (시인)
시인, 문학가, 작사가, 월북 인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4:38
박세영은 대한제국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카프 문학 운동에 참여했던 시인입니다.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 국가인 〈애국가〉를 작사하고 서사시 《밀림의 역사》 등 주요 작품을 남기며 북한 문학계의 거목으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림진강〉은 남북한 모두에서 깊은 울림을 준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힙니다.
1902
[박세영 시인 출생]
대한제국 한성부에서 시인 박세영이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그의 고향은 고양군에 편입되기도 했습니다.
박세영 시인은 1902년 7월 7일 대한제국 한성부(현 경성부 한지면 두모리)에서 가난한 선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고향은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고양군에 편입되었다가 나중에 서울로 환원되었기 때문에 고양군 출신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1919
[3.1운동 참여 및 독립사상 고취]
배재고보 재학 중 송영과 함께 등사신문을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했습니다. 졸업 후에는 상하이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송영과 함께 배재고보에 입학하여 교원 강매, 이중화의 영향을 받아 문학을 시작했습니다. 3.1운동 당시 송영과 함께 등사신문을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했으며, 배재고보 졸업 후 상하이로 떠났습니다.
1925
[카프 문학 운동 참여]
상하이에서 문학단체 염군사 동인으로 활동하며 <황포강반>을 발표한 후 귀국하여 연희전문에 편입했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 카프 문학운동에 참가하며 프롤레타리아 동시를 다수 창작했습니다.
상하이에서 문학단체 염군사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황포강반>을 발표했고, 귀국 후 1925년 연희전문에 편입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문학운동에 참가했으며, 송영과 함께 프롤레타리아 동시를 다수 창작하였습니다.
1937
[시집 《산제비》 발표 및 절필]
고향 고양군에서 교원을 역임하며 여러 동시와 동극을 발표하다가 시집 《산제비》를 펴낸 이후 해방까지 문학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1928년에는 고향 고양군에서 교원을 역임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동시, 동극을 발표하였습니다. 1937년 시집 《산제비》를 펴낸 이후 해방까지 절필하였습니다.
1946
[해방 후 월북, 북한 문학계 활동 시작]
해방 후 북한으로 넘어가 조선문학작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부장을 역임하며 북한 문학계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방 후 1946년 월북하여 조선문학작가동맹 중앙집행위원장,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출판부장을 역임했습니다.
1947
[북한 국가 〈애국가〉 작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작사했습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종군작가로 참전하여 군무자들의 문예 활동과 창작을 지도했습니다.
1947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인 〈애국가〉를 작사했습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종군작가로 참전하여 군무자들의 문예 활동과 창작을 지도하였습니다.
1955
[대표작 〈림진강〉 창작]
대표적인 유행가인 〈림진강〉을 창작했습니다. 이 노래는 대한민국에 두고 온 가족과 벗들을 그리워하며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담아 지어졌고, 남북한 모두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가 지은 〈림진강〉은 1950년대에 지은 유행가로, 대한민국에 두고온 가족들과 벗들을 그리워하면서 지은 노래인데 가사 내용 중에 남한의 궁핍한 경제상을 북한의 풍족한 협동벌의 모습과 대조시켜 북한 체제의 우월성을 담으려 했습니다. 이 노래가 남한에서 유행하자, 정부는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탄압하였지만 1990년대에 다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62
[북한 2대 걸작 서사시 《밀림의 역사》 발표]
북한에서 조기천의 《백두산》과 함께 2대 걸작 서사시로 평가받는 대작 《밀림의 역사》를 발표하며 문학적 역량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1962년에는 그의 대표작인 서사시집 <<밀림의 역사>>를 썼는데, 북한에서 이 작품은 조기천의 <<백두산>>과 함께 북한의 2대 걸작 서사시로 평가받았습니다.
1989
박세영 시인은 1989년 2월 28일에 사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