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야구 선수, 야구 코치, 해설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3:25
재일 한국인 야구 선수 주동식은 일본 프로야구와 KBO 리그 해태 타이거즈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한국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은퇴 후 해설가와 코치로 활동했으나, 말년에는 풍속영업법 위반으로 체포되는 등 논란에 휩싸였다.
1948
[주동식 출생]
일본 도쿄도 스기나미구에서 재일 한국인으로 태어나 훗날 일본과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누비는 투수로 성장하게 된다.
재일 한국인 야구 선수 주동식은 1948년 8월 23일 일본 도쿄도 스기나미구에서 태어났다.
1964
[고시엔 예선 노히트 노런 달성]
타쿠쇼쿠대학제일고등학교 재학 시절, 여름 고시엔 도쿄도 예선 3회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타쿠쇼쿠대학제일고등학교 시대인 1964년에 여름의 고시엔 도쿄 도 예선 3회전에서 노히트 노런을 달성하였다.
1971
[일본 프로 야구 입단]
주오대학과 혼다경식야구부를 거쳐 일본 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에 4차 지명으로 입단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다.
주오대학에 진학하고 도토 대학 리그에서 9승 3패를 기록한 후 혼다 기연(현 혼다 경식 야구부)을 거쳐 1971년 지명 4위로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하였다.
1972
[이스턴 리그 최우수 방어율 획득]
데뷔 초 패전 처리 담당으로 활약하다가, 2군 리그인 이스턴 리그에서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을 획득하며 기량을 입증했다.
데뷔 당초부터 패전 처리 담당이었으나, 이스턴 리그(2군)에는 1972년에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일본 프로 야구 첫 등판]
롯데 오리온스 전에서 여섯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일본 프로 야구에 데뷔했다.
1972년 4월 28일, 지바 롯데 마린스(롯데 오리온스) 4차전(고라쿠엔 구장)에서 9회말에 여섯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완료,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9회초 아리토 미치요로부터 첫 탈삼진을 기록했다.
1975
[KBO 롯데 자이언트 입단 무산]
KBO 리그 롯데 자이언트 창단 멤버로 입단했으나 정식 경기 출전이 무산되면서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게 되었다.
1975년 팀 창단 멤버로 롯데 자이언트에 입단했으나 정식 경기 출전이 무산되고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일본 프로 야구 첫 승리]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전에서 구원 등판하여 5와 1/3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일본 프로 야구에서 첫 승리를 따냈다.
1975년 8월 27일, 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후기 11차전(헤이와다이 야구장)에서 4회말 2아웃에 두 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완료, 5회 1/3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 프로 야구 첫 선발 및 완투 승리]
롯데 오리온스 전에서 9이닝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생애 첫 선발승과 완투승을 동시에 기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75년 9월 6일, 롯데 오리온스 후기 7차전(미야기 구장)에서 9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첫 선발·첫 선발 승리·첫 완투 승리를 달성했다.
1979
[일본 프로야구 선발 전환 및 활약]
투구 폼을 개조하여 선발투수로 전환, 39경기 등판, 규정 투구회를 달성하며 9승 3패 방어율 3.47로 리그 7위에 오르는 뛰어난 시즌을 보냈다.
1979년에는 폼을 개조하고, 선발투수로서 39시합에 등판하며 규정 투구회로도 달성하였다. 방어율 3.47, 9승 3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리그 7위로 들어섰다.
1980
[일본 프로 야구 첫 완봉 승리]
세이부 라이온스 전에서 완벽한 피칭으로 완봉승을 거두며 개인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1980년 5월 13일, 세이부 라이온스 전기 8차전(고라쿠엔 구장)에서 개인 첫 완봉 승리를 달성했다.
1981
1981년의 일본 시리즈 제4전으로 4번수에 등판하였다.
1982
[한신 타이거스 이적]
사카키바라 요시유키와의 1:1 트레이드를 통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여 중견 투수로 29경기에 등판했으나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1982년 1월에는 사카키바라 요시유키와의 1:1 트레이드에 따라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였고, 중견 투수로서 29시합에 등판하였으나, 1년 만에 팀을 떠났다.
[일본 프로 야구 마지막 경기]
한신 타이거스 소속으로 일본 프로 야구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며 일본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1982년 10월 11일, 한신 타이거스 소속으로 일본 프로 야구 경기에 마지막으로 출전했다.
1983
[KBO 해태 타이거스 이적 및 한국 시리즈 우승 기여]
KBO 리그 해태 타이거스로 이적하여 30경기에 등판, 7승 7패 3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한국 시리즈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1983년에는 KBO 리그의 해태 타이거스로 이적하고, 30시합으로 등판하며 7승 7패 3세이브를 기록하고 한국 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1983년 4월 3일, KBO 리그 해태 타이거스 소속으로 첫 출장 경기를 가졌다.
1984
[KBO 리그 마지막 경기 및 선수 은퇴]
KBO 리그 해태 타이거스 소속으로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며 프로 선수로서의 경력을 마무리했다.
1984년 9월 23일, KBO 리그 해태 타이거스 소속으로 마지막 경기에 출전했으며, 이후 선수 은퇴를 하였다.
1989
[야구 해설가 활동 시작]
선수 은퇴 후 도쿄 케이블 네트워크에서 일본 프로야구 닛폰햄 담당 해설자로 활동하며 야구 지식을 팬들에게 전달했다.
선수 은퇴 이후인 1989년부터 2001년까지 도쿄 케이블 네트워크 제작의 닛폰햄 전 중계에서 정규 해설자를 맡아주었다.
2002
[KIA 타이거스 투수 코치 활동]
KBO 리그 KIA 타이거스로 돌아와 투수 코치를 맡아 후배 양성에 힘쓰며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했다.
2002년부터 2003년까지 KIA 타이거스로 귀환하며 투수 코치를 맡아주었다.
2012
[풍속영업법 위반 혐의로 체포 보도]
도쿄도 도시마구에서 영업 금지 구역 내 개인실 마사지점을 운영하다가 풍속영업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본인은 혐의를 부인하며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2012년 11월 9일, 영업 금지 구역이 되고 있다는 도쿄도 도시마구 기타오쓰카 2초메의 잡거 빌딩에서 개인실 마사지 점을 운영하다가, 풍속영업법 위반에 따라 같은 가게의 점장과 함께 체포당했던 일이 밝혀졌다. 주동식은 '이전에는 내가 점주인이었으나, 지금에는 내가 다른 사람한테 물려줬다'라는 용의를 부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