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 (후한)

후한 관료, 대장군, 황실 인척, 외척, 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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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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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관료, 대장군, 황실 인척, 외척, 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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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은 후한 말의 권력자이자 대장군으로, 원래 백정이었으나 누이동생이 영제의 황후가 되면서 권력을 잡았다. 황건적의 난 진압에 공을 세우며 승승장구했고, 영제 사후 황위 계승을 둘러싼 갈등의 중심에 섰다. 환관 세력을 제거하려 했으나 우유부단한 결정과 오판으로 인해 결국 십상시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동탁의 정권 장악과 군웅할거 시대를 촉발하며 후한 멸망의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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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누이의 황후 즉위와 하진의 중앙 관직 진출]

하진의 누이동생이 영제의 황후가 되었고, 하진은 중앙 관직으로 불려와 시중과 하남윤에 임명되며 권력을 잡기 시작했다.

원래 백정이었던 하진의 누이동생이 후한 영제의 황후로 임명되자, 하진은 중앙으로 소환되어 시중, 장작대장, 하남윤 등 요직을 거치며 권력을 잡기 시작했다. 이는 하진이 후한 말 권력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4

[황건적의 난 진압 총지휘 및 열후 봉작]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자 하진은 대장군에 임명되어 반란 진압 총지휘를 맡았으며, 장각 제자 마원의의 봉기 계획을 간파한 공으로 신후에 봉해졌다.

광화 7년(184년), 거록의 장각이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자 하진은 대장군에 임명되어 반란 진압의 총지휘를 일임받았다. 이때 하진은 장각의 제자 마원의가 낙양에서 봉기하려는 계획을 간파하여 큰 공을 세웠고, 이 공으로 신후에 봉해지며 명성과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왕윤 구출, 환관과의 갈등 시작]

십상시 장양이 황건적과 밀통한 것을 왕윤이 알아차리자, 장양이 왕윤을 모함하여 처형하려 했으나 하진이 상소를 올려 왕윤의 죽음을 막았다.

184년 12월, 왕윤이 십상시 중 하나인 장양이 황건적과 밀통한 것을 알아차렸다. 장양은 도리어 왕윤을 모함하여 처형당하게 하려 했으나, 하진이 상소를 올려 왕윤이 죽음을 면하게 하면서 하진 세력과 환관 세력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88

[서원삼군 창설 및 무상장군 제수 건의]

하진은 영제에게 서원삼군을 만들 것을 진언하고, 영제에게 대장군의 상급 작위인 무상장군을 제수받도록 했다.

황건적의 난이 진압된 후, 중평 5년(188년) 하진은 영제에게 진언하여 서원삼군을 만들고 영제에게 대장군의 상급 작위인 군의 최고 작위 무상장군을 제수받게 했다. 이는 영제의 군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하진 자신의 권력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89

[건석의 하진 암살 시도 실패]

영제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환관 건석은 유협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유조를 내세워 하진을 궁으로 불러 암살하려 했으나, 사마 반은의 밀고로 하진이 입궁하지 않아 실패로 돌아갔다.

중평 6년(189년) 4월 영제가 죽음에 가까워지자, 환관 건석은 후계자로 유협을 지목했다는 영제의 유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하진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궁 안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사마 반은이 하진에게 이를 알려 하진은 병을 핑계로 입궁하지 않아 건석의 암살 음모는 실패했다.

[유변 즉위와 건석·동태후 세력 제거]

유변이 황제로 즉위하며 하진의 권력이 강화되자, 건석은 십상시와 함께 다시 하진 암살을 모의했으나, 환관 곽승의 밀고로 계획이 발각되어 건석은 살해되고 그의 병사들은 하진에게 흡수되었다. 이어서 하진은 동태후와 동중을 축출하여 죽게 만들었다.

189년 5월, 유변이 황제로 즉위하자 그의 외삼촌인 하진과 부하 원소는 황제를 보위하게 되어 권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이에 불안을 느낀 건석은 십상시 조충 등에게 편지를 보내 다시 하진을 죽일 계획을 꾸몄으나, 하진과 같은 고향 사람인 환관 곽승이 건석의 편지를 하진에게 보여주면서 계획이 발각되었다. 하진은 건석을 잡아들여 죽이고 그의 병사들을 차지했다. 또한 궁중에서 동태후와 하태후의 충돌이 발생하자, 하진은 동태후와 그녀의 조카 동중을 축출하여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 일로 하진 일가는 민심을 잃었다.

[원소의 환관 학살 및 하묘 살해]

하진 사망 후 원소는 궁궐에 난입하여 환관 2,000여명을 학살했고, 하진의 이복동생 하묘는 하진을 죽인 것으로 오해받아 오광과 동민에게 살해되었다.

하진이 사망한 후 며칠간 계속된 혼란 속에서, 원소는 장양이 구성한 내각 관료들을 살해한 뒤 궁궐에 난입하여 2,000여명의 내시와 탁류 관료들을 절멸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때 하진의 피다른 동생 하묘는 하진을 죽인 것으로 오해를 받아 오광과 동탁의 동생 동민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동탁의 정권 장악과 군웅할거 시대 개막]

하진 사망 후 동탁이 정권을 장악하여 황제 유변을 폐위하고 유협을 황제로 옹립했으며, 하태후와 유변을 독살했다. 또한 하묘의 무덤을 파헤치고 하태후의 어머니까지 살해했다. 이로 인해 반동탁 연합군이 결성되며 군웅할거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진 사망 후, 그를 암살하려 외세로 불러들였던 동탁에게 원소가 밀려나 정권을 잡지 못하고 실각했다. 정권을 장악한 동탁은 황제 유변을 폐위시키고 유협을 황제로 세웠으며, 하태후와 폐위된 유변을 감금 후 독살했다. 동탁은 하진을 죽게 했다는 이유로 하묘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훼손하고 하태후의 어머니 무양군도 죽이는 잔인함을 보였다. 한편, 원소는 동탁의 포학한 통치에 반발한 여론을 결집해 반동탁 연합군을 창설했으며, 이로써 후한 말의 군웅할거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하진의 며느리 윤씨는 이후 조조에게 재가하여 손자 하안은 조조의 양자가 되었다.

[십상시에 의해 암살당하다]

하진은 하태후를 설득하여 십상시를 모두 주살하려 했으나, 십상시들의 반격으로 궁궐 내 매복에 걸려 상방감 거목에게 암살당했다.

십상시를 주살하려는 원소의 제안을 받아들인 하진은 외세 동원 등 강수를 두었지만, 하태후와 동생 하묘의 반대로 결정을 주저했다. 결국 십상시들이 하태후의 환심을 사 복직되자, 하진은 직접 태후를 설득하려 궁궐로 들어갔다. 그러나 십상시들은 하태후의 명령을 사칭하여 하진을 궁궐 내 매복 장소로 유인했고, 상방감 거목에 의해 칼에 베여 암살당했다. 이는 후한 말 대혼란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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