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익 (1933년)
천주교 성직자, 주교, 신학자, 시민사회단체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28:58
한국 천주교를 이끈 존경받는 성직자이자 학자. 제4대 부통령 장면의 아들로 태어나, 학자의 길을 걸으며 신학 교육에 매진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깊은 인연을 맺었고, 춘천교구장으로서 사목 활동에도 헌신했다. 그의 삶은 신앙과 학문,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여정이었다.
1933
1933년 11월 20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기도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 제4대 부통령을 지낸 운석 장면의 넷째 아들이며, 본관은 인동이다.
1952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여 학문의 길을 시작했다.
1956
미국 메리놀신학교로 편입한 후 인문학 학사와 철학 학사를 취득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1959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여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1963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여 학자로서의 면모를 확고히 했다.
사제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되었으며, 이후 사목보다는 학자로서 많은 공부를 하며 성직자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67
서울대교구장 비서로서 교구장의 업무를 보좌하며 성직자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1968
1968년 김수환 대주교가 서울교구장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비서신부로 활동했다. 김수환 대주교가 추기경에 선출되자 당시 비서였던 장익 신부에게 소식을 처음 전했다고 한다.
1970
서울대교구 정릉성당의 주임신부로 활동하며 신자들과 가까이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1972
서울대교구 신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신학 연구에 매진했다.
1976
서울대교구의 비서실장과 공보실장을 지내며 교구의 주요 행정 업무와 대외 소통을 담당했다.
1977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성직자와 학자들을 양성하는 데 기여했다.
1978
[교황청 자문위원 활동]
교황청 종교평화평의회 및 비그리스도교평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깊은 친분을 맺었다.
1978년부터 1985년까지 교황청 종교평화평의회 자문위원과 비그리스도교평의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친분이 두터워졌다.
1983
[김동한 신부 선종 소식 전달]
김동한 신부가 선종하자 로마에 체류 중인 김수환 추기경을 직접 찾아가 임종 소식을 전했다.
김동한 신부가 선종하자, 로마 바티칸에 체류 중인 김수환 추기경을 직접 찾아가 형님 신부의 임종 소식을 전하며 깊은 인간적인 관계를 보여주었다.
198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한국어 교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에게 유창한 한국어를 가르쳐 미사 집전을 돕는 역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84년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식과 103위 성인 시성식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유창한 한국어를 가르쳐 미사를 집전하게 한 인물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그의 노고를 잊을 수 없다고 격찬하며 이 역사적인 사실을 강조했다.
1986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실 실장을 맡아 교구의 사목적 발전을 위한 연구 활동을 지휘했다.
1988
서울대교구 세종로 성당의 주임으로 활동하며 신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1990
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신학 교육과 연구에 기여했다.
1994
1993년 Thomas Stewart 주교가 사임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제6대 천주교 춘천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같은 해 주교 서품을 받았다.
천주교 춘천교구장 임명과 함께 주교로 서품되어 교구장으로서의 공식적인 직무를 시작했다.
1995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국 천주교의 문화적 발전에 기여했다.
1995년 12월부터 2000년까지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종교 간의 대화와 협력을 증진하는 데 기여했다.
2008
2008년 10월 16일부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직을 마무리하며, 주교회의의 주요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010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 청원이 받아들여져 2010년 1월 28일 춘천교구장직에서 은퇴했으며, 오랜 기간 봉사했던 교구장으로서의 역할을 마무리했다.
[김운회 주교 착좌식과 교구장직 공식 은퇴]
김운회 주교가 제7대 춘천교구장으로 착좌식을 가지면서 교구장직에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2010년 3월 25일 김운회 주교가 제7대 춘천교구장으로 착좌식을 가지면서, 춘천교구장으로서의 임기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하고 은퇴 생활을 시작했다.
2020
2020년 8월 5일, 간암으로 실레마을 공소 사제관에서 선종했다. 그의 시신은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성당 성직자 묘원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