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효황후
황후, 황족, 역사적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13:56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이자 한국사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국권 피탈의 아픔 속에서 국새를 지키려 했고, 한국 전쟁 중에는 궁궐을 수호하며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해방 후 평민으로 전락했으나, 불교에 귀의하고 창덕궁으로 돌아와 여생을 보낸 그녀는 당당함과 기품을 잃지 않은 인물로 기억됩니다. 평생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지성인이기도 합니다.
1894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 탄생]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경기도 양평 외가에서 해풍부원군 윤택영과 기계 유씨의 장녀로 태어났다.
1894년 9월 19일(음력 8월 20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외가에서 해풍부원군 윤택영과 경흥부부인 기계 유씨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그녀는 훗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이자 한국사의 마지막 황후가 된다.
1907
1904년 황태자비 순명효황후 민씨가 사망한 후, 1907년 1월 24일 12세의 어린 나이로 황태자비에 책봉되었다. 이때 아버지 윤택영과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 거액의 뇌물이 오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황태자비 책봉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군인 황태자 순종이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 1907년 7월 23일 그녀 또한 대한제국의 황후로 책봉되어 한국사의 마지막 황후가 되었다.
1910
[국권 피탈, 국새를 지키려 노력하다]
경술국치 당시 어전 회의를 엿듣던 순정효황후는 친일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 날인을 강요하자 국새를 치마 속에 감추고 지키려 했으나, 결국 백부 윤덕영에게 빼앗겼다.
경술국치 당시 순정효황후는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고 있다가 친일 성향의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의 날인을 강요하자, 국새(國璽)를 자신의 치마 속에 감추고 내주지 않아 마지막까지 국권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백부 윤덕영에게 강제로 빼앗겼고, 이로 인해 대한제국의 국권은 일본 제국에 피탈되어 멸망을 맞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진다. 이 일화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순종의 지위가 이왕으로 격하되면서 그녀도 이왕비가 되어 창덕궁 대조전에서 머물렀다.
1926
[부군 순종의 서거와 이왕대비로의 삶]
부군 순종이 사망하자, 순정효황후는 이왕대비로 불리며 창덕궁 내 낙선재로 거처를 옮겼다.
1926년 4월, 부군인 대한제국 순종이 사망하자 순정효황후는 대비(大妃)로 불리며 창덕궁 낙선재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이후 해방까지 이왕비, 이왕대비로 칭해지며 창덕궁에 머물렀다.
1947
해방 이후 1947년 신적강하 조치에 따라 이왕대비에서 평민으로 신분이 전락하였다. 이는 대한제국 황실의 해체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50
[한국 전쟁 중 궁궐을 지킨 여걸 황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창덕궁에 남아 황실을 지키고자 했으며, 궁궐에 들이닥친 인민군을 크게 호통쳐 쫓아내는 등 두려움을 모르는 여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순정효황후는 피난하지 않고 창덕궁에 남아 황실을 지키고자 했다. 궁궐에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조선인민군을 당시 5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크게 호통을 쳐서 내보냈다는 일화는 그녀가 얼마나 두려움을 모르는 여걸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듬해인 1951년에는 전세가 급박해지자 미군에 의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1951
[미군에 의해 피난길에 오르다]
한국 전쟁의 전세가 급박해지자 미군에 의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으며, 궁핍한 생활을 전전하였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창덕궁을 지키려 했으나, 이듬해인 1951년 대한민국의 전세가 급박해지자 미군에 의해 피난길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궁핍한 생활을 전전해야 했다.
1953
[환궁 좌절과 정릉 수인제로의 거처]
한국휴전협정 후 환궁을 시도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방해로 좌절되었고, 정릉 수인제로 거처를 옮겼다.
1953년 한국휴전협정으로 전쟁이 중단되자 바로 창덕궁으로 환궁하려 하였으나, 제1공화국 이승만 대통령이 순정효황후에 대한 민심을 두려워하여 환궁을 방해하였다. 이 때문에 정릉의 수인제(修仁齊)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1959
정릉 수인제로 거처를 옮긴 후, 1959년에는 비구니로 불교에 귀의하여 '대지월'(大地月)이라는 법명을 얻고 신앙에 의지하여 여생을 보냈다.
1960
[창덕궁 낙선재로의 환궁]
전 구황실사무총장 오재경의 노력으로 마침내 창덕궁 환궁에 성공, 낙선재에서 덕혜옹주 일가와 함께 지냈다.
1960년, 전 구황실사무총장 오재경의 노력 덕분에 순정효황후는 마침내 창덕궁으로 환궁에 성공하였다. 이후 일본에서 귀국한 덕혜옹주 및 의민태자 일가와 함께 창덕궁 낙선재에서 지내며 독서와 피아노 연주로 소일하였다.
1965
[마지막 유서를 남기다]
을사년(1965년) 춘절, 남은 여생을 불교에 귀의하겠다는 내용과 장례 절차, 재산 처리 등을 담은 유서를 작성했다.
을사년(1965년) 춘절, 순정효황후는 '남은 여생을 오직 불존에 귀의하여 세월을 보내는 중 뜻하지 않던 6.25 동란을 당하여 한층 더 세상이 허망함을 느끼었던 중 내 나이 칠십여세 되어오니 불(佛) 세계밖에 갈 곳 없어 내 뜻을 표하노니'로 시작하는 유서를 작성했다. 유서에는 생전 재산이 없어 못했던 일들에 대한 아쉬움과 함께 사후 장례를 불교식으로 간소하게 치르고, 염불 소리 외에 조용히 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1966
[대한제국 마지막 황후의 서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창덕궁 낙선재 석복헌에서 향년 73세로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1966년 2월 3일, 순정효황후는 창덕궁의 낙선재 석복헌에서 향년 7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전해진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온화한 성정과 기품을 잃지 않았으며, 평생 영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타임지를 읽어낼 정도였다고 한다.
[유릉에 부군 순종과 합장되다]
부군 순종과 함께 경기도 남양주 유릉에 합장되어 영면에 들었다. 말년 애용하던 토스터와 커피포트가 부장품으로 함께 묻혔다.
1966년 2월 13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위치한 유릉(裕陵)에 부군인 순종과 합장되어 영면에 들었다. 그녀가 말년에 애용하던 토스터와 커피 포트가 부장품으로 관에 함께 넣어져 마지막까지 함께했다. 사시(私諡)로 '헌의자인순정효황후'가 올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