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대혁명학원
학교, 교육기관, 북한 기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4:05
만경대혁명학원은 초대 김일성이 항일투쟁 전사자 유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한 북한의 특수 기숙학교입니다. 설립 초기 '평양혁명가유자녀학원'으로 불렸으며, 한국전쟁 시 김일성 친위대로 활약했습니다. 졸업생들은 북한 핵심 엘리트층으로 성장하는 주요 통로가 되었으며, 현재 평양 만경대구역에 위치한 초·중·고등 교육기관입니다.
1947
[만경대혁명학원 개원]
항일무장투쟁 중 전사한 독립군 유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평양혁명가유자녀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만경대에 기숙학교가 개원했습니다. 개원식에는 당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일성이 참석했습니다.
1947년 10월 12일,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하다가 전사한 독립군의 유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평양혁명가유자녀학원'(平壤革命家遺子女學院, Pyongyang School for the Bereaved Children of Revolutionaries)이라는 이름의 기숙학교가 만경대에 세워졌습니다. 개원식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김일성이 직접 참석하여 학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1948
[새로운 교사 신축]
개원 이듬해인 1948년, 만경대혁명학원은 학생들을 위한 새로운 교사를 신축하여 교육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1948년 10월 24일, 만경대혁명학원은 교육 여건을 확충하기 위해 새로운 교사를 신축했습니다. 이는 학교의 규모와 기능을 확장하고 학생들에게 더 나은 학습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1950
[김일성 친위대 활동 및 엘리트 양성]
한국전쟁 중 김일성은 만경대혁명학원 출신 학생들에게 최고사령부 호위 임무를 맡겨 '친위중대'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전장에 보내지는 대신 소련 등으로 유학을 갔으며, 강성산, 연형묵 등 후일 북한의 핵심 엘리트층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전쟁 시기, 김일성은 "부모들이 일제와 싸우다가 죽었는데 그 아이들까지 전사자로 만들 수 없다"는 이유로 만경대혁명학원 출신 학생들을 전장으로 보내지 않고 최고사령부 호위 업무를 맡겼는데, 이들을 '친위중대'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이들은 소련과 동유럽 국가에 유학하도록 보내졌으며, 강성산, 연형묵, 김환, 오극렬, 김영춘 등 많은 졸업생들이 북한의 엘리트층 및 핵심 계층으로 자리 잡는 주요 통로가 되었습니다.
2000
[김정일 지시로 학제 과정 축소]
2000년,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만경대혁명학원의 교육 과정이 축소되었습니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학원 운영 방식에 조정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2000년,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만경대혁명학원의 학제 과정이 축소되었습니다. 이는 북한 교육 시스템 전반의 변화 또는 학원의 특수성 재정립과 관련된 결정으로 풀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