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무

군벌, 절도사, 당나라 인물

num_of_likes 44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18:46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군벌, 절도사, 당나라 인물
report
Edit

왕경무는 당나라 말기 평로군 절도사로 활약한 군벌이다. 그는 안사유의 휘하에서 대장으로 시작하여 농민 봉기를 진압한 뒤 안사유를 추방하고 스스로 평로군 유후를 칭하며 세력을 잡았다. 한때 황소의 편에 섰으나, 당 조정의 설득으로 다시 복귀하여 황소 토벌에 큰 공을 세워 정식 절도사에 임명되었다. 889년 사망 후, 그의 아들 왕사범이 뒤를 이어 평로군 절도사가 되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880

[평로군 대장으로 활동]

평로군 절도사 안사유 휘하에서 대장으로 복무하며 군사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출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880년경 평로군 번진의 본거지인 청주 출신으로, 당시 평로군 절도사 안사유 휘하의 대장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882

[당 조정으로 복귀 및 황소 토벌 참여]

황소 토벌군 총지휘관 왕탁의 설득으로 황소 세력을 이탈하여 당 조정 측으로 돌아섰고, 자신의 군대를 파견하고 자신도 종군하며 토벌에 참여했습니다.

각지 군벌들이 황소 토벌에 집결했으나 평로군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총지휘관 재상 왕탁은 간의대부 장준을 보내 왕경무를 평로군 유후로 임명한다는 조서로 설득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장준의 꾸짖음과 장병들의 설득에 결국 당 조정의 유후 직책을 수락하고, 황소 토벌군에 가세하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서부 전선으로 파견하고 자신도 장준을 따라 종군했습니다.

[평로군 유후 자칭]

농민 봉기 진압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 그는 상관인 평로군 절도사 안사유를 추방하고 스스로 평로군 유후를 칭하며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882년, 청주와 체주 일대에서 농민 봉기가 발생하자 안사유의 명을 받아 봉기군을 진압했습니다. 임무를 마치고 청주로 복귀한 그는 안사유를 추방하고 스스로 유후를 자칭하며 평로군의 지휘권을 탈취했습니다.

[평로군 절도사 임명]

황소 토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식으로 절도사에 임명되었으며, 장안 탈환 후에는 동중서문하평장사 겸 검교태위의 고위직을 하사받았습니다.

황소 토벌군 합류 후 왕탁은 희종의 명의로 왕경무를 정식으로 평로군 절도사에 임명했습니다. 황소 토벌군이 장안을 탈환한 후, 그는 그 전공으로 동중서문하평장사 겸 검교태위의 직위를 하사받았습니다.

[황소로부터 관직 수여]

당시 당나라 조정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황소에게 관직과 작위를 요구하여 이를 받아내며 황소의 편에 섰습니다.

평로군 유후를 자칭한 이 무렵, 그는 황소의 난이 한창인 가운데 당나라 희종 치하의 조정에 대한 충성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반란군 수장 황소에게 관직과 작위를 요구하여 받아내며 사실상 황소의 세력에 합류했습니다.

889

[사망]

평로군 절도사로 통솔하던 중 889년에 사망했습니다.

889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맏아들 왕사범이 16세의 나이로 평로군 장병들에 의해 유후로 추대되어 아버지의 지위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

890

[아들 왕사범의 후계 계승]

사망 후 아들 왕사범이 평로군 유후가 되었으나, 부하 장수 장섬이 반발하자 왕사범이 그를 격파하고 살해하여 아버지의 지위를 완전히 계승했습니다.

왕경무가 사망한 후 그의 맏아들 왕사범이 평로군 장병들에 의해 유후로 추대되었습니다. 하지만 부하 장수였던 체주자사 장섬은 이를 거부했고, 조정에서는 최안잠을 평로군 절도사에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890년, 왕사범은 장섬과 그의 맹우 노홍을 격파하고 살해했으며, 최안잠은 장안으로 도망쳤습니다. 결국 조정은 왕사범을 정식 평로군 절도사에 임명하며 왕경무 가문의 권력을 인정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