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곤 (1919년)
왕족, 공무원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22:28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 이강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해방 후 평범한 시민으로 살았다. 사기 혐의로 법정에 서기도 하고, 국회 경비원으로 일하는 등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으며, 거주지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1919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자로 탄생]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 이강의 아들로 한성부(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19년 1월 3일,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 이강의 여섯째 아들로 한성부(현재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명은 이명길이며, 수인당 김씨 소생이다.
1951
[사기 혐의로 체포 및 기소]
토건업자 등과 공모하여 인장을 위조하고 명동의 옛 이왕실 소유 토지와 주택을 매각한 사기 혐의로 체포되어 법정에 섰다.
1951년, 이곤은 토건업자 등과 공모하여 인장을 위조하고 명동 소재 옛 이왕실 소유 토지와 주택을 700만환에 매각했다가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다. 징역 3년을 구형받았으나 6.25 사변 전까지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해 생활고를 겪었다는 점이 고려되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1952
[덕수궁 거주 및 강제 이주]
구황실재산관리국의 허가를 받아 1962년까지 덕수궁에서 거주했으나, 이후 덕수궁 개축으로 집이 헐리자 홍릉 내 마굿간을 개조한 곳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952년부터 1962년까지 구황실재산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의 허가를 얻어 덕수궁에서 거주했다. 그러나 1962년 덕수궁 개축 때 살던 집이 헐리면서 서울 청량2동 홍릉 내 마굿간을 개조한 곳으로 이사해야 했다. 이는 왕족으로서의 생활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1964
[국회 경비원으로 새로운 삶 시작]
문교부 촉탁, 석탄공사 경비원 등 말단직을 전전하다 국회의원 황호현의 주선으로 국회 수위로 취직하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문교부 과학기술과 촉탁, 석탄공사 청량리지사 경비원 등 여러 말단직을 거쳤다. 1964년에는 국회의원 황호현의 주선으로 국회 수위로 취직하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으며, 1974년 퇴직했다. 이는 황실의 후예가 평범한 시민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1969
[홍릉 거주지 강제 철거와 천막 생활]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홍릉 내 거주지 철거 경고를 여러 차례 받았으나 이사 자금이 없어 불응하다가 결국 강제 철거되고 천막에서 생활하는 처지가 되었다.
1968년, 홍릉에 거주하던 중 문화재관리국 직원과 다툼이 발생했고, 쌍방 고소로 입건되기도 했다. 1969년 4월 23일, 문화재관리국은 이곤의 홍릉 집을 철거 조치했다. 철거 전 7번의 경고장이 있었음에도 이사 자금이 없어 불응했던 이곤 가족은 결국 천막을 치고 생활하게 되었고,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며 세간의 안타까움을 샀다.
1984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
1984년 1월 교통사고를 당해 뇌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그해 3월 23일 사망했다.
1984년 1월 14일, 교통사고를 당해 서울 성바오로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뇌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호전되지 못했다. 결국 같은 해 3월 23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삶은 대한제국 황실의 마지막 후예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단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