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신라)

신라 왕족, 추존왕, 관료, 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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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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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왕족, 추존왕, 관료, 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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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지왕의 아들이자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이다. 진평왕과 선덕여왕 시기 중앙 정계에서 이찬, 대장군 등 요직을 거치며 활약했다. 특히 황룡사 9층 목탑 건축을 주관하는 등 신라의 주요 사업에 참여했으며, 사후 아들 무열왕 즉위로 문흥갈문왕에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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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9

[김용수 탄생]

신라의 왕족으로, 진지왕과 지도부인의 아들 김용수(또는 김용춘)가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579년 이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진지왕과 지도부인 박씨 사이에서 아들 김용수가 태어났다. 그의 정확한 출생일은 알 수 없으나, 부친 진지왕이 579년에 사망했으므로 그 이전에 태어났음이 분명하다.

[부친 진지왕 사망 및 왕위 계승권 상실]

부친 진지왕이 사망하면서 김용수는 왕위 계승권에서 멀어졌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진지왕이 폐위되어 김용수의 신분이 성골에서 진골로 격하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진지왕이 579년에 사망하면서 김용수는 왕위 계승권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삼국유사 기록에 따르면 진지왕이 폐위되었는데, 이 경우 김용수의 신분이 성골에서 족강(族降)되었을 가능성이 학계에서 제기된다.

602

[아들 김춘추 탄생]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와의 사이에서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아들 김춘추를 낳았다.

부인인 진평왕의 딸 천명공주와의 사이에서 아들 김춘추(훗날 태종 무열왕)를 낳았다.

622

[이찬 및 내성사신 임명]

신라의 관등 중 최고위직 중 하나인 이찬에 오르고 내성사신으로 임명되어 중앙 정계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진평왕 44년, 이찬 관등에 있었으며 내성사신(內省私臣)에 임명되어 신라 중앙 정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629

[낭비성 함락]

대장군에 임명되어 김서현, 김유신을 부장으로 삼아 출진, 낭비성을 함락하는 군사적 업적을 세웠다.

대장군이 되어 김서현, 김유신을 부장으로 이끌고 출진하여 백제의 낭비성을 함락시키는 중요한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다.

635

[주현 위문]

선덕여왕 4년, 신라의 여러 주현을 돌아보며 백성들을 위문하는 활동을 펼쳤다.

선덕여왕 4년, 신라의 각 주현을 돌아보며 백성들의 안부를 묻고 위문하였다.

645

[황룡사 9층 목탑 건축 주관]

신라의 상징이자 불교 건축의 걸작인 황룡사 9층 목탑 건축을 주관했다. 이 탑은 당시 동아시아 최고층 목탑 중 하나였다.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불교 건축의 정수이자 당시 동아시아 최고층 목탑 중 하나였던 황룡사 9층 목탑의 건축을 주관했다.

646

[김용수 사망]

645년 황룡사 9층 목탑 건축 주관 이후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며, 646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황룡사 9층 목탑 건축을 주관한 이후 더 이상 기록에 나타나지 않으며, 646년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654

[문흥갈문왕으로 추존]

아들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하자, 그의 공적을 기려 문흥갈문왕으로 추존되었다. 이는 왕이 되지 못한 왕족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중 하나였다.

아들 김춘추가 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한 654년에 문흥갈문왕(文興葛文王)으로 추존되었다. 이는 사후에 왕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것으로,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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