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 (골프 선수)
골프 선수, 국가대표
최근 수정 시각 : 2026-01-19- 14:00:17
안병훈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를 상징하는 '핑퐁 커플' 안재형과 자오즈민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우월한 유전자를 이어받아 세계 골프계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선수입니다. 2009년 만 17세의 나이로 아마추어 골프 최고의 권위인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유럽 투어 신인왕을 거쳐 PGA 투어의 주역으로 성장했으며, 투어 카드 상실이라는 시련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복귀에 성공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정교한 아이언 샷과 강력한 비거리를 바탕으로 2024년 고국에서 열린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는, 현재 한국 남자 골프의 튼튼한 버팀목이자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991
[스포츠 명문가의 탄생]
대한민국 서울에서 한중 탁구 스타 커플인 안재형과 자오즈민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모 모두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독보적인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날 때부터 체육계의 큰 기대를 받았습니다. 그의 탄생은 훗날 골프 선수로서 대성할 수 있는 강력한 신체적, 정신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안재형은 1988 서울 올림픽 탁구 동메달리스트이며, 어머니 자오즈민은 중국의 탁구 영웅이자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입니다.
국경을 초월한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며 어릴 때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부모님은 그가 탁구가 아닌 다른 운동을 선택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98
[골프 채를 처음 잡다]
초등학교 시절 골프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처음 골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탁구와는 다른 정적인 듯하면서도 폭발적인 골프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습니다. 이때부터 부모님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골프 선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집중력과 스윙 스피드를 보여주어 주변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자신의 탁구 노하우를 접목하여 멘탈 트레이닝을 병행시켰습니다.
방과 후와 주말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연습에 매진하며 기초를 탄탄히 닦았습니다.
2005
[미국 골프 유학 결단]
더 체계적인 훈련과 선진 골프 시스템을 경험하기 위해 미국 플로리다주로 골프 유학을 떠났습니다. 낯선 환경에서의 외로운 생활이었으나 오직 골프 실력 향상을 위해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이 시기의 유학 경험은 그가 글로벌 감각을 익히고 영어에 능숙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데이비드 레드베터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며 스윙의 정교함을 다듬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유망주들과 경쟁하며 실전 감각을 익히고 체력을 증진시켰습니다.
아버지 안재형이 유학 생활에 동행하며 아들의 훈련과 생활 전반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했습니다.
2009
[US 아마추어 최연소 우승]
미국 오클라호마주 서던 힐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제109회 US 아마추어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만 17세 11개월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 골프계를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대니 리가 가지고 있던 종전 기록을 경신하며 '괴물 아마추어'의 등장을 알렸습니다.
결승전에서 벤 마틴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7&5(5홀 남기고 7홀 차 승리)로 완승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이듬해 마스터스, US 오픈, 브리티시 오픈(디 오픈) 출전권을 동시에 획득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부모님이 시상식에 참석하여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며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2010
[마스터스 첫 출전]
US 아마추어 챔피언 자격으로 '꿈의 무대'인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처음으로 등판했습니다. 세계 최정상급 프로 선수들과 같은 무대에서 경쟁하며 귀중한 실전 경험을 쌓았습니다. 아마추어임에도 불구하고 대담한 플레이로 갤러리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까다로운 코스를 경험하며 프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습니다.
타이거 우즈 등 전설적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직접 지켜보며 자신의 보완점을 찾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비록 컷 탈락을 경험했으나 메이저 대회의 중압감을 이겨내는 법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US 오픈 참가 및 도전]
메이저 대회 중 하나인 US 오픈에 참가하여 세계적인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고난도의 코스 세팅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아마추어답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연속된 메이저 출전을 통해 프로 전향을 위한 준비 과정을 착실히 밟았습니다.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에서 열린 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실력을 겨루었습니다.
매 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경기에 임하며 많은 미국 골프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습니다.
메이저 대회의 엄격한 규정과 분위기에 적응하며 내적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디 오픈 챔피언십 경험]
영국에서 열린 '디 오픈 챔피언십'에 출전하여 링크스 코스의 독특한 환경을 경험했습니다. 강한 바람과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다양한 샷을 구사하며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세계 3대 메이저 대회를 아마추어 신분으로 모두 경험하는 대기록을 완성했습니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열린 역사적인 대회에 참여하여 골프의 전통을 몸소 느꼈습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한 창의적인 샷 메이킹의 중요성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얻은 다양한 코스 공략 경험은 훗날 유럽 투어에서 활약하는 결정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2011
[프로 전향 및 챌린지 투어 시작]
아마추어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식으로 프로 데뷔를 선언했습니다. 곧바로 미국이 아닌 유럽의 2부 투어인 챌린지 투어부터 바닥부터 시작하는 험난한 길을 택했습니다. 큰 무대에 바로 뛰어들기보다 실력을 차근차근 쌓겠다는 신중한 행보였습니다.
유럽 각지를 돌며 매주 다른 잔디와 코스 환경에 적응하는 혹독한 프로 적응기를 보냈습니다.
상위 투어로 올라가기 위해 좁은 문을 두드리는 과정에서 인내심과 끈기를 길렀습니다.
초기에는 상금 순위 유지를 걱정할 정도로 고전했으나 점차 프로 무대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013
[유럽 챌린지 투어 정착]
유럽 챌린지 투어에서 꾸준한 성적을 내며 투어의 강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러 차례 톱 10에 진입하며 첫 승에 대한 기대를 높였습니다. 환경에 완벽히 적응하며 강력한 샷감을 뽐내기 시작했습니다.
시즌 내내 기복 없는 성적을 유지하며 자신의 실력이 프로 최상위권에 근접했음을 증명했습니다.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 비거리가 긴 파워 히터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유럽 투어의 독특한 문화와 매너를 익히며 매너 있는 프로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2014
[프로 데뷔 첫 승 달성]
유럽 챌린지 투어인 '롤렉스 트로피'에서 프로 무대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결실로, 시니어 투어 승격의 발판을 확실히 마련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더 큰 무대로 나아갈 동력을 얻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역전 우승을 일궈냈습니다.
이 우승으로 챌린지 투어 상금 순위 상위권에 올라 다음 시즌 유러피언 투어 카드를 확보했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의 첫 우승 소식에 격려를 보내며 더 높은 곳을 향한 도전을 응원했습니다.
2015
[유럽 투어 메이저 우승]
유럽 프로 골프 투어의 '플래그십' 대회인 BMW PGA 챔피언십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했습니다. 잉글랜드 웬트워스 클럽에서 열린 이 권위 있는 대회에서 대회 레코드를 작성하며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이 대회 우승자가 되는 역사를 썼습니다.
최종 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하여 2위 그룹을 6타 차로 여유 있게 따돌렸습니다.
이 우승 한 번으로 상금 10억 원 이상을 획득하며 세계 랭킹이 100위권 밖에서 50위권으로 급상승했습니다.
유럽 언론은 그를 '새로운 거물급 선수의 등장'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신한동해오픈 고국 팬과의 만남]
유럽 투어 챔피언의 자격으로 한국에서 열린 제31회 신한동해오픈에 참가했습니다. 고국 팬들 앞에서 한층 성숙해진 기량과 화려한 샷을 선보이며 큰 응원을 받았습니다.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고국 무대 정상에 올랐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 접전 끝에 우승을 확정 지으며 국내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우승 상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등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적으로도 훌륭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대회 우승으로 국내 매니지먼트사와의 협력이 강화되고 국내 인지도가 대폭 상승했습니다.
[유럽 투어 신인왕 수상]
2015년 유럽 투어(현 DP 월드 투어)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신인에게 주는 '헨리 코튼 경 상(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한국 선수 최초의 유럽 투어 신인왕이라는 전무후무한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시즌 내내 보여준 꾸준함과 메이저 우승의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였습니다.
시상식에서 쟁쟁한 유럽 선수들을 제치고 트로피를 차지하며 아시아 골프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시즌 상금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되어 유럽 무대의 명실상부한 강자로 공인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은 그가 곧 PGA 투어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쏟아냈습니다.
2016
[PGA 투어 취리히 클래식 준우승]
PGA 투어 대회인 취리히 클래식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사투 끝에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브라이언 스튜어드와 접전을 벌이며 첫 승의 문턱까지 갔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PGA 무대에서도 우승권 실력을 갖췄음을 전 세계에 알린 경기였습니다.
폭우로 인해 일정이 지연되는 악조건 속에서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준우승으로 막대한 상금을 획득하고 PGA 투어 시드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미국 현지 갤러리들은 그의 공격적인 플레이와 차분한 성격에 매료되었습니다.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 출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에 대한민국 골프 국가대표로 참가했습니다.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골프 무대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습니다. 부모님의 뒤를 이어 올림픽 패밀리로서 가문의 명예를 높였습니다.
대회 기간 동안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메달 획득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메달권 진입에는 실패했으나 국가를 대표해 뛴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이 경험은 그가 개인적인 승부사에서 국가를 생각하는 리더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PGA 투어 정식 카드 획득]
유럽 투어의 성과와 PGA 투어 초청 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6-17 시즌 PGA 투어 정식 카드를 획득했습니다. 세계 골퍼들의 최종 꿈인 미국 무대에 당당히 입성했습니다. 안정적인 시드권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비회원 자격으로 획득한 상금과 포인트가 충분하여 이례적으로 빠르게 시드를 받았습니다.
PGA 투어의 치열한 경쟁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체력 훈련을 한층 강화했습니다.
그의 PGA 진출은 한국 남자 골프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7
[피닉스 오픈 단독 4위]
PGA 투어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에서 최종 4위를 기록하며 시즌 첫 톱 10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수많은 관중의 함성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샷을 선보여 미국 팬들의 환호를 받았습니다. 투어 연착륙을 알리는 성공적인 결과였습니다.
마지막 라운드 한때 공동 선두까지 오르며 우승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퍼팅 능력의 향상을 확인하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시즌 초반의 안정적인 성적은 그가 투어 순위권에 머무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18
[메모리얼 토너먼트 준우승]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하는 권위 있는 대회인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연장전 끝에 준우승했습니다. 브라이슨 디섐보와의 치열한 승부 끝에 간발의 차로 승리를 놓쳤습니다. 비록 우승은 아니었으나 메이저급 대회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입증했습니다.
최종일 훌륭한 샷 이글과 버디 행진을 벌이며 갤러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 성적으로 페덱스컵 포인트 순위를 크게 끌어올려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자신의 성장에 만족한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결혼을 통한 가정 형성]
오랜 기간 교제해 온 연인 최희재 씨와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 가정을 꾸렸습니다. 안정적인 가정 환경은 그가 투어 생활에만 전념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심리적인 안정을 찾게 된 중요한 해였습니다.
결혼식에는 동료 골프 선수들과 양가 친지들이 대거 참석하여 축하했습니다.
아내의 헌신적인 내조 덕분에 잦은 이동이 필요한 투어 생활의 피로를 덜 수 있었습니다.
결혼 후 더 책임감 있는 플레이를 보여주며 성적 유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19
[윈덤 챔피언십 3위 기록]
PGA 투어 정규 시즌 마지막 대회인 윈덤 챔피언십에서 단독 3위에 올랐습니다. 시즌 내내 기다렸던 우승은 아니었으나 최상위권 성적을 내며 건재함을 과시했습니다. 이 성적으로 페덱스컵 랭킹을 상위권으로 유지하며 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3라운드까지 선두를 유지하며 생애 첫 PGA 우승의 꿈을 키웠으나 마지막 날 타수를 줄이지 못했습니다.
많은 한국 팬이 TV 중계를 통해 그의 첫 승을 응원했으나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 대회를 통해 퍼트 감각을 완전히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프레지던츠컵 인터내셔널 팀 선발]
미국과 인터내셔널 팀의 대항전인 프레지던츠컵에 인터내셔널 팀의 일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한 팀이 되어 대결했습니다.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국제적인 인지도를 한 단계 더 높였습니다.
어니 엘스 단장의 신뢰 속에 다양한 파트너들과 호흡을 맞추며 귀중한 승점을 따냈습니다.
대항전 특유의 긴장감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연기를 펼쳐 팀원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한국 남자 골프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린 또 하나의 상징적인 활동이었습니다.
2020
[첫아들 안선우 탄생]
첫아들 선우(미국명 스탠리)를 얻으며 아버지가 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자녀의 탄생은 그에게 운동 선수로서 새로운 동기부여와 책임감을 부여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아들의 태명은 부모님의 성적 영광을 기리기 위해 특별한 의미를 담아 지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투어 생활 중에도 정서적인 여유를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훗날 아들이 자신처럼 스포츠를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육아에 전념하기도 했습니다.
2021
[투어 카드 상실의 시련]
2020-21 시즌 성적 부진으로 인해 페덱스컵 랭킹 125위 밖으로 밀려나며 PGA 투어 카드를 잃었습니다. 수년간 지켜온 주무대에서 내려오게 된 선수 인생 최대의 위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하부 투어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퍼팅 난조와 샷의 기복이 겹치며 힘든 한 해를 보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팬들은 에이스의 몰락을 걱정했으나 그는 묵묵히 훈련장에 나가 스윙을 점검했습니다.
이 시기의 고통은 훗날 그가 더 강력한 모습으로 복귀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022
[콘페리 투어 우승 및 부활]
PGA 하부 투어인 콘페리 투어 '리콤 선코스트 클래식'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투어 카드 상실 후 6개월 만에 거둔 승리로, PGA 복귀에 대한 희망을 쏘아 올렸습니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증명했습니다.
최종 라운드에서 침착하게 타수를 줄이며 경쟁자들을 따돌리고 우승컵을 거머쥐었습니다.
이 우승으로 PGA 투어 복귀를 위한 점수를 대거 획득하며 사실상 복귀를 확정 지었습니다.
시상식에서 지난 1년의 고생을 떠올리며 밝게 웃는 모습이 많은 팬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PGA 투어 시드 탈환]
콘페리 투어 시즌 성적 상위권에 오르며 한 시즌 만에 PGA 투어 정식 시드를 다시 확보했습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선 드라마틱한 복귀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이제는 더 단단해진 멘탈로 미국 무대 정상을 노리게 되었습니다.
시즌 내내 콘페리 투어에서 상위권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기량을 입증했습니다.
다시 얻은 투어 카드의 소중함을 알기에 훈련량을 두 배로 늘리며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시련을 겪은 그가 이전보다 훨씬 성숙한 골프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023
[윈덤 챔피언십 공동 2위]
PGA 투어 복귀 첫 시즌의 막바지인 윈덤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에 오르며 화려한 복귀 신고를 했습니다. 우승컵을 간발의 차로 놓쳤으나 자신의 최고 성적을 경신하며 톱 클래스임을 입증했습니다. 투어 복귀 후 가장 빛나는 성과를 거둔 대회였습니다.
정교한 아이언 샷과 안정된 퍼팅으로 갤러리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이 성적으로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진출을 조기에 확정 짓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의 성공적인 복귀와 성장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냈습니다.
2024
[소니 오픈 연장전 준우승]
2024년 시즌 초반 하와이에서 열린 소니 오픈에서 연장전 끝에 아쉽게 준우승했습니다. 그레이슨 머레이와의 치열한 사투 끝에 우승을 내주었으나 시즌 내내 돌풍을 예고하는 활약이었습니다. 30대에 접어들어 더욱 무르익은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경기를 주도했습니다.
비록 패했으나 세계 골프 팬들에게 안병훈의 저력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대회 이후 세계 랭킹이 급상승하며 한국 남자 골프의 1인자로 부상했습니다.
[마스터스 공동 16위 기록]
오랜만에 출전한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개인 통산 최고 성적인 공동 16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과는 다른 노련함으로 오거스타의 험난한 코스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세계적인 강호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대회 기간 내내 안정적인 타수 관리로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환상적인 칩인 버디를 선보여 중계 화면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성적을 통해 메이저 대회에서도 충분히 우승 경쟁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파리 올림픽 국가대표 출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에 다시 한번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참가했습니다. 리우에 이어 두 번째 올림픽 무대를 밟으며 국가의 명예를 위해 스윙했습니다. 어머니의 고향인 아시아 대륙 밖에서의 도전이었으나 최선을 다한 경기였습니다.
전 세계 수많은 팬의 응원 속에 성실하게 라운드를 마무리했습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올림픽 정신을 실천하며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대회 후 그는 "태극마크는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한다"는 소감을 남겨 감동을 주었습니다.
[제네시스 챔피언십 드라마틱 우승]
인천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코리아에서 열린 제네시스 챔피언십에서 김주형과 연장 접전 끝에 우승했습니다. 9년 만에 고국 팬들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DP 월드 투어와 KPGA 투어가 공동 주관한 큰 대회에서 거둔 쾌거였습니다.
최종 라운드 마지막 홀 버디로 연장전에 합류한 뒤, 노련한 어프로치 샷으로 승부를 결정지었습니다.
우승 후 할머니를 껴안고 오열하는 모습이 중계되어 전국적인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이 우승으로 2025년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 출전권 등 다양한 혜택을 확보하며 정점에 올랐습니다.
[세계 랭킹 20위권 안착]
시즌 내내 훌륭한 성적을 바탕으로 세계 랭킹을 20위권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한국 남자 골퍼 중 독보적인 순위를 기록하며 국제적인 위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세계 골프 투어의 중심 인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한 해였습니다.
꾸준한 성적 유지는 그의 철저한 자기 관리와 훈련의 결과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각종 투어 기록지에서 드라이버 비거리와 그린 적중률 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차기 시즌 메이저 우승에 대한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한 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2025
[제2의 전성기 선언]
2025년 새해를 맞이하여 PGA 투어 우승과 메이저 챔피언 등극을 목표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즌의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해 비시즌 동안 혹독한 체력 훈련을 소화했습니다. 한국 골프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습니다.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요가와 명상을 통해 정신적인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투어 일정을 소화하며 매 경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며 전 세계 골프 팬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