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개신교, 개혁파, 칼뱅주의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28:28
장로교는 16세기 종교개혁 시기 스코틀랜드에서 존 녹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칼뱅주의 개신교 교파입니다.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 노회, 총회를 두는 계층적 치리 구조가 특징입니다.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미국을 거쳐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에 의해 한국에 전파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다수의 교단이 분열하며 발전했고, 현재도 교의 해석 및 교회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1550
[스코틀랜드 장로교 형성 및 국교화]
16세기 종교개혁 시기, 장 칼뱅의 제자인 존 녹스가 스코틀랜드에서 개혁주의 사상을 전파하며 장로교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장로교는 스코틀랜드의 국교가 되었습니다.
장로교는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형성되었으며, 특히 장 칼뱅의 제자인 존 녹스가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칼뱅의 종교개혁 사상을 전파하며 장로교 정치(당회, 노회, 총회 시스템)가 본격적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16세기 중반 이후 장로교를 국교로 선포하며 개신교 교파로서 장로교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688
[잉글랜드 관용령 시행과 장로교 변화]
잉글랜드에서 관용령이 시행되어 장로교회는 소수의 장로회원들에게 운영 권한을 부여하는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정부 기금이 없자 경제적 능력 있는 자들이 이사 자격을 얻어 재정 권한을 갖게 되며 교회의 신학적 중요성보다 이성적이고 온건한 방향으로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1688년 잉글랜드에서 관용령이 시행되면서 장로교회는 소수의 신뢰할 만한 장로회원들에게 운영 권한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정부 기금이 지원되지 않자,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유한 이사들이 교회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신학적 교리적 중요성보다 이성적이고 온건한 방향으로의 선회를 요구했으며, 이는 영국의 장로교가 칼뱅주의 순수성을 따르는 교회와 존 로크의 관용에 초점을 맞춘 교회로 나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66
[한국 개신교 첫 순교자,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가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평양에 입국했다가 순교했습니다. 이는 한국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 기록입니다.
1866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인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가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평양에 입국했으나, 제너럴셔먼호 사건 중에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한국 개신교의 첫 번째 순교자로 기록됩니다.
1885
[언더우드 목사 한국 장로교 전파]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를 시작으로 한국에 장로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남장로교회, 캐나다 장로교회, 호주 장로교회 선교사들도 뒤이어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는 미국 장로교회의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목사 등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1885년에 장로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왔습니다. 미국의 북장로교 선교사를 시작으로 남장로교회, 캐나다 장로교회, 호주 장로교회의 선교사들도 한국에 들어와 장로교를 전파하였습니다.
1912
[한국 장로교 첫 총회 개최]
한국에서 첫 장로교 총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장로교회가 공식적인 연합체계를 갖추고 조직적인 활동을 시작했음을 의미합니다.
1912년 9월, 한국에서 최초로 장로교 총회가 열렸습니다. 이는 한국 장로교회가 개별 교회들을 아우르는 상회(上會)로서의 공식적인 조직을 갖추고 교단의 체계적인 발전과 치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1952
[신사참배 반대파,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파 분립]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었던 사람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파로 분립했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 문제로 인한 신앙적 갈등이 해방 후 교단 분열로 이어진 결과입니다.
1952년 9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투옥당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파가 분립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장로교회 내 신앙적 순수성 보존 문제와 관련된 주요 분열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1953
[성서비평학 논쟁으로 예장과 기장 분열]
성서비평학 수용 문제를 두고 보수적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진보적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로 장로교가 분열되었습니다.
1953년, 성서비평학 수용 문제를 둘러싼 신학적 견해 차이로 인해 한국 장로교는 보수적 입장의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와 진보적 입장의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로 크게 분열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장로교 역사상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신학적 분열이었습니다.
1960
[세계교회협의회 문제로 통합, 합동, 고신으로 분열]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찬반 문제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찬성파인 통합측과 반대파인 합동측으로 갈라졌습니다. 이때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도 합동측에 참여하며 한국 장로교의 주요 교단 분열이 심화되었습니다. 분열에는 신학적 문제뿐 아니라 출신 지역과의 연관성도 있었습니다.
1960년 2월,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는 가입에 찬성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과 반대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으로 크게 갈라졌습니다. 또한, 기존의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이 합동측에 참여하면서 한국 장로교는 여러 주요 교단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이 분열은 단순히 신학적인 문제뿐 아니라 출신 지역(합동측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통합측은 평안북도)과도 관련이 있었습니다.
1974
[고신측 교단 내 분열, 반고소 고려파 탄생]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에서 신자 간 일반 법원 고소 가능성을 가결하자, 교리 신학적 변질 및 교회 행정 문제에 항의하며 반고소 고려파 교단이 분리되었습니다. 이 교단은 후에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 총회가 되었습니다.
1974년 제24회 고신측 총회에서 신자간에 일반 법원에서의 고소가 가능하다고 가결한데서 비롯된 교리의 신학적인 변질과 교회 행정 문제에 항의하여 일부 세력이 교단을 분리하였습니다. 이 분리된 반고소 고려파 교단은 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고려) 총회가 되었습니다.
2002
[한국 장로교 118개 교단 등록]
대한민국에 등록된 개신교 170개 교단 중 118개 교단이 장로교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한국 장로교의 광범위한 분파 현상을 보여줍니다.
2002년 문화체육관광부와 기타 국가기관에 등록된 개신교 170개 교단 중에서 장로교가 명칭에 들어 있는 교단이 118개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장로교가 수많은 분파로 나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입니다.
2009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 장로교회의 날 제정]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사업회가 7월 10일을 장로교회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대회를 열었습니다.
2009년 요한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사업회가 7월 10일을 '장로교회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대회를 개최하여, 장로교의 역사와 신학적 유산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12
[한국예수교장로회 출범 및 총회 100주년 기념대회]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 계승을 선언한 한국예수교장로회가 출범했습니다. 또한, 한국 장로교 총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일부 대형교단 중심으로 개최되었습니다.
2012년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의 역사적 계승을 선언한 한국예수교장로회가 출범하며 한국 장로교의 다양성을 더했습니다. 같은 해, 한국 장로교 총회 100주년 기념대회가 일부 대형교단들을 중심으로 개최되어 한국 장로교 역사의 한 획을 기념했습니다.
2013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 개최]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총회가 찬반 논란 속에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습니다. 이는 한국 교회에 '복음의 진정성'에 대한 자성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2013년 10월,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부산총회가 찬성과 반대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부산 벡스코에서 열렸습니다. 이 총회는 한국 교회에 '복음의 진정성'에 대한 자성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