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요 (삼국지)

정치인, 무장, 후한

num_of_likes 46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20:50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정치인, 무장, 후한
report
Edit

후한 말 정치인이자 전한 고제 유방의 후손. 양주 자사로 임명되어 혼란기에 원술, 손책 등과 대립하였다. 특히 손책의 강동 평정 과정에서 주요 저항 세력으로 맞섰으나 결국 패배하고 예장으로 피신했다. 명망과 품행이 훌륭했으나 혼란한 시기 광대한 영토를 지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57

[유요의 탄생]

유요는 동래군 모평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한 고제 유방의 후손으로, 백부 유총이 태위에 오르는 등 명망 높은 가문에서 성장했다.

유요는 157년 동래군 모평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전한 고제 유방의 후손으로 명망이 있었으며, 백부 유총은 태위에 오르기도 했다. 19세에 도적에게 붙잡힌 제부 유위를 구해 명성을 얻었다.

193

[양주자사 임명과 부임]

하비국에서 피난 중 조정으로부터 양주자사에 임명되었다. 회남 일대가 원술에게 점거되어 있었으므로, 장강 남쪽 오군 곡아현에 치소를 두었다.

193년 혹은 194년, 유요는 하비국 회포현에서 난을 피해 지내던 중 조정으로부터 양주자사에 임명되었다. 당시 회남 일대는 원술이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술이 임명한 단양태수 오경과 단양도위 손분의 안내를 받아 장강을 건너 남쪽 오군 곡아현에 치소를 두었다. 같은 청주 출신인 태사자, 등탐, 등주, 시의 등을 불러 곁에 두었다.

194

[원술에 맞서 오경, 손분 축출]

원술이 칭제를 기도하자, 오경과 손분을 자신의 치소에서 축출했다. 이후 번능, 우미, 장영 등을 주둔시켜 원술의 침략에 대비했다.

194년,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유요는 원술이 임명한 오경과 손분을 자신의 치소에서 쫓아냈다. 오경과 손분은 역양현으로 물러났고, 유요는 횡강진에 번능, 우미를, 당리구에 장영을 주둔시켜 원술의 침략에 대비했다. 원술은 이에 맞서 혜구를 양주자사로, 오경을 독군중랑장으로 삼아 손분과 함께 유요의 군대를 치게 했다.

195

[손책에게 패하여 단도로 퇴각]

손책이 오경, 손분과 합류하여 장강을 건너 침공했다. 유요군은 연이은 패배를 겪었고, 결국 오군 단도현으로 퇴각하게 되었다.

195년, 손책이 오경과 손분에게 합류하여 장강을 건너 유요군을 공격했다. 손책은 우저를 확보하고 단양군을 침범했으며, 팽성상 설례와 하비상 착융이 말릉성과 그 남쪽을 방어했으나 고전했다. 설례, 번능, 우미가 우저를 잠시 탈환했으나 도로 빼앗겼다. 손책의 공세에 밀려 유요는 오군 단도현으로 퇴각해야 했다.

[허소의 조언으로 예장 도피]

허소의 조언을 받아들여 회계 대신 예장군으로 도피했다. 한편, 유요에게 중용되지 않았던 태사자는 단양군에서 독자적으로 태수를 자칭하며 이탈했다.

유요는 회계군으로 달아나려 했으나, 허소(허자장)의 진언을 듣고 예장군으로 방향을 틀었다. 허소는 회계가 손책이 탐할 만한 곳이며 외진 곳이라 좋지 않다고 조언했고, 예장은 서쪽으로 형주, 북쪽으로 예주와 연결되어 조조와 유표의 구원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당초 허소의 비웃음을 살까 중용하지 않았던 태사자는 단양군 무호현으로 떨어져 나가 그 태수를 자칭하며 이탈했다.

198

[예장에서 병사]

예장군 팽택현에 머무르던 중 질병으로 42세의 나이에 병사했다.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예장군 팽택현에 머물렀다. 당시 예장에서는 원술 혹은 유표가 임명한 제갈현과 조정이 임명한 태수 주호가 대립하고 있었고, 유요는 주호를 후원하여 착융으로 하여금 제갈현을 치게 했다. 허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착융은 주호를 죽이고 예장을 장악했으며, 유요는 착융과 싸워 한 번 패한 후 결국 착융을 무찔렀다. 198년, 유요는 질병으로 4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9

[손책이 유요의 가족을 보살피다]

유요 사망 후 손책은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남겨진 가족들을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유요가 사망한 이듬해인 199년, 손책은 병사한 유요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르고 그의 식솔들을 잘 보살펴 주었다. 이는 손책이 비록 적대 관계였으나 유요에 대한 존경심을 표한 것으로 해석된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