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가족간첩 사건
간첩 사건, 공안 사건, 재심 사건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25:48
이준호 가족간첩 사건은 1985년 이준호와 모친 배병희가 월북한 숙부 이한수의 간첩 활동을 방조하고 국가기밀을 탐지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불법 감금, 가혹 행위 및 허위 진술 강요가 있었음이 드러났으며, 2009년 재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는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개인의 희생을 조명하며,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특진 및 포상을 받았고 검사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1969
[이준호 대학 입학]
이준호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했으며, 재학 중인 1971년에는 교련 중대장직을 맡는 등 활발한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이준호는 1969년 3월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입학하여 학업을 시작했습니다. 1971년에는 교련을 담당했던 강봉규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준호는 중대장 직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1973년 2월 동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972
[숙부 이한수 방문과 간첩 방조 혐의]
6.25 전쟁 당시 월북했던 숙부 이한수가 이준호의 집을 방문하여 간첩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지목되었으며, 이준호와 모친 배병희는 이한수의 간첩 행위를 용이하게 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1972년 3월 중순경, 6.25 전쟁 때 월북했던 숙부 이한수가 이준호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한수는 이준호에게 지령을 내리고, 이준호는 해안경비 상황 등 정보를 알려줬다고 합니다. 모친 배병희는 이한수 등을 뒷산 쪽으로 나가도록 하여 안전하게 입북하도록 함으로써 간첩 행위를 방조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이한수 일행이 1시간도 채 머물지 않았으며, 대화 내용도 간첩 행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김일성에게 바칠 선물로 놋주발과 팥을 제공했다는 주장은 김애지(시어머니)의 행위로 가족들은 진술했습니다.
1973
[이준호 방위병 소집 및 제대]
이준호는 서라벌예술대학 졸업 후 방위병으로 소집되어 복무하다가 이듬해 의가사제대했습니다. 이 복무 기간 중에도 군 관련 정보를 수집하여 간첩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준호는 1973년 10월 5일 방위병에 소집되어 이듬해 1974년 5월 17일 의가사제대를 했습니다. 검찰은 이준호가 1974년 4월경 해병대대본부의 위치, 시설 등을 탐지하고, 같은 해 8월경 이한수를 다시 만나 조선노동당에 가입하여 군 관련 정보를 수집해 제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준호는 1972년 이후 이한수를 만난 사실이 없으며, 군 관련 정보는 방위병 집체교육 중 알게 된 일반적인 내용이었다고 부인했습니다.
1974
[이준호 가족 인천 이사 및 대우자동차 입사]
1974년 겨울, 이준호 가족은 인천으로 이사했고, 이준호는 자영업을 하다 1979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도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준호를 비롯한 가족은 1974년 겨울 인천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준호는 이후 전자제품상 등 자영업에 종사하다가 1979년 10월 초순경 대우자동차 주식회사에 입사하여 1985년 연행될 때까지 근무했습니다. 검찰은 이준호가 1979년 10월 초순경 대우자동차 입사 후 대우중공업 인천공장의 위치, 공장 규모, 생산 장비 등 국가기밀을 탐지하고, 1981년 4월 초순경 예비군 훈련 때 훈련장 위치, 시설 등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를 제기했습니다. 이준호는 대우중공업 교육장에서 연수생들이 알 수 있는 일반적인 정보였고, 예비군 훈련 또한 국민으로서 정상적으로 참여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간첩 행위를 부인했습니다.
1985
[이준호, 배병희 불법 연행 및 감금]
이준호와 모친 배병희는 1985년 1월 11일 영장 없이 불법 연행되어 서울시경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약 40여 일간 불법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서울시경 검거보고서에는 1985년 2월 17일에 검거된 것으로 기록되었으나, 이준호와 배병희는 항소심 공판에서 각각 1월 10일과 11일경 연행되어 2월 19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수사기관에 구금되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당시 수사관들 또한 1985년 1월 11일경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했으며 영장 제시 등의 절차는 없었고, 장기간 불법 구금은 당시 수사 관행이었다고 시인했습니다. 이는 이준호와 배병희가 40여 일간 불법 감금되어 조사받았음을 나타냅니다.
[고문과 허위 진술 강요]
이준호와 모친 배병희는 불법 구금 기간 동안 구타, 발로 밟기, 잠 안 재우기 등의 가혹 행위와 회유를 당하며 사실과 다른 허위 자백을 강요받았습니다.
이준호는 40여 일간의 불법 구금 기간 동안 구타, 발로 밟힘, 옆구리를 맞는 등 물리적 압력과 함께 '자백해야 어머니와 나갈 수 있다'는 회유를 당해 사실과 다른 허위 자백을 했다고 항소심에서 진술했습니다. 특히 2차 접촉 사실을 조작할 때는 잠을 전혀 자지 못하게 한 채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습니다. 모친 배병희도 아들이 자백했으니 자신도 그렇게 진술해야 나갈 수 있다는 말에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준호의 숙부 이한순 또한 물구나무세우기, 불빛 비춰 잠 안 재우기, 구타, 물고문 등을 당하며 허위 사실을 조서에 기재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수사관들도 연행 과정에서의 구타와 수사 중 잠 안 재우기 등 가혹 행위를 시인했습니다.
[1심 유죄 판결 및 대법원 확정]
서울지법은 이준호와 모친 배병희에게 간첩 혐의로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1985년 7월 23일, 서울지방법원은 이준호에게 징역 7년, 모친 배병희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으며,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이준호와 배병희가 1972년 숙부 이한수의 간첩 활동을 방조하고, 이후 1974년과 1981년에도 국가기밀을 탐지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인정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준호 측은 모든 혐의에 대해 고문과 허위 진술 강요에 의한 것이라며 부인했습니다.
[수사관 김현창 특진 및 포상]
이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시경 옥인동 대공분실 경찰 김현창은 이 사건의 공로로 1985년 경장에서 경사로 특진하고, 1989년에는 청룡봉사상을 받고 경위로 진급했습니다.
이준호 가족간첩 사건을 고문하며 수사했던 당시 서울시경 옥인동 대공분실 경찰 김현창은 이 사건 공로로 1985년 12월 경장에서 경사로 특진했습니다. 이어서 1989년 3월에는 청룡봉사상 충상을 받고 경위로 진급했습니다. 이는 불법 수사와 가혹 행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사관이 포상받았다는 점에서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2009
[이준호, 배병희 재심 무죄 선고]
서울고등법원은 이준호와 모친 배병희 씨에 대한 재심에서 모든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억울함을 위로했습니다.
2009년 7월 1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이준호와 모친 배병희 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한 서민가정의 가장으로, 어린 손녀들을 둔 시골 할머니로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던 피고인들이 어느 날 간첩으로 지목돼 자백을 강요받았고 이어진 재판절차에서 억울함을 간절히 호소하였음에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히며, 피고인들의 희생을 마지막으로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해 억울한 사람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기원한다는 위로의 뜻을 전했습니다.
2016
[담당 검사의 무죄 판결에 대한 반응]
1985년 이준호를 기소했던 검사 고영주는 2016년 언론 인터뷰에서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이 사건에 대해 "기억나지 않아 할 말 없다"고 답변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1985년 이준호를 기소했던 서울지검 당시 검사 고영주는 2016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이준호·배병희 사건에 대해 "기억나지 않아 할 말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이는 불법 수사와 고문으로 조작된 간첩 사건의 피해자가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당사자였던 검사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