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해록 (장한철)
문학 작품, 표류 기록, 일기문학, 역사적 기록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6:58
장한철이 과거 시험을 위해 제주를 떠났다가 폭풍을 만나 표류한 경험을 기록한 책입니다.1770년 제주 출발 후 류큐국에 표류했으며, 1771년 귀국까지의 고초를 담고 있습니다.이 책은 해양지리서 및 해양문학적 가치가 높게 평가됩니다.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지정문화재이며, 장한철의 생가는 문학관으로 조성되어 관광지로도 활용됩니다.
1744
본관은 인동이며, 호는 녹담입니다. 제주도로 처음 들어온 장일취의 7세손으로, 어릴 적 부모님을 모두 잃고 둘째 아버지인 장중방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1770
장한철은 향시에서 여러 번 수석 합격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며, 과거 시험장에서 그의 명성은 대단했습니다.
[과거길에 제주 출발, 표류 시작]
장한철 일행 29명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김서일 등과 함께 제주를 떠났습니다. 이 배는 육지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태풍을 만나면서 지향 없이 표류하게 됩니다.
영조 46년에 마을 사람들의 권유와 관가의 원조를 받아 과거 시험을 보러 서울로 떠났던 장한철 일행은 배를 타고 가던 중 육지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태풍을 만나면서 예상치 못한 표류를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고초를 겪으며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1771
[표류 경험을 담은 『표해록』 저술]
장한철은 1770년 제주를 떠나 표류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표해록』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표류 상황과 해로, 계절풍의 변화 등을 상세히 담고 있어 해양지리서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장한철은 1770년 과거길에 나섰다가 폭풍으로 표류하여 1771년에 귀국하기까지 겪었던 생생한 경험을 한문 일기문 형식으로 기록한 책인 『표해록』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당시의 표류 상황뿐만 아니라 그가 경과한 경로를 더듬어 해로와 물의 흐름, 계절풍의 변화 등을 담고 있어 해양지리서 역할뿐만 아니라 해양문학으로서의 가치 또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안남 상고선에 의한 구원과 재차 조난]
표류 5일 만에 유구 열도의 무인도에서 안남(현 베트남) 상고선을 만나 구원받았으나, 본토 상륙 직전 다시 태풍으로 선체가 파손되며 21명의 동행자를 잃고 8명만이 가까스로 살아남았습니다.
장한철 일행은 나흘간 표류 끝에 유구 열도의 한 무인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5일 만에 안남 상고선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구원을 받지만, 본토 상륙을 코앞에 두고 또다시 태풍을 만나 선체가 크게 파손되었습니다. 이 사고로 21명의 동행자를 잃고 장한철을 포함한 8명만이 겨우 살아남는 비극을 겪게 됩니다.
[표류 끝에 고향 제주 귀환]
긴 표류와 고초 끝에 장한철은 고향 제주로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이후 서울로 올라가 과거 시험을 치렀으나 낙방했습니다.
태풍으로 노도근해에서 조난당하고, 유구 열도 호산도에 표착하며 왜구의 습격을 받는 등 수많은 역경을 겪었던 장한철은 안남 상고선에 의해 구조되었음에도 상선에서 봉변을 당하고, 청산도 근해에서 또다시 조난당해 21명의 동료를 잃고 겨우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1774
[제주 도과 합격]
어사 홍상성이 주관한 제주 도과(지방 인재를 위한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서울에서 열리는 최종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장한철은 어사 홍상성이 주관한 제주 도과에 합격하여 '전시직부'의 특권을 얻게 되었고, 이를 통해 서울에서 열리는 최종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그의 학문적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775
[별시 문과 급제 및 관직 역임]
『표해록』을 쓴 지 4년 만에 별시 문과에 병과 27등으로 급제하여 승정원 가주서, 성균관 학유, 이조낭청 등 다양한 내직과 강원도 상운찰방, 흡곡현령, 제주 대정현감 등의 외직을 역임하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장한철은 1775년(영조 51년) 정월에 별시 문과에 급제(성적은 병과 27등)하며 꿈에 그리던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그는 내직으로 승정원 가주서, 성균관 학유, 성균관 박사, 성균관 전적 겸 양현고 주부, 이조낭청, 평시서 주부를 역임했습니다. 또한 외직으로 강원도 상운찰방, 흡곡현령, 제주 대정현감을 지냈고, 상운찰방 근무 중 정조 임금을 알현하여 표해 경험과 명나라 유민과의 만남 일화를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1979
1979년 정병욱 교수의 번역으로 범우사에서 『표해록』 한글판이 출간되면서, 장한철의 표해 기록이 현대 독자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표해록』의 문학적,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2011
[장한철 표해기적비 건립]
제주도 애월읍 애월리 한담공원에 녹담 장 선생 표해기적비가 세워졌습니다. 이는 장한철의 표해 역사를 기리는 중요한 기념물입니다.
2011년 11월 25일, 장한철의 고향인 제주도 애월읍 애월리의 한담공원에 '녹담 장 선생 표해기적비'가 건립되었습니다. 이 기적비는 장한철의 파란만장했던 표해 역사를 기리고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지역 문화유산으로서의 의미를 더했습니다.
2014
2014년에는 장한철의 표해 역사와 관련된 '장한철 산책로'가 조성되었습니다. 이 산책로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로 자리매김하며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2015
2015년에는 MBC 드라마 <맨도롱 또똣>의 주요 촬영지로 선정되면서, 장한철과 관련된 장소들이 제주 여행객들 사이에서 탐방지로 높은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이는 장한철의 이야기를 더욱 많은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1
[녹담 장한철 문학관 개관]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생가에 녹담 장한철 문학관이 개관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연구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2021년에는 장한철의 생가가 위치한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에 '녹담 장한철 문학관'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 문학관은 장한철의 생애와 문학 세계를 조명하고, 『표해록』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며 연구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중요한 문화시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