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현 (철도 기관사)

철도 기관사, 6.25 전쟁 영웅, 국가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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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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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기관사, 6.25 전쟁 영웅, 국가유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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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철도 기관사 김재현은 6.25 전쟁 중 미군 보급품 후송 작전 수행 중 순직한 영웅이다. 오랫동안 '딘 소장 구출 작전'의 주역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자료 검토를 통해 본래 임무가 보급품 후송이었음이 명확히 밝혀졌다. 그의 희생을 기려 사후 미국 국방부로부터 우수공무훈장을 수훈했으며, 후대에 그의 정신이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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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김재현 기관사 출생]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김재현 철도 기관사가 태어났다. 그의 삶은 6.25 전쟁의 비극 속에서 조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빛나게 된다.

1923년 9월 21일 충청남도 논산시에서 김재현 철도 기관사가 출생했다.

1944

[철도국 입사]

일제강점기 철도국에 입사하며 철도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그가 민족의 운명을 건 임무를 수행하게 될 기반이 되었다.

1944년 일제강점기 당시 철도국에 입사하였다.

1950

[6.25 전쟁 발발]

평화롭던 대한민국을 뒤흔든 6.25 전쟁이 발발했다. 이 비극적인 전쟁은 김재현 기관사의 운명과도 깊이 얽히는 전환점이 되었다.

대전기관차사무소 기관사로 일하던 중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딘 소장의 대전 방어 연장 결정]

미 제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요청에 따라, 미 제24보병사단 딘 소장은 대전 철수 시점을 하루 연장하여 7월 20일 야간으로 변경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김재현 기관사의 마지막 임무 배경이 된다.

미 제8군 사령관 월튼 H. 워커 중장은 7월 18일 오전 포항에 상륙한 미 제1기병사단이 영동 일대에 전개하는 데 최소한 2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고 이에 따라 미 제24보병사단 사단장 윌리엄 F. 딘 소장은 원래 계획했던 철수 시점을 7월 19일 야간에서 하루 더 연장하여 7월 20일 야간으로 변경하고 대전 방어를 담당한 제34연대에 제19연대 제2대대를 배속시키는 등 전투력을 증강시키며 지연전을 준비하였다.

[대전 전투 개시]

북한 공군 야크 전투기의 대전 후방 보급로 공습과 함께 대전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미 제24보병사단은 7월 20일까지 대전을 사수하며 지연 임무를 완수하고 철수를 준비했다.

7월 19일 아침 북한 공군 야코블레프 Yak-9 야크 전투기의 대전 후방 보급로 공습과 함께 대전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미 제24보병사단은 목표대로 7월 20일까지 대전을 사수하며 지연 임무를 완수하고 철수를 준비하였다.

[딘 소장 실종]

딘 소장은 7월 20일 오후 6시부터 대전에서 철수하던 중 북한군의 매복 공격을 받아 차에서 내려 도보로 철수하다가, 부상병에게 물을 떠다 주기 위해 계곡을 내려가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신하면서 늦은 밤 실종되었다. 이는 김재현 기관사의 작전이 '딘 소장 구출 작전'이 아니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딘 소장은 7월 20일 오후 5시 이후 대전에서 마지막으로 철수한다는 내용의 전보문을 영동에 위치한 사단지휘소에 보내고 오후 6시부터 미 제24보병사단 34연대의 잔류 병력과 함께 차량 대열로 부대 건제를 유지한 채 대전에서 철수하였는데 그 후 북한군의 매복 공격을 받아 차단선을 돌파하지 못 하고 차에서 내려 도보로 철수하던 중, 함께 가던 부상병에게 물을 떠다 주기 위하여 어둠 속에서 계곡을 내려가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신하면서 7월 20일 늦은 밤 실종되었다. 당시 미 제24보병사단 대변인은 7월 20일 오후 9시 20분 기준 딘 소장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실종자로 확정할 수는 없다고 발표했으며, 미군에서 딘 소장을 공식적으로 실종자(Missing in Action)로 확정한 것은 7월 22일이었다.

[딘 소장의 대전역 보급품 후송 명령]

미 제24보병사단 딘 소장이 대전역에 적재된 탄약 등 보급품 화차 10량의 후방 이송을 명령했다. 이 명령은 김재현 기관사가 참여하게 될 '보급품 후송 작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윌리엄 F. 딘 소장이 직접 7월 20일 16시경 대전역 안의 대부분 탄약으로 구성된 보급품 적재 화차 10량의 후송 명령을 영동에 위치한 사단지휘소에 하달하였다.

[미 공군의 대전역 보급품 화차 폭격]

김재현 기관사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보급품 후송에 실패하자, 7월 21일 오전 8시 미 공군이 대전역에 남아있던 보급품 화차들을 폭격하여 북한군에 의한 노획을 막았다. 이 폭격은 전 세계에 보도되며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알렸다.

최종적으로 한국인 철도공무원 및 미군들의 노력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후송에 실패하여 7월 21일 오전 8시 미 공군이 보급품이 적재된 화차들을 폭격으로 파괴하여 북한군에 의한 노획을 방지하였다. AP 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로 타전되어 수많은 미국 신문에 1950년 7월 21일자로 보도되었으며, 화차 폭격에 참여한 P-51 머스탱 전투기 조종사는 인터뷰에서 엄청난 탄약이 적재된 화차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화염을 미국 독립기념일 축하행사의 상징인 화려한 불꽃놀이 광경에 비유하였다.

[보급품 후송 작전 중 순직]

김재현 기관사는 미카 3형 증기기관차 219호(모델번호: 미카3-219호)에 미군 호송병 6명을 태우고 이원역을 출발, 북한군의 매복 공격을 뚫고 대전역에 도착했다. 그러나 기관차 손상으로 보급품 화차 견인이 불가능하여 복귀하던 중 세천역 부근에서 북한군의 집중 사격에 의해 순직했다.

딘 소장의 명령에 의해 '보급품 후송 작전'이 착수되자 김재현 기관사는 부기관사인 황남호 본무기관조사, 현재영 보조기관조사와 함께 참여하여 미카 3형 증기기관차 219호(모델번호: 미카3-219호)에 탄수차만을 연결한 채 6명의 미군 호송병들을 싣고 7월 20일 오후 4시 30분경 이원역을 출발하였다. 북한군의 매복 공격을 뚫고 어렵사리 대전역에 도착하였으나 탄수차에 총알 구멍이 생겨 물이 새면서 압력이 떨어져 보급품이 적재된 화차 10량을 연결 시 기관차의 동력 부족으로 이동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여 보급품 후송 임무를 포기하고 다시 옥천역 복귀를 결정한다. 복귀 도중 세천역 부근에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순직하였으며 김재현 기관사가 총에 맞아 즉사한 이후 현재영 보조기관조사도 총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그 후 미군 스몰우드 하사가 운전을 하여 기관차는 어렵사리 옥천역에 복귀에 성공하였다.

[딘 소장 포로로 잡힘]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종된 지 36일 만에 딘 소장이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북한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낭떠러지로 떨어져 실신하면서 홀로 낙오된 이후 본대로 복귀하기 위해 36일 동안 산천을 헤매다가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8월 25일이 되어서야 한두규와 최종봉의 밀고로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미군, 딘 소장 생존 인지 (최초)]

북진 중 평양 부근에서 딘 소장 심문 통역을 맡았던 북한군 징집병 이규현이 귀순하여 진술함으로써 미군이 딘 소장이 생존하여 북한군에 포로가 된 것을 인지했다.

미군에서는 실종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다가 1950년 10월 북진 중 평양 부근에서 딘 소장 심문시 통역을 맡았던 북한군 징집병 이규현이 귀순하여 진술함으로써 미군에서도 이때 딘 소장이 생존하여 북한군에 포로가 된 것을 인지하였다.

1951

1951.01.09 사후 1년

[딘 소장 명예훈장 수여식 (사후 추정)]

딘 소장의 생사 여부가 불확실한 가운데, 미군에서 딘 소장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여 명예훈장 수여식을 거행했다. 이는 딘 소장의 용맹함을 기리는 동시에, 그의 운명에 대한 당시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미군에서는 이규현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정황상 전사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을 하였는지 1951년 1월 9일에 명예훈장(Medal of Honor) 수여식을 거행하였다.

1951.12.24 사후 1년

[딘 소장 포로 상태 공식 확인]

북한군이 공산계 언론사 기자 월프레드 G. 버체트를 초청하여 딘 소장 인터뷰를 시켰고, 딘 소장의 사진과 함께 기사가 배포되면서 포로 상태인 딘 소장의 상황이 전 세계에 명확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생사여부를 계속 조사 중 1951년 12월 21일 북한군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공산계 언론사 소속 월프레드 G. 버체트(Wilfred Graham Burchett) 종군기자를 초청하여 인터뷰를 시켰고, 1951년 12월 24일 딘 소장의 사진과 함께 전 세계로 기사가 배포되면서 포로 상태인 딘 소장의 상황이 명확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1962

1962.12.05 사후 12년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 건립 (순직일 오기)]

김재현 기관사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순직비가 대전광역시 판암동에 건립되었으나, 순직일이 실제 순직일인 7월 20일이 아닌 7월 19일로 잘못 기재되는 오류가 있었다.

1962년 12월 5일 대전광역시 판암동 소재 대전역–세천역 구간에 건립되었던 김재현 기관사 순직비에 순직일이 7월 19일로 잘못 들어가면서부터이다.

1983

[국립서울현충원 안장]

김재현 기관사의 유해가 철도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영관급 묘역에 안장되었다. 이는 그의 희생을 국가적으로 기리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김재현 기관사의 유해는 동료들에 의해 영동산 아래에 묻혔다가 휴전 후 고향 논산으로 이장되었고, 1983년 철도인으로는 처음으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영관급 묘역에 안장되었다.

2008

2008.10.17 사후 58년

[미카 3형 증기기관차 129호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모델번호 오류)]

김재현 기관사가 운전했다고 잘못 알려진 미카 3형 증기기관차 129호가 국가등록문화유산 제415호로 지정되었다. 실제 김재현 기관사가 운전한 기관차는 미카 3-219호였다.

현재 김재현 기관사의 유품은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철도박물관에 소장, 전시 중이며 그가 운전했다고 알려진 미카 3형 증기기관차 129호(모델번호: 미카3-129호)는 2008년 10월 17일 국가등록문화유산 제415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김재현 기관사가 운전했던 기관차는 '미카 3-219호'였음이 밝혀졌다.

2012

2012.06 사후 62년

[김재현 기관사, 미국 국방부 훈장 수훈]

김재현 기관사가 6.25 전쟁 당시의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국방부로부터 우수공무훈장(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Medal for Exceptional Public Service)을 수훈했다. 이는 그의 희생이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2012년 6월 미국 국방부로부터 '미국 국방부 장관실 우수공무훈장(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Medal for Exceptional Public Service)'을 수훈하였다. 당시에는 미국 국방부가 민간인에게 주는 가장 높은 훈격의 훈장인 'Secretary of Defense Exceptional Civilian Service Award'를 수여했다고 보도되었지만 실제로는 미국 국방부가 순수 민간인과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 중 3등급인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 Medal for Exceptional Public Service'를 수여하였다.

2015

2015.12 사후 65년

[황남호, 현재영 기관조사 미국 국방부 훈장 수훈]

김재현 기관사와 함께 '보급품 후송 작전'에 참여했던 황남호 본무기관조사와 현재영 보조기관조사 역시 미국 국방부로부터 훈장을 수훈했다. 이로써 숭고한 임무를 함께했던 동료들의 희생 또한 기려졌다.

2015년 12월 황남호 본무기관조사와 현재영 보조기관조사 역시 미국 국방부로부터 훈장을 수훈했는데 이때도 역시 미국 국방부가 민간인에게 주는 가장 높은 훈격의 미국 국방부 특별공로훈장을 수여했다고 보도되었지만 실제 훈장의 모양 등을 비추어 보아 김재현 기관사에게 수여된 훈장과 동일한 훈장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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