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타운 (로스앤젤레스)
미국 지역, 한인 공동체, 문화 지구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5:58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은 미국 최대 규모의 한인 밀집 지역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조성되어 한국 식당, 상점, 기업 등 다양한 업소들이 자리 잡으며 한인 이민 사회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지속적인 발전으로 현재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활기찬 상업 및 관광 지구로 거듭나고 있다.
1882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조선과 미국이 불평등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교류를 시작했다. 이는 이후 하와이와 로스앤젤레스로의 한인 이민의 길을 열었다.
1882년 조선과 미국은 다소 불평등한 조약인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하여 교류를 시작하였다. 이 조약은 이후 1880년대 후반 조선인의 하와이로의 이민을 촉진했고, 1900년대 초에는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는 한인 이민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00
[로스앤젤레스 한인 공동체 형성 시작]
1900년대 초 대한제국 이민자들이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하기 시작하며 민족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했다. 주거 및 상업 활동이 리틀 도쿄와 차이나타운 인근으로 확산되었다.
1900년대 초 대한제국 이민자들은 로스앤젤레스로 향하기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민족 교회를 기반으로 공동체를 만들었다. 한국인의 수가 수백 명으로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주거 및 상업 활동은 로스앤젤레스 비즈니스 지구의 남서쪽 구석으로 퍼져 리틀 도쿄와 차이나타운에 가까운 위치에 형성했다.
1930
[한인 사회 성장 및 한국 국립 협회 본부 이전]
1930년대 로스앤젤레스 한인 인구는 약 650명으로 증가했으며, 교회, 식당, 지역 사회 단체를 설립했다. 1936년 한국 최대 이민 정치 단체인 한국 국립 협회가 중앙 본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겨 한인 사회의 중심지 역할을 강화했다.
1930년대에는 약 650명의 한국인이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했다. 그들은 주로 야채와 과일 배급에 중점을 둔 사업체뿐만 아니라 교회, 식당 및 지역 사회 단체를 설립했다. 1936년에 한국 최대의 이민 정치 단체 중 하나인 한국 국립 협회는 정치, 문화, 교육 및 종교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 중앙 본부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옮겼다. 그러나 인종 계약법과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한국인은 아담스 에베뉴가 북쪽으로, 슬러선 에베뉴가 남쪽으로, 웨스턴 에베뉴가 서쪽으로, 버몬트 에베뉴가 동쪽으로 경계가 있는 지역으로 제한되었다.
1948
[인종 제한 주택 정책 금지 및 한인 북상]
1948년 셸리 V 크래머 대법원 사건으로 인종 제한 주택 정책이 금지되자, 한인들은 올림픽대로 북쪽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주택과 사업체를 설립하며 코리아타운의 확장을 이끌었다.
1948년 셸리 V 크래머 대법원 사건으로 인해 인종 제한 주택 정책이 금지된 후, 한국인들은 올림픽대로 북쪽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주택과 사업체를 설립했다.
1960
[코리아타운 본격적 형성 시작]
1960년대 후반, 주변 지역의 경제적 쇠퇴로 빈 상업 및 사무 공간이 늘어나자, 부유한 한국 이민자들이 저렴한 주택과 사업 기회를 찾아 이곳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코리아타운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주변 지역은 가파른 경제 쇠퇴를 시작했다. 한때 화려한 윌리엄 중부 지역은 부유한 한국 이민자들을 끌어들이는 빈 상업 공간과 사무실 공간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들은 코리아 타운에서 저렴한 주택과 많은 오픈 비즈니스를 발견했다. 이민 및 1965년 국적 법률 아시아 마이그레이션에 제거 제한 및 한인 타운에서 이민 사회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었다.
1970
[한인 기업 번성 및 공동체 정체성 강화]
1970년대 후반에는 올림픽대로와 8번가 지역의 대부분 기업이 한국인 소유가 되었으며, 이는 경제 호황과 함께 한국 언론 매체 및 지역 사회 단체 설립으로 이어져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1970년대 후반, 올림픽대로와 8번가 지역의 대부분의 기업은 한국인이 소유하게 되었다. 이 경제 호황은 한국의 언론 매체와 지역 사회 단체의 창설로 이어졌으며 이 단체는 인근의 공동 정체성을 개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80
[코리아타운 인근 지역 공식 지정]
로스앤젤레스 시는 1980년에 코리아타운 인근을 공식적으로 지정했다. 이로써 한인 공동체의 지위가 확고해졌다.
1980년에는 코리아타운 인근이 공식적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의해 지정되었다.
1982
[최초의 코리아타운 사인 설치]
남부 캘리포니아 한인 공동체의 주요 허브로 자리매김한 코리아타운 주민들은 1982년 최초의 코리아타운 사인을 설치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로비 활동을 벌였다.
소수 민족 영토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국 공동체의 주요 허브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으며, 주민들은 1982년에 첫 번째 코리아 타운 사인을 설치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로비를 했다.
1991
[한인 상점 주인 두순자, 라타샤 할린스 총격 사망 사건 발생]
한국인 상점 주인 두순자가 15세 흑인 고객 라타샤 할린스가 오렌지 주스를 훔치는 것으로 오해하여 머리에 총을 쏘아 살해했다. 이 사건은 흑인과 한인 커뮤니티 간의 긴장을 극도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1991년 3월 16일, 한국의 상점 주인인 두순자는 15세의 흑인 고객인 라타샤 할린스를 총살해 사살했다. 두순자는 할린스가 오렌지 주스를 훔치고 떠나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 머리에 총을 쐈다. 일부 역사가들은 두순자의 이후 보석이 긴장의 파산점으로 보고있다.
1992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 발생 및 코리아타운 피해]
1992년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발생하여 코리아타운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한인 소유 기업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경찰의 보호가 미흡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한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폭동은 한인 사회에 새로운 정치 운동을 촉발시켰다.
1992 로스앤젤레스 폭동은 코리아 타운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단체들은 정부 당국으로부터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한 한인들을 위한 배상과 보호를 주장했다. 폭동 당시 흑인과 한국계 미국인은 인종 투쟁에 직면했다. LA에서 5000만 달러 상당의 피해가 있었고 그 중 절반은 한국 소유 기업의 것이었다. 폭동에서 살아남은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은 소수 민족과 민족들이 백인이 아닌 시민들을 백인 시민들에 대한 헌신이나 활력으로 보호하지 않는 체제로부터 보호되기 위해 함께 모여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폭동은 한인 사회 내 새로운 정치 운동을 불러일으켰고, 3만 명 이상이 참여한 코리아타운 평화 집회가 열리는 등 연대 노력을 이끌었다.
2000
[로버트 F. 케네디 커뮤니티 스쿨 건설 및 사회 문제 직면]
코리아타운은 상업 중심 지역이 되었으나 빈곤, 젠트리피케이션 등 사회경제적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논란의 앰버서더 호텔 부지에 로버트 F. 케네디 커뮤니티 스쿨이 건설되어 자원 개발과 역사 보존의 균형 문제가 심화되었다.
코리아타운은 상업 중심의 지역이 되었지만 빈곤과 성화를 비롯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계속 직면하고 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엠베서더 호텔의 이전 부지에 로버트 F. 케네디 커뮤니티 스쿨 건설은 자원 개발과 비즈니스 개발 및 역사적 보존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를 심화시켰다. 학교는 저소득층 및 라틴계와 한국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기회를 증가의 목적으로 건설되었다.
2008
[코리아타운, 로스앤젤레스 특별 그래픽 지구로 지정]
로스앤젤레스 시는 2008년 말 코리아타운을 특별 그래픽 지구로 지정하여, 도시 코드에서 허용되지 않던 디지털 사이니지 및 전자 광고판 설치를 가능하게 했다. 이는 타임스퀘어와 시부야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인 상업 지구로의 발전을 촉진했다.
2008년 말 로스앤젤레스는 코리아 타운을 특별한 그래픽 지구로 지정했다. 이 지정은 도시 코드에 의해 허용되지 않는 디지털 사이 니지 및 전자 광고판을 건물 정면에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지정은 LCD 점보트론이 늘어선 타임스퀘어와 시부야 구에서 영감을 얻은 건물을 허용했다.
2010
[라틴계 다수 지역으로 변화 및 활발한 문화 교류]
현재 코리아타운은 라틴계 주민이 다수를 차지하며, 한국 상점 소유주와 라틴계 직원, 한국식 타코 트럭 등 활발한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지역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보여준다.
코리아타운에는 라틴계가 다수 있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라틴계 고객 또는 한국 상점 소유자와 한국어를 사용하는 식당 및 식료품점에서 라틴계 직원을 종종 찾는다. 코리아타운에서 한국인과 라틴계인의 문화 교류의 한 예로,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한국식 타코 트럭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한국식 재료가 들어간 멕시코 전통 음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