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온 (후한)

후한 관료, 사공, 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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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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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관료, 사공, 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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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온은 후한 말기의 관료로, 상서랑으로 시작하여 사공과 태위에 이르는 고위직에 올랐습니다. 황건적의 난 진압과 서방 이민족 반란 토벌에 참여하며 뛰어난 능력을 보였으나, 동탁의 전횡에 맞서다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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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상서랑 임명과 늙은 농부의 조롱]

중상시 조등의 천거로 관직에 나아가 연희 연간에 상서랑이 되었습니다. 환제의 장릉 행차를 수행하던 중, 밭을 일구던 한 늙은 농부에게 당시 조정의 폐해와 자신의 처지를 비판받고 깊이 부끄러워했습니다.

중상시 조등의 천거로 관직에 나아가 연희 연간(158~167년)에 상서랑이 되어 환제의 장릉 행차를 수행했습니다. 운몽을 지나 면수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이 모두 구경을 왔으나 오직 한 늙은 농부만이 밭을 일구며 구경하지 않았습니다. 장온은 이를 이상히 여겨 물었고, 늙은이는 천자의 행차가 백성을 혹사시키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라며 장온의 굴욕적인 처신을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장온은 심히 부끄러워하며 늙은이에게 이름을 물었으나 그는 답하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170

[영천 태수 시절 순상과의 논쟁]

영천 태수로 임명된 후 수도에서 교제하던 순상과 가표와 함께 논쟁을 벌였습니다. 수도에서는 이 논쟁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화제가 되었고, 장온은 자신보다 겸손한 이섭의 태도를 보며 깨달음을 얻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장온은 수도에서 조요, 가표, 순상, 이섭 등과 교제했습니다. 영천 태수에 임명된 후 순상을 만나 가표와 동석하여 논쟁을 벌였습니다. 수도에서는 이를 화제로 우열을 가렸습니다. 장온은 조요에게 이섭의 의견을 물었고, 이섭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답을 듣자 '이섭처럼 되어야 할 텐데! 풋내기들을 억지로 흥분시키질 않는구나.'라고 탄식하며 자신의 오만함을 깨달았습니다. 순상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깨달은 바가 있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180

[상서령 임명]

상서령으로 승진했으며, 양선을 천거하여 상서복야로 삼는 등 인재를 발탁했습니다.

훗날 장온은 상서령으로 승진했습니다. 그는 양선을 천거하여 상서복야로 삼았습니다.

184

[사공 임명]

대사농에 이어 사공에 임명되며 삼공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당시 삼공 자리는 돈으로 거래되는 풍조가 있었으나, 장온은 공적과 명성으로 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광화 7년(184년) 여름 4월, 대사농 장온은 장제의 뒤를 이어 사공에 임명되었습니다. 장온은 단경, 번릉, 최열 등과 함께 공적과 명성이 있었으나, 당시 삼공의 자리는 돈을 써 관직을 사들이는 풍조가 만연했습니다.

[황건적 토벌 주준 옹호]

남양 황건적 장만성의 잔당이 농성할 때, 포위를 풀지 못하는 주준 장군의 소환 상주를 반대하고 그에게 계속 책임을 맡길 것을 주장했습니다. 영제는 그의 상소를 받아들여 주준이 반란을 진압할 수 있게 했습니다.

남양의 황건적 장만성이 거병했으나 공격을 받아 죽고, 조홍이 잔당을 이끌고 완성에서 농성했습니다. 진적중랑장 주준이 완성을 포위했으나 6월에서 8월이 되도록 함락시키지 못하여 담당 관리가 주준을 중앙으로 복귀시키도록 상주했습니다. 장온은 '개전을 눈앞에 두고 장군을 바꾸는 것은 병가에서 꺼리는 바입니다. 그 성공과 실패에 따라 책임을 지게 하십시오.'라고 상소했습니다. 영제는 주준의 소환을 취소했고, 주준은 조홍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서방 반란 발발]

북지군 등 서방 지역의 선령강과 의종호가 반란을 일으켜 금성 태수 등을 죽이고 삼보를 침공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해 겨울, 북지군, 부한현, 하관현, 황중의 선령강과 의종호가 북궁백옥과 이문후를 장군으로 추대하고 난을 일으켰습니다. 변장과 한수는 이들을 위협하여 군정을 맡기고 호강교위 영징과 금성 태수 진의를 죽였습니다.

185

[서방 반란 진압 총지휘]

중평 2년(185년), 반란군이 삼보를 침공하자 장온은 좌거기장군·가절로 임명되어 북궁백옥 토벌 총지휘관으로 나섰습니다. 동탁, 손견, 도겸 등 당대 명장들이 그의 휘하에 있었습니다.

이듬해인 중평 2년(185년), 반란군은 기병 수만 명을 이끌고 삼보를 침공했습니다. 좌거기장군 황보숭 등이 토벌에 나섰으나 해임되었고, 음력 8월 장온이 좌거기장군 · 가절, 집금오 원방이 부장이 되어 북궁백옥 토벌에 나섰습니다. 동탁은 파로장군, 주신은 탕구장군으로 장온에 배속되었습니다. 장온은 조기, 도겸, 손견을 휘하에 두었으며, 공손찬도 종군했습니다.

[동탁과의 마찰, 손견의 간언]

원정 중 동탁이 부름에 늦고 불손하게 굴자, 손견은 동탁을 군법에 따라 참형에 처할 것을 간언했습니다. 그러나 장온은 동탁의 위명과 서쪽 지역 평정을 이유로 그의 처단을 망설였고, 결국 기회를 놓쳤습니다.

장온은 칙명에 따라 동탁을 불러냈으나, 그는 한참이 흘러 간신히 왔습니다. 장온이 동탁을 힐책하였으나 동탁은 불손하게 대꾸했습니다. 자리에 있었던 손견이 장온에게 동탁이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거만하게 행동한다며, 출두하지 않은 죄를 물어 군법에 따라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귓속말했습니다. 장온은 동탁이 농·촉 일대에 위엄과 명성을 떨치고 있으니 오늘 그를 죽이면 서쪽을 평정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결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손견은 동탁의 죄를 세 가지로 열거하며 처단을 주장했으나, 장온은 동탁의 의심을 살 수 있다며 손견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북궁백옥 격파와 주신 패퇴]

미양에서 북궁백옥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동탁의 조언을 듣지 않고 주신에게 변장과 한수 포위를 맡겼다가 주신이 패퇴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1월, 장온은 미양에서 북궁백옥을 물리쳤습니다. 장온은 조기에게 별동대를 주어 안정에 주둔시켰습니다. 주신은 물러나 금성의 유중에서 변장과 한수를 포위했으나, 동탁은 주신이 이기지 못하리라고 짐작하고 장온에게 휘하의 군세를 돌려 배후를 칠 것을 권했습니다. 장온은 이를 듣지 않고 주신에게 선령강을 토벌하도록 했습니다. 주신은 손견의 진언을 물리치고 금성을 포위했으나, 적들에게 퇴로를 끊겨 치중을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186

[태위 승진]

태위 장연이 파면된 후, 장온이 태위로 승진하며 삼공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습니다. 삼공이 조정 밖에 있다가 임명된 것은 그가 처음이었습니다.

이듬해 2월, 태위 장연이 파면되었습니다. 영제는 장안에 사자를 보내 장온을 태위로 승진시켰습니다. 삼공이 조정 밖에 있다가 임명된 것은 장온이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수도 귀환 및 호항후 봉해짐]

수도로 돌아온 후 호항후에 봉해졌습니다. 서방 반란의 주요 인물이었던 변장, 북궁백옥, 이문후는 한수에게 살해되었고, 황보숭이 좌장군으로 복귀하여 동탁과 함께 한수를 토벌했습니다.

그 해 겨울, 장온은 수도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이 변장, 북궁백옥, 이문후는 한수에게 살해당했고, 황보숭이 좌장군으로 복귀하여 동탁과 함께 한수를 토벌했습니다. 장온은 호항후에 봉해졌습니다.

187

[태위 파면 및 사례교위 복직]

태위에서 파면되었으나, 이후 사례교위로 복직하여 관직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듬해 4월, 장온이 태위에서 파면당하고 후임 태위로 최열이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장온은 사례교위로 복직했습니다.

188

[갑훈 천거]

사례교위로 재직 중, 환관 주멸을 도모하던 갑훈을 경조윤에 천거하는 상주문을 올렸습니다. 영제는 갑훈을 아꼈으나, 환관 건석 등의 종용으로 갑훈이 경조윤이 되었습니다.

훗날 토로교위 갑훈이 종정 유우, 좌군교위 원소 등과 함께 환관 주멸을 도모했습니다. 장온은 상주문을 올렸고, 갑훈을 경조윤에 천거했습니다. 영제는 갑훈을 곁에 두고 싶어 했으나, 갑훈을 내심 미워하였던 환관 건석 등이 장온의 상주를 따를 것을 종용하여 갑훈은 경조윤이 되었습니다.

190

[위위 임명]

훗날 위위에 임명되어 조정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훗날 장온은 위위가 되었습니다.

191

[동탁 암살 획책과 비극적인 죽음]

동탁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한 후, 장온은 사도 왕윤과 함께 동탁 암살을 획책했습니다. 그러나 태사(太史)의 예언을 빌미로 동탁의 무고를 받아 저자에서 매를 맞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동탁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태사를 자칭했을 때, 장온은 사도 왕윤과 함께 동탁 암살을 획책했습니다. 그때 태사(太史)가 날씨를 살펴보고 '대신들 중 처형해야 할 자가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전에 손견이 장온에게 동탁을 죽일 것을 권한 것에 한을 품어왔던 동탁은, 사람을 시켜 장온이 원술과 내통하고 있다고 무고했습니다. 결국 장온은 초평 2년(191년) 11월 5일(음력 10월 1일) 저자에서 매를 맞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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