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민 (야구인)
야구 선수, 야구 코치, 방송인, 기업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31:06
야구선수 조성민은 고교 시절 스타로 떠올라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부상으로 일본에서 은퇴하고 국내 복귀 후에도 부진했다. 배우 최진실과의 결혼과 이혼, 재혼 등 복잡한 가정사와 사업 실패를 겪었으며, 2013년 1월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1973
[출생]
서울특별시 성동구에서 은행가 조주형과 유영숙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또한 정구 국가대표로 활동한 스포츠맨이었다. 서울 용마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야구부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둔촌초등학교로 전학 후에도 야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마동(현 광진구 중곡동)에서 은행가 조주형과 유영숙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부원으로 활동하며 스포츠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1991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 우승 및 고교 스타 등극]
신일고등학교 선발 투수로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광주일고를 꺾고 우승을 이끌며 큰 주목을 받았다. 봉황기 우수투수상과 홈런상을 동시 수상하며 고교 야구 스타로 떠올랐고, 같은 해 야구 청소년 대표 선수로 발탁되었다.
신일고등학교 재학 중 황금사자기 고교야구대회에서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이 대회에서 우수투수상과 홈런상을 동시에 거머쥐었고, 야구 청소년 대표 선수로 발탁되며 장래가 촉망되는 스타로 급부상했다. 1992년 4월부터 1995년 8월까지 프로야구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1993
[고려대학교 진학 및 국가대표 활약]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한 후에도 대학 야구부원으로 활약하며 실력을 이어나갔다. 같은 해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이듬해 1994년 아시안 게임 야구에서도 은메달을 따며 국가대표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하여 학업과 야구를 병행했다. 대학 재학 중에도 국가대표 야구선수로 꾸준히 활약했으며, 특히 199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와 1994년 아시안 게임에서 각각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다.
1995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고려대학교 재학 중 일본 프로야구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고, 이를 수락하여 입단을 결정했다. 이듬해 1996년, 계약금 1억 5천만엔과 연봉 1,200만엔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정식 입단하며 해외 프로 무대에 진출했다.
고려대학교 재학 중이던 1995년 5월,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여 해외 진출을 결정했다. 1996년에는 계약금 1억 5천만엔과 연봉 1,200만엔이라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대우를 받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정식으로 입단, 7년 계약을 맺고 일본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한국인 아마추어 출신으로는 이례적인 일본 프로야구 진출이었다.
1998
[NPB 올스타 선정 및 팔꿈치 부상]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발 투수로서 전반기에만 7승을 거두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올스타전에 선발되었다. 그러나 올스타전 도중 오른쪽 팔꿈치에 부상을 입었고, 이후 두 차례의 수술과 장기간의 재활을 거쳤으나 예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며 선수 경력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1997년 마무리 투수로 11세이브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인 후, 1998년에는 선발 투수로 전반기에만 7승을 올리며 일본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선발될 정도로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당했고, 이후 2번의 수술과 재활에도 불구하고 끝내 재기에 실패하며 선수 생활에 큰 위기를 맞았다. 1999년 2월에도 다시 팔꿈치 부상을 겪었다.
2000
[배우 최진실과 결혼]
배우 최진실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며 '세기의 커플'로 세간의 큰 이목을 집중시켰다. 두 사람의 결혼은 스포츠와 연예계 스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고,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결혼에 앞서 11월 15일 혼인신고를 마쳤다.
배우 최진실과 2000년 11월 15일 혼인신고를 하고, 12월 5일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이 결혼식은 국내 유명 연예인과 일본 프로야구 스타들이 대거 참석했으며, 이경규가 사회를, 윤영섭 고려대 은사가 주례를 맡았다. 스포츠와 연예계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으며, 당시 소속사를 비롯해 한국통신, 인터넷 MBC 등을 통해 결혼식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결혼 전 양가 반대와 본인의 자살 시도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1
[첫째 아들 최환희 출산]
배우 최진실과의 사이에서 첫째 아들 최환희(환희)를 출산했다. 이후 2003년 3월 1일에는 둘째 딸 최준희(준희)를 출산하며 두 자녀의 아버지가 되었다.
배우 최진실과의 결혼 8개월 만인 2001년 8월 3일, 첫째 아들 최환희(환희)가 태어났다. 이후 2002년 12월 이혼 선언 기자회견으로 파경 위기를 맞은 가운데, 2003년 3월 1일 최진실이 홀로 둘째 딸 최준희(준희)를 출산했다.
2002
[요미우리 자이언츠 자진 퇴단 및 은퇴]
반복되는 팔꿈치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자진 퇴단하며 7년간의 일본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국내 야구계 진출을 모색했으나 교섭 실패로 장기간의 공백기를 겪게 되었다.
팔꿈치 부상 재발과 계속되는 부진으로 인해 2002년 10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자진 퇴단하며 일본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일본 프로야구 통산 11승 10패 11세이브, 방어율 2.84를 기록했다. 이후 대한민국 야구계로 진출하려 했으나 구단과의 교섭에 실패하면서 기나긴 공백기를 갖게 되었다.
[최진실 폭행 논란]
임신 7개월 무렵이었던 배우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본인은 쌍방 폭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이 사건은 이후 최진실과의 이혼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2002년 11월, 임신 7개월이었던 부인 최진실을 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본인은 이 사건을 쌍방 폭행으로 주장했으나, 이 사건은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같은 해 12월, 최진실이 가출하고 이혼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최진실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자식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발언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2003
[채무 불이행 및 소송]
사업 투자금 명목으로 최진실의 어머니와 동생에게 빌린 돈에 대해 증여라고 주장하며 채무 변제를 거부했다. 이에 최진실 가족은 채무 변제 요구 내용증명을 보냈고, 같은 해 4월에는 2억 원의 대여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2002년 8월과 10월, 사업 투자자금 명목으로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과 동생 최진영으로부터 돈을 빌렸으나, 2002년 12월 이혼 기자회견 이후 이를 증여라고 주장하며 채무 변제를 거부했다. 이에 정옥숙과 최진영은 2003년 2월 채무 변제 요구 내용증명을 보냈고, 4월에는 2억 원의 대여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2004년 8월, 법원이 최진실 가족의 손을 들어주며 조성민에게 총 1억 875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04
[최진실과 협의 이혼 및 친권 포기]
법정 공방 끝에 배우 최진실과 협의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최진실에게 제기되었던 각종 소송들이 취하되고 빚이 변제되는 조건으로 자녀들의 친권을 포기하는 각서를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으며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완전히 정리했다.
2004년 8월, 최진실의 집을 찾아가 최진실을 폭행하여 현행범으로 체포된 후 법원으로부터 주거지 접근 금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9월 1일 배우 최진실과 협의 이혼에 합의했다. 이혼 조건으로 최진실이 조성민에게 제기했던 소송들을 취하하고 빚을 변제해주는 대신, 조성민은 두 자녀의 친권을 포기하고 이를 각서로 작성하여 공증까지 받았다. 이혼 이후 자녀들과의 면접교섭권은 인정받았으나 실제로 이행하지 않았다.
2005
[한화 이글스 입단으로 국내 프로야구 복귀]
김인식 감독의 주선으로 KBO 리그 한화 이글스에 계약금 없이 연봉 5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하며 국내 프로야구 무대에 복귀했다. 8월 15일 데뷔전에서 구원 투수로 등판하여 팀의 역전승에 힘입어 행운의 첫 승을 신고했다.
공백 기간을 보내던 중 2005년 5월, 김인식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화 이글스에 계약금 없이 연봉 5천만 원의 조건으로 입단하며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했다. 8월 15일 현대 유니콘스전에서 한화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 1과 1/3이닝을 소화한 뒤 팀이 역전하며 데뷔전에서 감격적인 첫 승을 기록했다. 한화에서 주로 불펜 투수로 활동하며 컨트롤 위주의 투구를 선보였다.
[심미영과 재혼]
심미영 씨와 혼인신고를 하고 재혼했다. 심미영 씨는 과거 조성민이 최진실과의 불화 과정에서 '친구이자 동업자'라고 언급했던 인물이다. 2010년경 별거설이 돌았으며, 2013년 사망 당시까지 법적으로 혼인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5년 7월, 과거 '불륜' 상대로 지목되기도 했던 심미영 씨와 혼인신고를 마치고 재혼했다. 그러나 2010년 10월, 아버지 조주형 씨에 의해 두 사람이 10개월째 별거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2011년 12월에는 두 사람이 특정 사업의 공동 대표로 등재되어 동업 관계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2013년 본인 사망 당시까지 심미영 씨와 법적으로 혼인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2007
[프로 야구 선수 은퇴]
한화 이글스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으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완전히 마감했다. 이후 여러 차례 현역 복귀를 시도했으나 모두 좌절되었고, 야구 해설가 및 코치로 전향하여 활동했다.
2007년 시즌이 끝난 후, 10월 22일 한화 이글스로부터 방출 통보를 받으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감했다. 이후 현역 복귀를 위해 노력했으나 번번이 외면당했다. 2008년부터 MBC ESPN과 XTM 등에서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으며, 2011년부터 2012년까지는 두산 베어스 2군 재활 및 투수 코치를 역임했다.
2008
[사업 실패 및 유산 관리 논란]
MBC ESPN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는 한편, 먹음직닷컴, SMC21 등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같은 해 10월, 배우 최진실의 사망으로 자녀들이 물려받은 유산 관리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려 하여 사회적 반발을 샀다.
선수 은퇴 후 2008년부터 MBC ESPN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다. 동시에 먹음직닷컴, SMC21 등의 사업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해 10월, 배우 최진실의 안타까운 사망 후 두 자녀가 물려받은 유산에 대한 친권과 관리 권리를 주장하려 하여 사회적으로 큰 비난과 논란에 휩싸였다. 과거 친권을 포기했음에도 권리를 주장하는 모습이 대중의 공분을 샀다.
2013
[안타까운 사망]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지인의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 전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으며,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삶의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년 41세.
2013년 1월 6일 새벽,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있는 지인(여자친구)의 오피스텔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인이 외출한 사이에 발생한 일이었으며, 경찰 조사에 따르면 사망 전 여자친구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았고 카카오톡으로 힘든 심경을 담은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향년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월 12일에는 유서가 발견되어 유산 관련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