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분 (손견 조카)

정치가, 군인, 손씨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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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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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군인, 손씨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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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견의 조카로서, 숙부의 죽음 후 초기 동오 세력의 혼란 속에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원술 휘하에서 활약했으나, 그의 참칭을 거부하고 손책과 함께 강동을 평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예장 태수로서 11년간 강동의 안정을 이끌었으며, 혼인 동맹을 통해 조조와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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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손견 거병에 합류]

일찍 부모를 잃고 아우 손보를 직접 돌보며 독우와 현장 등의 관직을 지내다, 숙부 손견이 거병하자 모든 관직을 버리고 그를 따르며 초기 세력 형성의 일원이 되었다.

손분은 어린 시절 부모를 일찍 여의고 아직 젖먹이였던 아우 손보를 직접 양육하며 두터운 형제애를 보여주었다. 이후 군의 독우와 현장 등 지방 관직을 역임하다가, 숙부 손견이 군사를 일으키자 기존의 관직을 모두 버리고 손견의 휘하에 들어가 초기 손씨 세력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그의 합류는 손씨 가문의 기반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

[손견의 죽음과 원술에게 의탁]

숙부 손견이 유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자, 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손견의 영구를 무사히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이후 당대 유력 세력인 원술에게 의탁하여 세력을 보존했다.

초평 3년(192년), 숙부 손견이 유표와의 전투 중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손분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침착하게 손견의 남은 무리를 이끌고 그의 영구를 고향으로 안전하게 운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 그는 손씨 세력의 보존을 위해 강력한 군벌인 원술에게 의탁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193

[원술 휘하에서 주앙 격파 및 관직 제수]

원술의 명령으로 원소가 임명한 구강태수 주앙을 음릉에서 격파하는 전공을 세웠고, 이에 원술은 그를 옛 손견이 지낸 예주자사로 삼았으며, 이후 단양도위로 전임시키고 정로장군을 대행하며 산월 토벌을 지휘하게 했다.

원술에게 의탁한 다음 해(193년), 손분은 원술의 명을 받아 원소가 임명한 구강태수 주앙을 음릉에서 성공적으로 격파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원술은 손분을 표를 올려 숙부 손견이 과거에 지냈던 예주자사로 삼았으며, 이후 단양도위로 전임시켜 정로장군을 대행하게 하며 산월족 토벌을 이끌도록 했다. 이는 그가 원술 진영에서 중요한 군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194

[유요와의 강동 쟁탈전]

유요를 곡아에 받아들였으나, 원술이 강동을 침략하자 유요가 반기를 들며 손분과 오경을 쫓아냈다. 이후 손분은 원술의 명을 받아 유요의 장수들을 1년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며 전선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원술의 야심으로 강동 지역에 대한 침략이 시작되자, 유요는 원술에게 반기를 들었고, 손분과 오경은 유요에 의해 곡아에서 쫓겨나 역양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후 원술의 지시로 손분과 오경은 유요가 파견한 횡강진의 번능, 우미와 당리구의 장영을 공격했으나, 1년 동안 이들을 함락시키지 못하며 전선이 교착 상태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강동 지역의 긴장 상태는 더욱 고조되었다.

[손책과 연합하여 유요 격파]

교착 상태에 빠졌던 전선에 원군으로 파견된 손책과 힘을 합쳐 유요의 장수들을 마침내 무찌르고, 유요를 예장군으로 쫓아내며 강동 평정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흥평 원년(194년) 12월, 오랫동안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유요 세력과의 전투에서 원군으로 파견된 손책과 연합하게 되었다. 손분은 손책과 힘을 합쳐 번능, 우미, 장영 등 유요의 주요 장수들을 격파하고 유요를 예장군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이 승리는 손책이 강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손분 또한 손책 세력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

[원술의 참칭 거부와 손책에 귀순]

황제를 참칭하여 중나라를 세운 원술이 구강태수(실제로는 회남윤)를 제수했으나, 이에 취임하지 않고 처자까지 버려두고 손책이 있는 강남으로 향하며 원술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손책에게 귀순했다.

황제를 자칭하며 중나라를 건국한 원술은 손분에게 구강태수(실제로는 회남윤) 직위를 제수했다. 그러나 손분은 이러한 원술의 행동에 반대하며 관직에 취임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처자식까지 버려두고 손책이 기반을 다지고 있던 강남으로 건너가 손책에게 귀순하는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손분은 원술과의 정치적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손책 세력의 핵심적인 일원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199

[예장태수 임명]

손책을 따라 유훈과 황조 토벌에 참전했고, 이후 예장군에서 화흠을 굴복시킨 손책의 천거로 예장 태수로 임명되며 강동의 주요 지역을 다스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손책에게 귀순한 후, 손분은 손책을 따라 원술의 잔존 세력을 규합한 여강태수 유훈과 그를 지원하려던 강하태수 황조를 토벌하는 데 참여했다. 이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장군에서 여전히 세력을 유지하던 유요가 병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손책은 예장태수 화흠을 굴복시켰다. 건안 4년(199년), 손책이 올린 표문을 통해 손분은 예장태수로 정식 임명되었고, 이로써 강동의 중요한 거점 중 하나인 예장군을 다스리는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다.

200

[도정후 봉작 및 혼인 동맹]

이후 도정후에 봉해지는 영예를 얻었으며, 손책이 강동을 평정하자 조조와의 혼인 동맹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손분의 딸이 조조의 아들 조창에게 시집가는 등 손씨 세력의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되었다.

손분은 예장태수로 임명된 후, 도정후에 봉해지며 추가적인 지위를 얻었다. 손책이 강동을 성공적으로 평정하자, 북방에서 원소와 대치하던 조조는 손책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혼인 동맹을 제안했다. 이 동맹의 일환으로 손분의 딸이 조조의 아들 조창에게 시집가게 되었는데, 이는 손분이 손씨 세력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손씨와 조씨 가문 간의 정치적 유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208

[정로장군 임명 및 조조 견제]

건안 13년 정로장군에 임명되어 예장태수를 겸했고, 조조가 형주를 공격하여 유종의 항복을 받자 조조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껴 아들을 볼모로 바치려 했으나, 주치의 설득으로 이를 철회했다.

건안 13년(208년), 손분은 사자 유은의 표문을 통해 정로장군에 임명되었고, 기존의 예장태수 직위를 겸임하게 되었다. 그해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형주를 공격하여 유종의 항복을 받아내자, 강동 지역은 조조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손분은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아들을 조조에게 볼모로 보내려 했으나, 동오의 중신인 주치의 강력한 설득에 의해 이 결정을 철회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강동 세력이 조조의 압도적인 힘에 대해 느끼던 불안감을 보여준다.

210

[사망]

예장태수로 11년간 재임한 후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손린이 뒤를 이어 가업을 이어나갔다. 그의 죽음은 초기 동오 세력의 중요한 인물 한 명의 퇴장을 의미했다.

손분은 예장태수로서 11년 동안 재직한 후 사망했다. 그의 사망 시점은 210년경으로 추정되며, 그의 아들 손린이 작위를 계승하며 가문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손분은 손견의 조카이자 손책과 손권 초기 시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로서, 그의 죽음은 동오 정권의 초기 핵심 세력이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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