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창호 (군인)
군인, 한국 전쟁 참전 용사, 국군 포로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2:47
조창호는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 전쟁에 참전, 중공군 포로가 되었다. 43년간 북한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1994년 극적으로 탈북하여 대한민국으로 귀환했다. 그의 귀환은 북한 국군 포로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으며, 투철한 군인 정신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그는 북한 인권 개선 활동에 힘썼고, 2006년 사망하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30
일제 강점기 평안남도 평양의 부유한 가정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32
1932년 일가족과 함께 경기도 인천 제물포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다.
1934
1934년 경기도 시흥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1936
1936년 가족이 경성부(지금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로 본격 이주하였다.
1950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연희대학교 교육학과를 중퇴하였다.
1950년 10월 대한민국 국군에 자원 입대하였다.
1951
[포병장교 임관 및 참전]
포병장교로 임관하여 육군본부 포병여단 관측장교를 거쳐 101포병대대 관측담당 및 소대장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
1951년 4월 포병장교로 임관하여 육군본부 포병여단 관측장교를 거쳐 대한민국 육군본부 직할 제5포병여단 101포병대대 관측담당 및 소대장으로 참전하였다.
1951년 5월 강원도 인제 한석산 전투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에 포로로 붙잡힌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끌려갔다.
1952
[북한 강제 노역소 복역 시작]
동료 포로들과 탈출을 계획하다 발각되어 '월남기도'와 '반동분자' 혐의로 13년간 황해북도, 평안남도, 함경남도, 함경북도, 자강도 등지의 강제 노역소에서 복역하게 되었다.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었으나, 동료 포로들과 탈출을 계획하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치부에 발각되어 '월남기도'와 '반동분자'의 혐의로 13년간 황해북도 서흥군, 평안남도 덕천군, 함경남도 함흥시,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읍, 자강도 강계시 광산 등지의 강제 노역소에서 복역하였다.
1965
[광부 노역 및 규폐증 발병]
13년 동안의 강제 노역소 생활을 마친 후 자강도 자성군에 광부로 배치되어 노역에 동원되었고, 이로 인해 지병인 규폐증을 얻게 되었다.
13년 동안의 강제 노역소 생활을 마친 후에는 자강도 자성군에 광부로 배치되어서 노역에 동원되었으며, 오랜 광산에서의 노역을 통해 지병인 규폐증을 얻게 된다.
1994
[극적인 탈북 및 대한민국 귀환]
북규폐 증세가 심해지자 중강군의 산간촌으로 보내졌고, 이때 알게 된 중국 상인을 통해 귀환을 결심했다. 결국 압록강 기슭에서 목선을 타고 북한을 탈출, 해상을 표류하다 새벽에 대한민국 수산청 어업지도선에 의해 구출되었다.
북규폐 증세가 심해져서 자강도 중강군 중강진면의 산간촌으로 보내지게 되는데 이 때에 알게 된 중화인민공화국 상인을 통해서 귀환을 결심하게 되어, 결국 압록강 기슭에서 목선을 타고 중화인민공화국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을 탈출, 해상을 표류하다 1994년 10월 23일 새벽 대한민국 수산청 어업지도선에 의해 구출되었고, 병원에 입원하여 가족 상봉을 하였다.
1994년 10월 25일에는 입원한 병실을 찾아온 이병태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부 장관에게 귀환을 보고하였다.
1994년 10월 27일에는 김동진 육군참모총장에게 귀환을 보고하였다.
[위패 삭제, 중위 진급 및 훈장 수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 지하에 새겨진 자신의 전사자 위패를 손수 지웠다. 같은 날 육군 중위로 진급하고, 군인 정신의 귀감이 된 점을 높이 평가받아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았다.
1994년 11월 25일에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현충탑 지하 영현 봉안실의 대리석 위패에 새겨져 있는 자신의 이름을 손수 지웠다. 왜냐하면, 전쟁 중에 실종 처리되었다가 1977년에 전사자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같은 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육군 중위로 진급하고, 군인 정신에 귀감이 된 점을 높이 평가받아 보국훈장 통일장을 받았다.
[44년 3개월 최장기 군생활 마감]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역식을 가짐으로써 44년 3개월이라는 최장기록의 군 생활을 마감했다. 이는 전사자 처리로 인해 현역 군인 신분을 유지했던 결과이다.
다음날 11월 26일에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역식을 가짐으로써 44년 3개월이라는 최장기록의 군생활을 마감하였다. 전사자로 처리되었을 뿐 전역한 사실이 없기 때문에 귀환 순간에도 현역 군인의 신분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대위 이하의 정년은 43세로 정한다는 대한민국 군인사법 규정에 따라 중위 진급 후 바로 전역하였다.
1995
1995년 2월 연세대학교 명예 학사 학위장을 받았다.
2006
2006년 11월 19일, 북한에서의 오랜 노역으로 얻은 지병이 악화되어 서울대학교 부속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2006년 11월 21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