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 (대한민국)

사관학교, 교육기관, 군사 교육 기관, 장교 양성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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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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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교육기관, 군사 교육 기관, 장교 양성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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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 및 해병대의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최고 교육기관입니다.1893년 조선 최초의 근대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으로 시작했습니다.1946년 해군병학교로 출발하여 1949년 '해군사관학교'라는 현재의 이름을 얻었습니다.졸업 시 공학사, 이학사, 문학사 학위와 함께 군사학사 학위를 복수 수여합니다.대한민국 3군 사관학교 중 가장 먼저 설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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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통제영학당 설립 칙령 공포]

고종 황제의 칙령에 따라 조선 최초의 근대적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 설립이 공포되었다. 유길준, 박영효 등의 상소에 따른 결정이었다.

1893년 3월,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개화파 유길준, 박영효 등의 상소를 받아들여 최초의 근대적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 설립에 관한 칙령을 공포했다. 이로써 조선의 해군 장교 양성 교육의 현대적 시작을 알렸다.

[통제영학당 건물 신축]

통제영학당의 학교 건물이 인천 강화도 갑곶진 근처에 신축되었다. 이는 근대적 해군 교육을 위한 물리적 기반을 마련하는 중요한 단계였다.

1893년 5월, 통제영학당의 학교 건물이 인천 강화도 갑곶진 근처에 신축되었다. 이는 고종 황제의 칙령에 따른 통제영학당 설립 계획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해군 장교 양성 교육을 위한 시설을 갖추기 위함이었다.

[통제영학당 개교]

조선 최초의 근대적 해군사관학교인 통제영학당이 개교하여 사관생도 50명과 수병 300명을 모집했다. 영국 해군 교관의 지도 아래 영어, 군사학, 항해학, 포술학 등 근대 해군 교육을 시작했다.

1893년 10월, 대한제국 고종의 명에 따라 통제영학당이 개교했다. 사관생도 50명과 수병 300명을 모집하여 교육을 시작했으며, 영국의 해군 대위 콜웰(William H. Callwell)과 하사관 커티스(James Curtis)를 교관으로 초빙해 영어, 군사학, 항해학, 포술학 등 서구식 근대 해군 교육을 진행했다. 이는 조선 해군의 근대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첫걸음이었다.

1896

[통제영학당 폐교]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압력으로 영국인 교관들이 귀국하면서 통제영학당이 폐교되었다. 조선 최초의 근대 해군 교육기관은 3년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896년 5월, 동학농민운동 발발과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면서 영국인 교관들이 해고되고 귀국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통제영학당은 결국 폐교되었으며, 조선 최초의 근대적 해군사관학교는 불과 3년여 만에 문을 닫았다.

1945

[해사대 결성]

서울 안동교회에서 해양 관련 인사들이 모여 ‘해사대’를 결성했다. 이는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의 뿌리가 되는 조직 중 하나로, 해양 주권 수호의 염원에서 출발했다.

1945년 8월, 광복 직후 서울 안동교회에서 해양에 대한 뜻을 품은 인사들이 모여 ‘해사대’를 결성하였다. 이후 구 교통국 해사 및 조선해사보국단과 연합하여 ‘조선해사협회’를 결성하고, 미 군정 선포 후 해안경비를 담당하는 ‘해방병단’을 조직, 단장에 손원일 소령이 취임했다. 이는 대한민국 해군 및 사관학교의 초석을 다지는 중요한 움직임이었다.

1946

[해군병학교 설립]

미 군정 하에 ‘해군병학교’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이는 현재 해군사관학교의 직접적인 전신으로, 손원일 중령이 초대 교장에 취임하며 정식적인 해군 장교 양성 교육의 시작을 알렸다.

1946년 1월 17일, 미 군정법령 제42호에 의해 국방사령부에 편입된 해방병단 산하에 ‘해군병학교’가 설립되었다. 초대 교장에는 손원일 중령이 취임하여, 대한민국 해군 장교 양성의 정식 교육기관으로서 그 첫발을 내디뎠다.

[해사 1기생 입교]

해군병학교에 해사 1기생 총 113명이 입교식을 거행하며 정식 생도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해군의 초석이 될 첫 장교 후보생들이었다.

1946년 2월 8일, 해군병학교에서 총 113명의 해사 1기생이 입교식을 거행하고 생도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조국의 해양 주권 수호를 위한 핵심 인재로 성장할 준비를 하였다.

[조선해안경비대 사관학교로 개칭]

해방병단이 ‘해안경비대’로 개칭됨에 따라, 해군병학교도 ‘조선해안경비대 사관학교’로 개칭되었다. 이는 해군 조직의 변화에 따른 교육기관 명칭 변경이었다.

1946년 6월 15일, 미 군정 하에 해방병단이 ‘해안경비대’로 공식 개칭되면서, 그 산하 교육기관인 해군병학교 역시 ‘조선해안경비대 사관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는 해안 방위 임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직 개편의 일환이었다.

1947

[해군사관학교 교훈 제정]

“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라는 교훈이 제정되었다. 이는 해군사관생도들이 지녀야 할 정신적 가치와 태도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었다.

1947년 10월 21일, 당시 ‘해사대학’으로 개칭된 상태에서 "진리를 구하자, 허위를 버리자, 희생하자"라는 교훈이 제정되었다. 이 교훈은 오늘날까지도 해군사관생도들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울림을 주고 있다.

1949

[해군사관학교로 교명 변경]

‘해군사관학교’로 현재의 교명으로 개칭되었다. 이 명칭은 대한민국의 독립 이후 해군 장교 양성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9년 1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해군사관학교’로 현재의 교명으로 최종 개칭되었다. 이 명칭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며, 해군 장교 양성기관으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상징하게 되었다.

1955

[사관학교 설치법 공포 및 4년제 대학 과정 간주]

‘사관학교 설치법’이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하여 법률 374호로 공포되었다. 이 법률에 따라 해군사관학교는 4년제 일반대학 과정으로 간주되어 정규 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게 되었다.

1955년 10월 1일, ‘사관학교 설치법’이 대한민국 국회를 통과하고 법률 제374호로 공포되었다. 이로써 해군사관학교는 정식으로 4년제 일반대학 과정으로 간주되어, 졸업생에게 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는 사관학교의 교육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972

[공학사 학위 수여 시작]

대통령의 군 과학화 지시에 따라 해군사관학교에서 공학사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다. 이는 해군 장교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군사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교육 과정의 큰 변화였다.

1972년, 대통령의 군 과학화 지시에 따라 해군사관학교는 교육 과정에 공학 분야를 강화하고 졸업생에게 공학사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다. 이는 해군 장교들이 현대전에서 요구되는 과학기술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며, 군사 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중요한 교육 개혁이었다.

2012

[3군 사관학교 통합교육 시행]

3군 사관학교(육군, 해군, 공군) 통합교육이 시행되었다. 이는 사관생도들이 서로 다른 군의 이해를 높이고 합동작전 수행 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는 중요한 교육 개편이었다.

2012년 2월, 육군, 해군, 공군 사관학교 간의 통합교육이 시행되었다. 이 통합교육은 1학년 과정에 적용되어 14개의 통합교과목으로 구성되었으며, 사관생도들이 각 군의 특성과 상호 이해를 높여 미래 합동작전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데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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