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법조인, 정치인,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장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19:34
학창 시절 전국 수석을 두 번 차지한 수재로, 검사를 거쳐 정계에 입문했다. 16·17·18대 3선 국회의원, 제3·4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제7대 국토교통부 장관을 역임하며 주요 공직을 두루 거쳤다. 보수 정치인으로서 다양한 당적을 오가며 활동해 왔다.
1964
1964년 2월 14일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에서 태어났으며, 학창 시절 내내 전국 수석을 지킨 수재였다.
1982
1982년 제1회 대입학력고사에서 전국수석을 차지했으며, 당시 신문 인터뷰에서 법사회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같은 해 19세에 서울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1992
90년 동구권의 몰락을 보고 사상적 전환 후, 사회인으로서의 삶을 모색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준비기간 2년 만에 제34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93
1993년 9월 15일 자정 무렵, 동료와 술에 취해 노상방뇨를 하다가 이를 나무라는 가게 주인을 폭행하고 파출소에서 기물 등을 부쉈다는 혐의로 서울성북경찰서에 입건 조사받았다. 이 사건으로 기소유예 판정을 받았다.
1995
1995년 제24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용되었으며, 이후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를 역임하며 피라미드 판매 조직 소탕 등에 열중했다.
1999
[변호사 개업 및 정계 입문]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 후 합리적 개혁 보수를 천명하며 한나라당에 입당,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됨.
1999년 1월 검사를 그만두고 법무법인 춘추 변호사로 개업했다. 같은 해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고 천명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정치에 입문했다.
2000
[제16대 국회의원 당선 (초선)]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양천구 갑 지역구에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함.
2000년 4월 13일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양천구 갑 지역구에서 제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남경필, 정병국 의원과 함께 '남원정'으로 불리는 당내 소장 개혁파의 활동을 주도했다.
2004
[제17대 국회의원 당선 (재선)]
제17대 국회의원에 재선, 총선 직후 치러진 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선출됨.
2004년 4월 15일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같은 해 총선 직후 치러진 당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박근혜 대표에 이어 2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당내 입지를 강화했다.
2005
[세계경제포럼 '차세대 지도자' 선정]
세계경제포럼(WEF)이 선발한 '차세대 지도자'(YGL.Young Global Leader)로 선정되어 국제적인 인물로 인정받음.
2005년 1월 7일 세계경제포럼(WEF)이 선발한 '차세대 지도자'(YGL.Young Global Leader)로 선정되었다. 이는 그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인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2006
[박근혜 사학법 개정 비판]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개정 관련 이념 투쟁을 '병'이라고 비판하며 "편협하고 경직된 논리"라고 지적, 이틀 후 박 대표로부터 공개 경고받음.
2006년 1월 3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서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표의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이념 투쟁을 '병'이라고 비판하며, 박 대표가 전교조의 사학 장악 음모와 국가 정체성 문제로 규정한 것을 "편협하고 경직된, 시대에 맞지 않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에 박근혜 대표는 이틀 후인 1월 5일 공개 경고를 했다.
2007
[전두환 세배 논란]
'갈등과 증오의 역사를 녹여가야 한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세배 방문,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다음날 공식 사과.
2007년 1월 2일 "이제 그만 갈등과 증오의 역사를 녹여가야 한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세배 방문했다. 다음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집도 방문했으나, 전두환에게 세배한 것이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에 1월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사과했다.
2008
[제18대 국회의원 당선 (3선)]
제18대 국회의원에 3선 당선, 2012년까지 의원직을 수행하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주요 직책을 역임.
2008년 4월 9일 제18대 국회의원에 3선으로 당선되었다. 2000년 5월 30일부터 2012년 5월 29일까지 제16대~제18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사무총장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2010
2010년 3월 30일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전면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는 당시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의 당론이 선별급식이었던 것과 대조되는 입장이었다.
2011
[총선 불출마 선언 및 한나라당 최고위원 선출]
2012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제14대 한나라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전당대회에 도전, 4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됨.
2011년 6월 20일 제14대 한나라당 대표 및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도전하며 2012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의원 유효 투표 11만 4372표 명 중 2만 9086표를 얻어서 4위로 최고위원에 선출되었다.
[무상급식 입장 번복]
라디오 인터뷰에서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밝히며 기존의 전면 찬성 입장을 번복.
2011년 6월 24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과거 전면 찬성했던 무상급식에 대한 주장을 번복했다.
2013
['변호인' 관람 후 현정부 비판]
영화 '변호인' 관람 후 페이스북에 "국민이 체감하는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 신호"라며 공안 과잉과 정치 마비를 지적.
2013년 12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화 '변호인'을 관람한 소감을 밝히며 "국가가 국민에게 부당한 폭력으로 군림할 때 변호인같은 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으로 민주화 시대로 넘어설수 있었습니다. 국민이 체감하는 민주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 신호"라고 언급했다. 그는 "공안의 과잉과 정치의 마비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민과 권력의 대결구도를 가져온다는 역사의 경험을 늘 성찰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박근혜 정부의 철도노조 탄압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2014
[제3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당선 (초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당선, 대구경북 외 보수 후보 중 유일하게 당선되며 주목받음.
2014년 6월 4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소속으로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당선되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다수 당선된 상황에서 대구경북을 제외하고 보수 후보가 당선된 유일한 지역으로, 그의 향후 입지에 대한 전망이 커졌다.
2017
2017년 새누리당을 탈당하여 바른정당에 입당했다. 이후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합당에 반대하며 당적에 변화를 겪게 된다.
2018
2018년 4월 10일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합당에 반대하여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입당설이 돌기도 했으나 "정당정치를 돌아보지 않겠다는데 더 강조점이 있다”며 무소속으로 지방선거에 임할 뜻을 밝혔다.
[제4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당선 (재선)]
무소속으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문대림 후보를 누르고 제주도지사에 재선.
2018년 6월 13일 무소속으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하여 더불어민주당 문대림 후보를 누르고 제주특별자치도지사에 재선되었다.
2020
2020년 2월부터 5월까지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정책총괄본부장 등 주요 직책을 맡으며 중앙 정치 무대 복귀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2022
2022년 3월부터 5월까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을 역임하며 차기 정부의 정책 기획과 조직 구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제7대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
제7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정부의 주요 정책을 총괄하며 2023년 12월까지 직무 수행.
2022년 5월 13일 제7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윤석열 정부의 부동산, 교통 등 주요 국토교통 정책을 총괄했다. 2023년 12월 25일까지 직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