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1878년)

독립운동가

num_of_likes 46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41:04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독립운동가
report
Edit

김영하 선생은 1878년 조선에서 태어나 1920년 순국한 독립운동가입니다. 그는 숙부 김용상 선생의 제자로, 경술국치 이후 대한의 국권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1917년부터 전남 일대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주도했습니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했으며, 후에 건국포장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878

[독립운동가 김영하 선생 탄생]

조선 전라도 화순군에서 태어나다. 본관은 진주 김씨 회헌공파 능주종중이다.

김영하 선생은 1878년 10월 24일 (음력 9월 19일) 조선 전라도 화순군 도암면 도장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진주 김씨 회헌공파 능주종중 본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1917

[독립운동 군자금 모금 활동 시작]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독립운동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다.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의 기회를 모색하던 중 1917년경 김교락, 양재홍, 문재교, 정동근, 고성후 등과 동지적 결합을 맺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나주, 함평, 화순, 순천 등 전남지역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1년여 동안 수십 차례에 걸쳐 천여 원의 군자금을 모금하며 조직을 확대했습니다.

1918

[독립운동 활동 중 체포 및 1심 판결]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 중 일경에 피체되어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다.

독립운동 자금 모금 활동을 이어가던 중 김영하 선생은 일경에 피체되었습니다. 1918년 12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습니다.

1919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형 확정]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으나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르다.

광주지방법원의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지만, 1919년 3월 대구복심법원에서 10년형이 확정되었습니다. 이후 선생은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1920

[옥중 순국]

옥고를 치르던 중 42세의 나이로 순국하다.

독립운동으로 인한 옥고를 치르던 중, 1920년 4월 1일 42세의 나이로 순국하였습니다.

1980

[건국포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다.

김영하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는 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했습니다.

1990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어 그의 헌신을 기리다.

김영하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이 재조명되어,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여 그의 헌신을 기렸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