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대한민국)
군사 학교, 국립대학, 장교 양성 기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21:33
대한민국 육군 장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서울 노원구에 위치하며 '화랑대'라는 별칭을 가집니다. 1946년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로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智仁勇(지인용)'을 교훈으로 삼아 엘리트 장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정규 4년제 교육을 통해 학사 학위를 수여하고, 군사 훈련과 다양한 체육 및 문화 활동을 제공합니다. 국내외 위탁 교육을 통해 미래 전장을 주도할 군사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1945
[군사영어학교 창설]
육군사관학교의 시초가 되는 군사영어학교가 창설되었습니다. 이는 해방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기반을 다지는 첫걸음이었습니다.
1945년 12월 5일, 대한민국 육군 장교 양성 기관인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군사영어학교가 창설되어 장교 양성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1946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설립]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되면서 경비사관 양성을 목적으로 태릉에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설치되었습니다. 초대 교장은 이형근 참령이 맡았습니다.
1946년 5월 1일, 남조선국방경비대의 경비사관 양성을 위해 태릉에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이형근 참령(현재의 소령)이 초대 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조선경비사관학교로 명칭 변경]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의 명칭이 조선경비사관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국군 창설과 맥을 같이하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1946년 6월 15일,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가 조선경비사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며 국군 창설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48
[육군사관학교로 명칭 변경]
조선경비사관학교가 대한민국 육군의 정식 사관학교인 육군사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며 오늘날의 육군사관학교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48년 9월 5일, 조선경비사관학교가 육군사관학교로 명칭을 변경하며 대한민국 육군의 장교 양성 기관으로서 공식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1949
[정규과정 2년제 교육 방침 수립]
육군사관학교는 10기(생도 1기)부터 정규과정으로 2년제 교육을 실시하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장교 수급 문제로 1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는 10기(생도 1기)부터 정규 2년제 교육을 실시할 방침을 세웠으나, 당시 장교 수급의 시급성으로 인해 1년으로 교육 기간이 단축되었습니다.
1950
[첫 정규 4년제 사관생도 입교]
첫 정규 4년제 사관생도들이 모집되어 333명의 생도들이 입교했습니다. 그러나 입교 24일만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들은 임관 전 전쟁에 투입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950년 6월 1일, 육군사관학교에 첫 정규 4년제 사관생도 333명이 입교했으나, 불과 24일 만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여 많은 동기생을 잃고 임관 전 전투에 투입되었습니다.
[한국 전쟁 발발로 교육 중단]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입교한 지 24일 만에 한국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사관학교는 일시 폐교되었고, 생도들은 포천 방면의 조선인민군 방어에 투입되며 많은 동기생을 잃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육군사관학교는 일시 폐교되고, 입교한 지 얼마 안 된 생도들은 임관 전 포천군 방면의 조선인민군 방어에 투입되어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10기 생도 대전에서 소위 임관]
한국 전쟁 발발로 훈련이 단축된 10기(생도 1기)가 대전시에서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많은 동기생을 전쟁터에서 잃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1950년 7월 10일, 한국 전쟁의 발발로 단축 교육을 받은 10기(생도 1기)가 대전시에서 소위로 임관했습니다. 이들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국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1951
[육군사관학교 교가 제정]
육군사관학교가 4년제 사관학교로 재개교하기 직전, 교가 현상 공모를 통해 공중인 시인이 가사를 짓고 여류 작곡가 김순애가 작곡한 작품이 교가로 채택되었습니다.
1951년 여름, 육군사관학교 재개교 직전 현상 공모를 통해 한국 전쟁 중 종군작가단에서 활약하던 시인 공중인이 작사하고 여류 작곡가 김순애가 작곡한 작품이 육군사관학교 교가로 채택되었습니다.
[진해 재개교 및 정규 4년제 재편]
한국 전쟁 중이던 경상남도 진해에서 육군사관학교가 새로운 체제로 재개교하며 정규 4년제 교육과정을 재편성하고 11기 생도들을 선발했습니다.
1951년 10월, 육군사관학교는 경상남도 진해에서 재개교하며 정규 4년제 교육 시스템으로 재편성되었고, 11기 생도들을 선발하여 현대적인 사관학교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55
[학사 학위 수여 시작]
정규 4년제 교육을 받은 11기생들이 임관하면서부터 학사 학위가 수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육군사관학교가 군사 교육과 더불어 학술적인 인정을 받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55년 10월, 정규 4년제 교육과정을 이수한 11기생들의 임관을 시작으로 육군사관학교 졸업생에게 학사 학위가 수여되기 시작하여 교육의 질과 전문성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967
[관창체육관 준공]
생도 체육시설 중 하나인 관창체육관이 준공되었습니다. 이 체육관은 신라 화랑 관창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967년, 육군사관학교 내 생도들의 체육활동을 위한 관창체육관이 준공되었습니다. 이는 신라 화랑 관창의 애국정신과 군인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여진 것입니다.
1973
[문학사·공학사 학위 수여 및 예복 제정]
육군사관학교에서 문학사 및 공학사 학위 수여를 시작했으며, 현재의 예복이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교육과정과 생도 복장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973년부터 육군사관학교는 졸업생에게 문학사 및 공학사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특하고 상징적인 예복이 제정되어 생도들의 자부심을 높였습니다.
1994
[군사과학대학원 설치 운영]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와 함께 군사과학대학원을 설치하고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군사 학문의 전문성을 심화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1994년 11월, 육군사관학교는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와 협력하여 군사과학대학원을 설치하고 운영하기 시작하며 군사 전문 인력 양성에 힘썼습니다.
1997
[교정 유료 개방 시작]
육군사관학교 교정이 일반인에게 제한적으로 유료 개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학교의 문을 시민들에게 처음으로 열어준 조치였습니다.
1997년 2월부터 육군사관학교 교정이 일반인에게 제한적으로 유료 개방되어, 시민들이 학교를 방문하고 군사 시설의 일부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8
[여성 생도 입학 허용]
육군사관학교에 여성 생도의 입학이 처음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첫 해 25명의 여성이 입학하며 성별에 관계없이 장교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1998년, 육군사관학교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생도의 입학을 허용하며 25명의 여성이 입학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 군대의 성평등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999
[관창체육관 무도장 증축]
관창체육관의 무도장이 증축되었습니다. 이는 생도들의 무도 훈련을 위한 시설 확충으로, 체력 단련과 무도 숙련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9년, 육군사관학교 내 관창체육관에 무도장이 증축되어 생도들이 검도, 유도, 태권도 등 다양한 무술을 더욱 효과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2000
2000년 6월, 육군사관학교 내 육사병원이 개축되어 생도와 교직원들의 건강 관리 및 의료 서비스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2001
2001년, 군사과학대학원이 5기 졸업생을 배출한 뒤 신입생 선발이 이루어지지 않아 잠정적으로 운영이 중단되었습니다.
2002
[육사 출신 여군 장교 최초 임관]
육군사관학교 출신 여군 장교가 최초로 임관했습니다. 이는 여성 생도 입학 허용 이후 실질적인 첫 결실로, 여성 장교의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2002년 3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던 여성 생도들이 과정을 마치고 최초의 육사 출신 여군 장교로 임관하며 군대 내 여성의 역할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3
[퇴교 생도 재입학 및 재지원 학칙 수정]
학칙이 수정되어 질병 또는 성적 미달로 퇴교하더라도 다른 장교 과정에 지원하거나 연령 제한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육군사관학교에 다시 입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3년부터 육군사관학교 학칙이 수정되어 질병이나 성적 미달로 퇴교한 생도들도 특정 조건(다른 장교 과정 지원, 연령 제한 미해당 시 육사 재입학) 하에 다시 군 복무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1회 심일상 시상식 개최]
제1회 심일상 시상식이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생도들의 모범적인 생활과 학업 성취를 격려하는 새로운 전통의 시작이었습니다.
2003년 1월, 육군사관학교에서 제1회 심일상 시상식이 개최되어 생도들의 학업 우수성과 모범적인 군인정신을 기리는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6
[개교 60주년 행사 개최]
육군사관학교의 개교 6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이는 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기념하고 미래를 다짐하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2006년 5월, 육군사관학교 개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개최되어 학교의 오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을 되새기고 미래 육군을 이끌어갈 장교 양성의 의지를 다졌습니다.
2007
[ISoDoMA 최초 개최]
ISoDoMA가 최초로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국제적인 군사학술 교류의 장을 마련한 중요한 행사였습니다.
2007년 11월, 육군사관학교에서 ISoDoMA가 최초로 개최되며 국제적인 군사학술 교류를 활성화하고 세계 각국의 군사 전문가들과 지식을 공유하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2008
[교정 일반인 무료 개방]
육군사관학교 교정이 일반인에게 무료로 전면 개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시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학교를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한 조치였습니다.
2008년 10월 1일부터 육군사관학교 교정이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되어, 시민들이 자유롭게 학교를 방문하고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습니다.
2012
[대통령 부대표창 수상]
육군사관학교가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로와 교육 역량을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2012년 9월, 육군사관학교는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상하며 국가 안보와 국군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15
[대외 스포츠 경기 우수 성적 달성]
육군사관학교 문화체육활동 부서들이 전국 대학 동아리 대회 우승(핸드볼, 럭비), 전국 생활체육대회 우승(복싱) 등 다양한 대외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2015년, 육군사관학교의 핸드볼, 럭비부가 전국 대학 동아리 대회에서 우승하고 복싱부가 전국 생활체육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다수의 스포츠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학교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제1회 육군사관학교장 배 전국 대학생 국궁대회 개최]
제1회 육군사관학교장 배 전국 대학생 국궁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는 전통 무예의 계승과 대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의미 있는 행사였습니다.
2015년 4월, 제1회 육군사관학교장 배 전국 대학생 국궁대회가 개최되어 전통 무예인 국궁의 저변을 확대하고 대학생들의 건강한 경쟁과 교류를 장려했습니다.
2016
[대외 스포츠 경기 우수 성적 지속]
육군사관학교 문화체육활동 부서들이 전국 대학 동아리 대회 우승(럭비, 태권도, 수영), 서울 시립대 총장배 우승(축구) 등 여러 대외경기에서 좋은 성과를 이어갔습니다.
2016년, 육군사관학교의 럭비, 태권도, 수영부가 전국 대학 동아리 대회에서 우승하고 축구부가 서울 시립대 총장배에서 우승하는 등 전년도에 이어 스포츠 분야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2020
[인공지능 면접 방식 도입]
2020학년도(80기) 선발시험부터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새로운 면접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이는 입시 전형에 최신 기술을 접목한 중요한 변화입니다.
2020학년도(80기) 선발시험부터 육군사관학교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면접 방식을 도입하여 공정하고 효율적인 인재 선발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2024
[체력검정 종목 국민체력100으로 변경]
제84기 입학전형부터 체력검정 종목을 기존 3종목에서 국민체력100 종목으로 변경합니다. 이는 생도들의 체력 평가 기준에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2024년 (제84기) 입학전형부터 육군사관학교의 체력검정 종목이 기존의 3종목(달리기,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펴기)에서 국민체력100 종목으로 변경되어 새로운 체력 평가 기준을 적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