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항 (1409년)
조선 시대 문신, 학자, 재상, 공신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5:27
최항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당대 최고의 학자였습니다. 젊은 시절 집현전 학사로 활동하며 훈민정음 창제와 용비어천가 주해 등 국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세조의 정변을 도와 정난공신에 책록되며 핵심 권력자로 부상했고, 이후 영의정까지 오르며 조선의 최고 관직을 역임했습니다. 특히 조선의 법률과 제도를 집대성한 경국대전 편찬을 주도하여 국가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삼훈공신에 모두 책록될 정도로 정치적 공헌이 컸으며, 탁월한 학문과 문장력을 겸비하여 후대에도 큰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1409
[최항 탄생]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인 최항이 전라북도 정읍시 옹동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조선 초기 문물 제도를 정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인 최항이 1409년 11월 24일(음력 12월 임진일) 전라북도 정읍시 옹동면에서 태어났습니다.
1426
[생원·진사 양시 사마시 합격]
식년시 생원과 진사 양시 사마시에 합격하며 학자로서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는 그의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는 첫걸음이었습니다.
1426년(세종 8년) 식년시 생원·진사 양시 사마시에 합격하였습니다.
1434
[문과 장원 급제 및 집현전 입성]
식년시 알성문과에서 장원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은 중요한 발판이자 조선의 핵심 학문 기관인 집현전에 입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434년(세종 16년) 식년시 알성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집현전 부수찬이 되었습니다.
1443
[훈민정음 창제 및 국문 연구 참여]
집현전 학사로서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훈민정음을 한글로 옮겨 풀었으며, 용비어천가에 주를 달아 풀이하는 등 국문 연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한글 창제는 당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으며, 세종대왕의 특별 지시와 수양대군, 정의공주 등의 후원 아래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443년 집현전 학사로 정인지 등과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훈민정음을 한글로 옮겨 풀었으며, 용비어천가에 주를 달아 풀이하였습니다. 한글 창제는 당시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으며, 세종대왕의 특별 지시와 수양대군, 정의공주 등의 후원 아래 비밀리에 진행되었다고 전해진다. 권채, 안의 등과 함께 정읍 상두산 자락 사찰에서 은거하며 연구에 참여했다.
1444
1444년 집현전 교리로서 오례를 찬진하였다.
1445
[용비어천가 등 주요 서적 편찬]
집현전 응교로 용비어천가 창제에 참여하고, 이어 동국정운, 훈민정음해례, 용비어천가보수 등을 찬진하며 학문적 업적을 쌓았습니다.
1445년 집현전 응교로 용비어천가 창제에 참여하고, 이어 동국정운, 훈민정음해례, 용비어천가보수 등을 찬진하였다.
1448
1448년 집현전 직제학에 올랐다.
1450
[세종실록 편찬 참여 및 외교 활동]
선위사로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고, 우사간대부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는 등 실무와 학문에 모두 능했습니다.
1450년 선위사가 되어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여 접대하였으며, 우사간대부로 동지춘추관사를 겸하여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1
[고려사 및 통감훈의 편찬 참여]
좌사간대부로 수사관을 겸하여 고려사를 개찬하고, 집현전 부제학에 올라 통감훈의를 편찬했으며, 문종실록 편찬에도 참여했습니다.
1451년 좌사간대부로 수사관을 겸하여 고려사를 개찬하고, 집현전 부제학에 올라 통감훈의를 편찬하여 그 공으로 가자되었다. 이어 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3
[정난공신 1등 책록]
동부승지로 재직 중 수양대군(세조)의 김종서 제거를 단종에게 보고한 공으로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고 도승지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1453년(단종 1년) 동부승지로 있을 때, 김종서를 제거한 수양대군을 맞이하여 단종에게 보고한 공으로 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도승지가 되었다.
1454
[공신연곡 창작 및 주요 관직 역임]
이조 참판이 되어 공신연곡 4장을 지어 바쳤습니다. 이후 대사헌, 우부빈객, 호조참판 등을 역임하며 주요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1454년 이조 참판이 되어 공신연곡 4장을 지어 바쳤다. 연이어 대사헌, 우부빈객, 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455
1455년(세조 1년) 좌익공신 2등에 책록되고 공조 판서에 승진하였다.
1458
1458년부터 공조판서, 형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459
[육전, 동국통감 등 주요 서적 편찬 주도]
육전, 관음현상기, 십이준도, 명황계감 가사 한글 번역, 동국통감 찬수 등 수많은 서적 편찬 및 주해 작업에 참여하며 뛰어난 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1459년(세조 5년) 육전 편찬을 비롯하여 관음현상기, 십이준도 등을 찬하였고, 중추원사로 명황계감의 가사를 한글로 번역하는 한편, 동국통감을 찬수하였으며, 신숙주 등과 같이 어제유장설 3편을 주해하였다. 이후 중추원사, 세자빈객, 예문관 대제학으로 대사성을 겸하였다.
1460
1460년 이조판서와 우참찬을 역임하였다.
1461
[잠서 국문 번역 및 경국대전 편찬 착수]
왕명으로 양성지의 잠서를 국문으로 번역하여 간행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여 조선 초기의 법률과 제도를 집대성하는 역사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조선의 법치주의 기틀을 다지는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1461년(세조 7년) 양성지의 잠서를 국문으로 번역하여 간행하고, 왕명으로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여 조선 초기의 법률과 제도를 집대성하는 사업을 시작하였다.
1463
[동국통감 찬수 및 주요 관직 역임]
우참찬과 좌참찬을 역임하고 동국통감 찬수를 시작하는 한편, 어제유장설을 주해하며 학문과 정치를 겸비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1463년 우참찬, 좌참찬을 역임하고 동국통감 찬수를 시작하는 한편 어제유장설을 주해하였다.
1464
1464년(세조 10년) 사서오경에 구결을 달았다.
1466
[좌찬성 승진 및 어제구현재시 1등]
판병조사를 거쳐 좌찬성에 오르고 어제구현재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가자를 받았으며, 병장설주를 산정했습니다.
1466년 판병조사를 거쳐 좌찬성으로 어제구현재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가자를 받았으며, 병장설주를 산정하였다.
1467
[영의정 등 최고위 관직 역임 및 영성군 봉작]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오르고 영성군에 봉해지며 조선 최고위 관직에 올랐습니다. 또한 소학, 주역구결, 예기구결 등을 정하고 세조의 행장을 초집했습니다.
1467년에 우의정·좌의정을 지냈으며 영의정에 이르러 영성군에 봉해졌다. 소학, 주역구결, 예기구결 등을 정하고 세조의 행장을 초집하였다.
1469
[경국대전 완성 주도]
경국대전 상정소 도제조로서 경국대전을 찬수하였으며, 이어 무정보감을 찬수하여 조선의 국가 법제와 군사 제도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469년(예종 1년) 경국대전 상정소 도제조로서 경국대전을 찬수하였으며, 이어 무정보감을 찬수하였다.
1470
1470년 영성 부원군에 진봉되었다.
1471
[좌리공신 책록 및 실록 편찬 주도]
좌리공신 호를 받아 좌의정이 되었고, 세조실록과 예종실록을 찬수하는 등 조선 초기의 문물 제도 정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문장력은 뛰어나 명나라에 보내는 표전문 대부분을 직접 작성할 정도였습니다.
1471년(성종 2년) 좌리공신의 호를 받아 좌의정이 되기도 하였고 세조실록, 예종실록을 찬수하였다. 조선초기의 대학자로서 문물제도 정비에 큰 역할을 하였고, 역사·언어 분야에 정통하였으며, 문장에 능하여, 당시 명나라에 사신 편에 보내는 표전문은 거의 그가 담당하여 썼다.
1471년 5월 31일부터 1472년 5월 23일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냈다. (전임자: 한백륜, 후임자: 신숙주)
1474
[최항 사망]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재상, 공신이었던 최항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조선 초기 국가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로 기억됩니다.
1474년 6월 3일(음력 4월 29일 계미일) 사망하였다.
2004
2004년 10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