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 (야구인)
야구선수, 야구 지도자, 국가대표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25:36
이종욱은 빠른 발과 탁월한 주루 센스로 '육상부'라는 별명을 얻으며 KBO 리그를 대표하는 1번 타자로 활약한 야구 선수 출신 지도자입니다.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에서 외야수로 뛰며 2006년 KBO 도루왕, 2008년 득점왕을 차지했고, 3차례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010년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하며 국가대표로서도 빛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은퇴 후에는 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한국 야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1980
[서울 출생, 리틀 야구 시작]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난 이종욱은 어린 시절부터 빠른 발로 육상 대회에 나갈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축구팀이 없어 초등학교 때 '자이언츠' 리틀 야구팀에서 야구를 시작하며 운동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종욱은 1980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중랑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면목초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대표로 육상 대회에 나갈 정도로 발이 빨랐던 그는 처음에는 축구를 하려 했으나 축구부가 없어서 초등학교 때 '자이언츠' 리틀 야구팀에서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홍은중학교와 선린정보고등학교를 거쳤습니다.
1998
[청소년 국가대표 첫 국제 대회 출전]
선린정보고 3학년이던 이종욱은 대한민국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며 처음으로 국제 무대를 경험했습니다.
선린정보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8년 9월 대한민국 청소년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으며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제3회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1999
[현대 유니콘스 지명 및 영남대학교 진학]
신인 드래프트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된 이종욱은 영남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하며 선수로서의 역량을 키웠습니다.
1999년에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16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된 뒤 영남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했습니다.
2001
[성인 국가대표 첫 메달 획득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영남대 3학년이던 이종욱은 처음으로 대한민국 성인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01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한국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이종욱은 국제 대회 첫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영남대학교 3학년인 2001년에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성인 국가대표에 선발되었으며 그 해 9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01년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대만 대표팀의 뒤를 이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이종욱도 국제 대회 첫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3
[현대 유니콘스 입단 및 상무 야구단 입대]
대학 졸업 후 계약금 9천만원, 연봉 2천만원의 조건으로 현대 유니콘스에 공식 입단하여 프로 선수가 되었지만, 1군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고 12월에 상무 야구단에 입대했습니다.
1999년부터 2003년 영남대학교 체육학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계약금 9,000만원, 연봉 2,000만원의 조건으로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타격에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해 1군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2003년 12월에 입대해 군 복무를 시작했습니다.
2005
[현대 유니콘스 방출, 두산 베어스 이적]
군 복무를 마친 직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 통보를 받으며 선수 생활의 위기를 맞았으나, 고교 동기 손시헌의 도움으로 두산 베어스 입단 테스트를 거쳐 신고선수로 이적했습니다.
2003년 12월에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치고 2005년 11월에 제대했으나 20일 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됐습니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에는 발 빠른 타자 정수성이 있어 이종욱에 대한 수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방출 후 선수 생활에 은퇴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선린정보산업고등학교 동기이자 친구인 손시헌의 추천으로 KBO리그의 다른 팀인 두산 베어스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습니다. 이후 2006년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습니다.
2006
[두산 베어스 주전 도약 및 KBO 도루왕 등극]
두산 베어스 입단 첫해, 시즌 초 대주자와 대수비로 기용되던 그는 5월부터 주전 좌익수 겸 1번 타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종욱은 그 해 51도루를 기록하며 KBO 리그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리그의 신성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종욱은 시즌 초반 주로 대주자나 대수비로 기용되다가 그 해 5월부터 베테랑 외야수들을 밀어내고 좌익수 겸 1번 타자로 주전 자리를 꿰찼습니다. 그리고 좋은 활약을 인정받아 올스타전 감독 추천 선수로 출전했습니다. 그는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이었던 정근우와 도루 경쟁을 벌여서, 51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4번 타자 김동주의 부상 등으로 팀은 5위에 그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KBO 리그 1군 데뷔]
두산 베어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고,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하며 1군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2006년 두산에 신고선수로 입단했고 곧바로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습니다. 한편, 팀에서는 2006년 WBC에 출전했던 김동주와 홍성흔이 부상으로 제외되어 공수 양면에서 치명적인 공백이 생겼고, 김경문 감독은 시범 경기 중 '발야구로 승부를 걸겠다'고 하며 발 빠른 선수를 중용했습니다. 시즌이 시작되자, 이종욱은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 1군에 데뷔해, 1타수 무안타를 기록했습니다.
2007
[KBO 플레이오프 MVP 첫 수상]
2007년 시즌 중견수로 활약하며 체력 부담을 극복한 이종욱은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타율 0.545의 맹타를 휘둘러 MVP를 수상했습니다. 이는 그의 첫 포스트시즌 MVP 수상입니다.
2007년에 이종욱은 체력 부담을 극복해 9월 이후에도 타율 0.359에 이르렀고, 2루타 20개, 3루타 12개로 장타도 증가했습니다. 그는 당시 LG 트윈스의 1번 타자였던 이대형과 도루왕 경쟁을 벌였고, 이대형에 밀려 47도루로 2위에 머물렀지만, 3할대 타율, 득점 2위, 최다 안타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특히 2007년에는 그를 포함해 고영민, 민병헌이 사상 최초로 3명이 30도루를 달성해, 팀 특유의 발야구가 최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그 해 두산은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해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고, 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3연승으로 가볍게 제압했습니다. 이종욱은 플레이오프에서 타율 0.545(11타수 6안타), 7득점, 3타점, 2도루로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습니다.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첫 수상]
2007년 시즌 맹활약을 펼친 이종욱은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최고의 외야수로 인정받았습니다. 유효표 397표 중 350표를 획득하며 최다 득표를 기록했습니다.
이종욱은 외야수 부문 골든 글러브 후보에 올라 유효표 397표 중에 350표를 획득(득표율 88.2%), 최다 득표로 수상했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그가 솔로 홈런을 치며 환호하는 순간의 사진으로 골든 포토상 수상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11월 29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로 뽑혔습니다.
2008
[KBO 득점왕 및 플레이오프 MVP 2년 연속 수상]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획득과 함께 이종욱은 2008년 KBO 리그에서 98득점을 기록하며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습니다. 또한 플레이오프 MVP를 2년 연속 수상하며 '가을 사나이'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종욱은 98득점으로 득점왕에 올랐습니다. 팀은 그 해에 시즌 2위를 기록했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해 4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습니다. 이종욱은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에서의 두 차례 슬라이딩 캐치를 비롯해 6경기 연속 멀티 히트를 기록하며 0.517의 타율(29타수 15안타), 3타점 6득점의 맹활약으로 플레이오프 MVP에 선정됐고 2년 연속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야구 금메달 획득]
이종욱은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는 역사적인 순간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미국전에서 끝내기 희생 플라이를 기록하는 등 중요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종욱은 2008년 7월 14일 발표된 올림픽 엔트리에 외야수 중 같은 팀 김현수와 함께 포함됐습니다. 올림픽 야구 본선은 8월 13일부터 시작됐습니다. 첫 날 미국전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끝내기 희생 플라이를 쳐 냈습니다. 15일 캐나다전에서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하며 류현진의 완봉승에 일조했습니다. 다음 날 일본전에서는 절묘한 기습번트와 도루로 2득점을 이끌었습니다. 17일 중국전 11회 승부치기에서 2루 주자로 나가 이승엽의 끝내기 안타 때 득점해 1점차로 승리했습니다. 23일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볼넷으로 출루했고, 다음 타자 이용규가 2루타를 쳐 냈으나 아웃 카운트를 착각한 그가 홈으로 들어오지 않는 실수를 범했지만 대표팀은 1점차로 승리하며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WBC) 준우승]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이종욱은 준결승전에서 대주자로 투입되어 도루에 성공하는 등 팀의 준우승에 기여했습니다. 한국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했습니다.
2009년 2월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외야수로서는 당시 같은 팀이었던 김현수와 함께 선발됐습니다. 그는 주로 톱타자로 경기에 출장했습니다. 베네수엘라와의 준결승전에서는 김현수 대신 수비 강화를 위해 대주자로 교체돼 바로 도루에 성공했고 이후 안타 때 득점했습니다.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경기 후반 대주자로 교체 투입돼 이범호의 안타 때 득점해 동점이 됐으나 연장전에서 스즈키 이치로의 2타점 적시타를 맞고 2점차로 패해 대표팀은 준우승에 머물렀습니다.
[KBO 리그 통산 14번째 사이클링 안타 달성]
WBC에서의 부진을 털어내고 LG 트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KBO 리그 통산 14번째 사이클링 안타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을 알렸습니다.
2009년 WBC 대표로 차출됐으나 부진했습니다. 시즌이 들어선 후에는 4월 11일, LG 트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첫 타석 2루타, 두 번째 타석 볼넷, 세 번째 타석 안타, 네 번째 타석 투런 홈런, 다섯 번째 타석 3루타를 쳐 내며 KBO 리그 통산 14번째 사이클링 안타를 기록했습니다.
[수비 중 큰 부상 및 빠른 복귀]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 중 수비 상황에서 동료 선수와 충돌해 오른쪽 목이 찢어지고 턱관절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시즌 복귀도 불투명하다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는 놀라운 회복력으로 빠르게 1군에 복귀했습니다.
2009년 6월 2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김종국의 뜬공을 잡으려다가 2루수 김재호의 왼발 스파이크에 목을 부딪혀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병원에 후송된 결과 오른쪽 목이 3cm 정도 찢어져 출혈이 있었고 턱관절 골절로 판명됐습니다. 부상 당시 시즌 복귀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수술 후 빠르게 재활을 거친 그는 2군 경기에 출전해 홈런을 쳐 냈고, 7월 17일에 1군에 복귀했습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금메달 획득]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대한민국이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비록 개인 성적은 부진했지만, 국제 대회 금메달 리스트로서의 명예를 얻었습니다.
2010년 9월 6일 발표된 광저우 아시안 게임 최종 엔트리에 그는 외야수로서는 당시 같은 팀이었던 김현수와 함께 포함됐습니다. 첫 경기 대만전에서는 안타를 쳐 내지 못했습니다. 이후 1번 타자를 정근우에게 내 줬고, 그 대신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아시안 게임에서 타율 0.125, 3삼진으로 부진했지만, 대한민국은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13
[FA 자격 획득 및 NC 다이노스 이적]
FA 자격을 얻은 이종욱은 원 소속팀 두산 베어스와의 협상이 결렬된 후, 4년 총액 50억원에 NC 다이노스로 이적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2013년 시즌 후 FA를 선언했으나 소속 구단 두산 베어스와의 우선 협상 기간 동안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11월 17일, 4년 총액 50억원(계약금 28억원, 연봉 5억원, 옵션 2억원)의 조건으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했습니다.
2014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 기록]
NC 다이노스 소속으로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연장 11회말 역대 16번째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터뜨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서 극적인 순간 중 하나입니다.
2014년 9월 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3-2로 앞선 연장 11회말 차우찬을 상대로 역대 16번째 역전 끝내기 만루 홈런을 쳐 냈습니다. 특히, 타점은 78타점으로 2013년에 기록한 52타점 기록을 갱신했고, 결승타는 10개로 에릭 테임즈의 17개, 나성범의 12개에 이어 팀 내에서 3위를 기록했습니다.
2015
[KBO 리그 통산 300도루 달성 (역대 9번째)]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루 도루에 성공하며 KBO 리그 역대 9번째 통산 300도루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주루 능력을 상징하는 기록입니다.
2015년 4월 1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2루 도루에 성공하면서 역대 9번째 통산 300도루를 기록했습니다.
2016
[KBO 리그 역대 8번째 11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 달성]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송은범을 상대로 역대 8번째로 11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하며 꾸준함의 대명사임을 입증했습니다.
2016년 8월 25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송은범을 상대로 역대 8번째 11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를 기록했습니다.
2017
[KBO 준플레이오프 최다 경기 출장 기록 경신]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 출전하며 개인 통산 26번째 준플레이오프 경기 출전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역대 준플레이오프 최다 출장 기록입니다.
NC 다이노스는 이번 시즌 4위를 기록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으며, 이종욱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엔트리에 포함되었습니다. 이은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는 롯데 자이언츠와 맞붙었으며, 이종욱은 다시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이 시리즈 5경기에 모두 출전하면서 개인 통산 26번째 준플레이오프 경기에 출전해, 역대 준플레이오프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2018
[양 무릎 연골 수술]
양 무릎 변연절제술 및 연골편절제 수술을 받으며 긴 재활에 들어갔습니다. 이 부상은 그의 현역 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8년 5월 15일에 무릎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고, 5월 28일에 건국대학교병원에서 양 무릎 변연절제술 및 연골편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당초 복귀에는 2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그보다 긴 약 4개월 후인 9월 17일에 2군 경기를 치른 뒤 9월 20일에 1군에 합류했습니다.
[현역 은퇴 및 지도자 경력 시작]
정규 시즌이 끝난 직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NC 다이노스의 작전/주루코치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정규 시즌이 끝난 직후인 10월 24일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은퇴 후 2019년에는 NC 다이노스의 작전/주루코치로 활동했습니다.
2024
[삼성 라이온즈 코치로 이적]
NC 다이노스와의 재계약을 하지 않고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자리를 옮기며 새로운 팀에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2024년 시즌을 마친 후 NC 다이노스와 재계약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2024년 11월 5일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