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 (가수)
가수, 트로트 가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7:59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본명 강상수.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렸다. 1969년 데뷔 후 긴 무명 시절을 보냈으나, 1980년대 후반 '봉선화 연정'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전성기를 맞았다.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싫다 싫어', '사랑의 이름표'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으며, 2006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24년 8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42
[트로트 4대 천왕 현철의 탄생]
'트로트 4대 천왕' 중 한 명인 가수 현철이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 월포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에서 태어났다.
현철은 1942년 7월 29일 경상남도 김해군 대저면 도도리 월포마을(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저2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강상수로, 후에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며 한국 트로트 음악계의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1954
1954년 대저중앙국민학교를 졸업했다.
1961
[부산동성고 졸업 및 동아대 수석 입학]
부산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경영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며 수재의 면모를 보였다.
1961년에 부산동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동아대학교 경영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하며 뛰어난 학업 능력을 보여주었다.
1962
1962년에 동아대학교 경영학과를 자퇴하고 군에 입대했다.
1969
[가수 데뷔 및 무명 시절 시작]
《무정한 그대》를 발표하며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지만, 당시 남진과 나훈아의 인기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긴 무명 시절을 시작했다.
1969년 《무정한 그대》라는 곡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러나 당시 남진과 나훈아가 한창 주목받던 시기라 현철은 인기를 얻지 못하고 오랜 무명 시절을 보내게 된다.
1974
['현철과 벌떼들' 결성]
인기를 얻지 못해 활동을 중단하고 고향 부산으로 돌아가 음악 그룹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 팝송 리메이크 활동을 이어갔다.
1974년에 활동을 중단하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가서 음악 그룹 '현철과 벌떼들'을 결성하고 그룹 리더로서 팝송을 리메이크하면서 활동하였지만, 이 역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80
1980년에 그 동안 활동해 오던 '현철과 벌떼들'이 해체되었다.
1982
[솔로 전향 및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히트]
솔로로 전향하여 그룹 시절의 곡인 아내를 향한 노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얼굴 없는 가수로 이름을 알렸다.
1982년에 솔로로 전향했다. 전향과 동시에 그룹 시절에 활동했던 곡이자 아내를 향한 노래였던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나, 방송에 자주 출연하지 못해서 그 때도 얼굴 없는 가수에 불과하였다.
1983
[트로트 전향 및 《사랑은 나비인가봐》 발표]
본격적으로 트로트로 성향을 바꾸고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발표하며 구성진 꺾기 창법과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였다.
1983년에 본격적으로 트로트로 성향을 바꾼 후 현철의 구성진 꺾기 창법과 뛰어난 가창력을 겸비하여 《사랑은 나비인가봐》를 발표하였다.
1984
[《청춘을 돌려다오》 리메이크]
1967년에 발표되었던 《청춘을 돌려다오》를 리메이크하여 활동하며 트로트 가수로서 입지를 다졌다.
1984년에는 1967년에 발표되었던 《청춘을 돌려다오》를 리메이크하여 활동했다.
1987
[리비아 위문 공연 및 《내 마음 별과 같이》 발표]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 파견된 근로자들을 위한 공연에 참여하여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으로 큰 위로를 주었고, 《내 마음 별과 같이》를 발표했다.
1987년에 리비아 대수로 공사 현장에 공연을 갔었는데 당시 리비아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고국의 가족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공연 관계자가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부른 현철을 인기가수 공연단에 포함시켰다. 이 해에 《내 마음 별과 같이》를 발표했다.
1988
[《봉선화 연정》 대히트 및 KBS 가요대상 수상]
가수로 데뷔한 이래 가장 큰 인기를 얻은 《봉선화 연정》을 발표하고 이 곡으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20년 무명 시절의 한을 풀었다. 이 노래를 계기로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88년에 발표된 《봉선화 연정》이 가수로 데뷔한 이래 가장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 노래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였다. 작곡가 박현진의 말에 따르면, 수상 소감 중 20년의 무명 시절을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이 노래를 기점으로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89
[다수의 가요제 대상 수상]
전년도에 이어 MBC 10대 가수상, 제9회 KBS 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인기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1989년에 MBC 10대 가수상, 제9회 KBS 가요대상 대상,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고복수 가요제 대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1990
[《싫다 싫어》 KBS 가요대상 2년 연속 수상]
《싫다 싫어》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대상을 차지했고, 문희옥과 함께 혼성 듀엣 메들리를 발표하며 '트로트 4대 천왕'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1990년에 《싫다 싫어》로 KBS 가요대상을 수상하며 2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수상했다. 그 해에 문희옥과 함께 《잘했군 잘했어 메들리》, 《항구 메들리》로 혼성 듀엣 메들리를 발표하며 현철은 1988년부터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불렸다.
1991
[주요 가요 시상식 수상]
MBC 10대 가수상,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상, 제2회 서울가요대상을 수상하며 6년간 연속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91년에 MBC 10대 가수상,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상, 제2회 서울가요대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각종 가요부문상들을 수상하며 6년간 연속으로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1998
[《사랑의 이름표》 발표 및 세대별 최고 인기 가수 등극]
솔직한 가사와 구성진 트로트 리듬의 곡 《사랑의 이름표》를 발표하여, 그 해 한국 여론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부분 40대와 50대 선호도 1위를 기록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증명했다.
1998년에 발표된 '사랑의 이름표'는 솔직한 가사와 구성진 트로트 리듬의 곡이며 그 해 한국 여론 설문조사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수' 부분에서 40대와 50대 선호도 1위를 기록하였다.
1999
1999년 저축의 날 국민훈장포장을 수상했다.
2002
[《아미새》 히트 및 대중적 활동]
《아미새》를 발표하며 다세대의 인기를 얻었고, 전국노래자랑에 초대 가수로 자주 출연하며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2002년에는 《아미새》를 발표하였으며, 이 곡이 다세대의 인기를 얻게 되자 전국노래자랑에 초대 가수로 자주 출연했다.
2006
[옥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하며 그의 오랜 음악 활동과 문화 예술 발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06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이는 현철의 음악적 업적과 문화 예술 발전에 대한 기여를 국가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2007
[공연 중 불의의 사고 발생]
공연 리허설 중 추락 사고로 갈비뼈 3개 골절 및 경추 디스크 증상이 발생하며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2007년에 한 방송에서 공연 리허설 중 추락 사고를 당해서 갈비뼈 3개를 다쳐 골절상을 입은 후 경추 디스크 증상이 왔다.
2010
[대한민국 연예문화상 및 연예예술상 수상]
제11회 대한민국 연예문화상 성인가요 부문 대상과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발전공로 우정상을 수상하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0년에 제11회 대한민국 연예문화상 성인가요 부문 대상, 제16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연예발전공로 우정상을 수상하였다.
2018
[경추 디스크 수술 후 건강 악화]
계속 좋지 않았던 경추 디스크를 수술했지만, 신경 손상으로 허리를 거의 쓸 수 없게 되어 재활 치료를 시작했다.
2018년 경에 계속 좋지 않았던 경추 디스크를 수술한 후 신경이 심하게 손상되면서 허리를 거의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이후 재활 치료를 이어갔다.
2019
[건강 문제로 방송 활동 축소]
나빠진 건강 상태로 인해 방송 활동이 대폭 줄어들고 KBS 1TV '가요무대' 외에는 거의 출연하지 못하게 되었다.
2019년 이후로는 나빠진 건강 상태로 인해 방송 활동이 대폭 줄어들어 KBS 1TV의 가요무대 외에 다른 가요 프로그램에는 거의 출연하지 못했다.
2020
2020년 11월 16일 가요무대 출연을 끝으로 TV에서는 자취를 감췄고, 2021년 이후로는 무대에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나빠져 활동을 중단하였다.
2021
[건강 회복 의지 표명]
불편한 몸을 이끌고 김흥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농담과 함께 무대로 돌아오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2021년 5월에 시대를 같이 한 가수 김흥국의 백팔가요 라디오 프로그램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출연하여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면서 도쿄 올림픽에도 나가서 뛰어보겠다는 말로 팬들을 안심시키는 농담을 던질 정도로 반드시 다시 무대로 돌아오겠다는 강한 의지력으로 재활 치료에만 매진해 왔다.
2024
2021년 이후 재활 치료 중 뇌경색, 폐렴 등의 다른 지병도 겹쳐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면서 송해와 현미의 빈소에도 찾아오지 못했다. 2024년 5월에 병원에 입원하였다.
2024년 7월 초 위독한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 옮겨져서 치료를 받았다.
['트로트 4대 천왕' 현철 별세]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혜민병원에서 향년 82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공적을 기려 대한민국 가수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2024년 7월 15일,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 소재 혜민병원에서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고, 그간 공적을 기려 대한민국 가수장으로 치렀다. 유해는 경기도 광주시 능평동 휴 추모공원 납골당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