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구이
한국 음식, 돼지고기 요리, 구이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10:29
삼겹살구이는 한국인의 '소울푸드'로 불리는 대표적인 돼지고기 요리입니다. 과거 '세겹살'로 불리다 '삼겹살'로 일반화되었고, 다양한 논란 속에서도 끊임없이 진화하며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한식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1970년대 후반 돈육수출 중단과 휴대용 가스 버너 보급을 기점으로 대중화되어, 이제는 '삼겹살 데이', '삼겹살 거리' 등 독특한 식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675
[일본 육식 금지령]
일본에서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 금지령이 내려져 육식 문화가 단절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의 식육 문화가 일본과 다른 경로를 걷는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일본은 불교를 국교로 삼은 덴무 천황의 지시로 육식을 제한하기 시작했으며, 에도 막부 시기에는 동물보호법령으로 동물의 살생을 법으로 제한했습니다. 이러한 엄격한 금육 문화는 메이지 유신 이후 1872년이 되어서야 해제됩니다.
1231
몽골은 1231년부터 1258년까지 고려를 여러 차례 침략했으며, 이 과정에서 몽골의 식문화가 고려에 영향을 주어 육식 문화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됩니다.
1417
[명나라 황제의 조선 사신 배려]
조선 태종 시기, 명나라 영락제가 조선 사신들을 배려하여 돼지고기 대신 소고기와 양고기를 대접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이는 당시 조선인들이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윤5월 8일 기록에 따르면, 영락제가 내관 구아에게 '조선인은 돼지 고기를 먹지 않으니 광록시로 하여금 쇠고기와 양고기를 공급토록 하라'고 말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는 당시 조선의 돼지고기 기피 문화를 반영합니다.
1481
[높았던 돼지고기 가격]
조선 성종 시기, 경기 관찰사 손순효가 돼지고기 값이 소의 두 배에 달한다며 소와 돼지고기를 섞어 제사상에 올릴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돼지 사육수가 적어 가격이 높았음을 보여줍니다.
성종실록 129권, 성종 12년 5월 4일 기록에서 손순효는 '지금 큰 소의 값이 포목 10필을 넘지 않는데, 돼지는 그 갑절이나 됩니다. 소 한마리를 돼지 네 마리에 준하게 하고, 섞어서 쓰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아뢰었습니다. 정육량으로 비교하면 실제로는 소고기보다 8배나 비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885
국내 재래 돼지는 완전 성숙해도 40kg을 넘기 힘들었기에, 비육율이 우수한 서양종 돼지를 도입하여 생산성 향상을 꾀했습니다.
1916
[인천 대형 도축장 개설]
인천 동구청 자리에 대형 도축장이 개설되면서 돼지 등뼈 등 부산물이 대량 공급되어 감자탕 같은 음식이 인천 부두 노동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천항에 외항선 출입이 늘고 육류 수요가 커지면서 대형 도축장이 들어섰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중 한우 수탈의 대체제로 양돈이 장려되던 시기와 맞물려 돼지고기 공급이 증가했음을 시사합니다.
1931
['세겹살' 문헌 최초 등장]
방신영 교수가 저술한 요리법 책 《조선요리제법》 개정증보판에 '세겹살(뱃바지) 배에 있는 돈육 중에 제일 맛이 있는 고기'라는 설명과 함께 '세겹살'이라는 단어가 최초로 등장했습니다.
1917년 초판이 인쇄된 이래 수차례 개정증보 출판된 이 책의 1931년 판에 처음으로 '세겹살'에 대한 소개가 나옵니다. 이후 1940년 홍선표의 <조선요리학> 등에도 세겹살이 언급됩니다.
1934
['세겹살' 언론 최초 보도]
동아일보 기사에 '육류의 좋고 그른 것을 분간해 내는 법'이라는 제목 하에 '도야지 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 뒤 넓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이 제일 맛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목덜미 살이 맛이 있다'고 소개되며 '세겹살'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최초로 등장했습니다.
당시 기사는 돼지고기의 부위별 맛을 설명하며 '세겹살'을 언급했고, 이는 근현대 들어 부분육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명칭이 생겨났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1959
['삼겹살' 언론 최초 등장]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1959년 1월 20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는 '세겹살'에서 '삼겹살'로 명칭이 변화하는 과도기를 보여줍니다.
경향신문 '저녁식사에 돼지고기와 무우볶음' 기사에서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삼겹살'은 국문법상 맞지 않는 표현이라는 논란이 있었지만, 점차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1960
[청주 삼겹살 시오야끼 유행]
1960년대부터 청주 지역에서 삼겹살 시오야끼(소금구이)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품질이 좋지 않아 잡내가 심했던 돼지고기를 소비하는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양돈 기술이 낙후되었던 당시, 품질 낮은 돼지사료와 거세되지 않은 숫돼지 사용으로 발생하는 잡내와 웅취를 없애고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달인 간장 소스를 사용했습니다. 청주 지역은 바다와 접하지 않은 내륙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해산물보다 육류 섭취가 발달했습니다.
[프로판 가스 보급과 외식 문화 변화]
프로판 가스가 보급되면서 식당에 가스 버너를 올려놓고 고기를 굽거나 탕을 끓이는 문화가 확산되었고, 돼지갈비와 양념구이 식당이 점차 늘어났습니다.
이전에는 숯이나 연탄불을 사용했으나 번거로웠습니다. 가스불 사용이 쉬워지면서 주방에서 미완성 음식을 내놓고 손님이 직접 조리하는 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육류 소비 증가와 다양한 돼지고기 요리의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1961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어수선한 시기를 거쳐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근로자들의 동물성 단백질 섭취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이에 발맞춰 도축 시설이 현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63
[사료관리법 제정 및 사료산업 발전]
'사료관리법'이 제정되면서 배합사료공장이 크게 늘어나 사료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축산 전업농이 증가했습니다.
사료산업의 발전은 양돈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이는 나중에 돼지고기 공급량 증가로 이어지는 기반이 됩니다.
1974
[독산동 도축장 신설]
육류 수요와 유통 증가에 따라 서울 독산동에 도축장이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도시의 육류 소비 증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독산동 도축장은 이후 폐쇄되었지만, 축산물 거래 시장은 현재까지 남아있어 신선한 육류와 부산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1978
[육류파동과 삼겹살 식문화 태동]
육류파동으로 대일 돈육수출이 전면 중단되면서 수출 물량이 내수로 공급되기 시작했고, 돼지고기 특유의 잡내가 사라진 고급육이 유통되며 삼겹살 소금구이 식문화가 태동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978년 육류파동은 정부의 돼지고기 수급 조절 실패가 원인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수출이 중단된 돼지고기가 국내 시장으로 풀리면서, 양념 없이 소금구이로 삼겹살을 즐기는 새로운 식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과거 돼지고기 특유의 웅취와 잡내 때문에 양념구이나 수육 형태로 주로 섭취했으나, 사육 기술 발전으로 잡내가 줄어들면서 소금구이처럼 양념을 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0
[휴대용 가스 버너 보급과 삼겹살 대중화]
휴대용 부탄 가스레인지가 본격적으로 판매되면서 '삼겹살' 메뉴가 식당가에 등장하고, 집이나 야외에서도 쉽게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게 되어 외식 메뉴로 급부상하며 대중화되었습니다.
한국후지카공업에서 '부루스타'라는 휴대용 가스 버너를 출시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설치 신고나 검사 없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누구나 삼겹살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전국적으로 삼겹살 열풍이 불었습니다.
어원 논란과 국문법상 오류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사용이 늘면서 '세겹살' 대신 '삼겹살'이라는 표현이 점차 보편화되었습니다. 이는 개성 상인들의 마케팅적 시도가 영향을 주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1990
[삼겹살, 법적 공인 명칭으로 확립]
정부(농림수산부 고시 제90-50호)에서 '부위별 차등가격제도'에 따른 관련 법규를 제정하며 '삼겹살'을 법적으로 공인된 부위 명칭으로 확립했습니다.
1991년에 시행된 부위별 차등가격제도를 위한 관련 법규가 1990년에 제정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용도별 판매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포장육 판매가 활성화되면서 부분육 유통에 대한 법적 기준이 필요해진 결과입니다.
1991
[국어사전에 '삼겹살' 등재]
한국어사전 편찬회에서 발간한 국어대사전에 '삼겹살'이라는 단어가 표제어로 올라있던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일부 출처에서는 1994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91년 발간된 국어대사전에 이미 등재되어 있었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정확한 등재 시기를 알 수 없다는 공식 답변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1993
[백종원의 '대패삼겹살' 개발]
요리 연구가 백종원이 햄 써는 기계로 냉동 삼겹살을 얇게 썰어 '대패삼겹살'을 개발했고, 이는 1990년대 큰 인기를 끌며 삼겹살 메뉴의 다양화에 기여했습니다.
육절기 실수로 탄생한 대패삼겹살은 나무를 대패로 밀었을 때 나오는 대팻밥처럼 돌돌 말린 모양이 특징입니다. 푸짐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얻었으며, '대패 삼겹살'은 백종원이 상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Samgyeopsal' 옥스포드 사전에 등재]
영국의 권위 있는 옥스포드 영어사전(OED)에 한국 음식으로서 'Samgyeopsal'이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삼겹살이 세계적인 음식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옥스포드 영어사전은 'Samgyeopsal'을 'a Korean dish of thinly sliced pork belly, usually served raw to be cooked by the diner on a tabletop grill'이라고 설명하며 한국 음식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는 한류의 영향으로 해외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4
일부 자료에서 1994년을 등재 시기로 언급하고 있으나, 1991년 국어대사전에도 표제어로 올라있던 것으로 조사되기도 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돼지의 갈비에 붙어 있는 살.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고기'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1995
[제주 흑돼지 삼겹살 서울 진출]
돼지 껍데기를 제거하지 않은 제주 흑돼지 삼겹살이 서울로 진출하여 꼬들꼬들한 식감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이후 '오겹살'이라는 신조어 탄생의 배경이 됩니다.
영호남 등 남부지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돼지 껍데기를 제거하지 않고 유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수도권에서는 껍데기를 벗긴 삼겹살이 유통되었습니다. 제주 흑돼지의 성공은 상인들이 '오겹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마케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97
[IMF 경제위기 이후 국민 음식으로 정착]
IMF 경제위기 이후, 특별한 기술 없이 소자본으로 창업 가능한 삼겹살 전문점이 급증하며 삼겹살은 소주와 함께 한국인의 '국민 음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IMF 외환위기는 많은 퇴직자를 발생시켰고, 이들이 쉽게 창업할 수 있는 삼겹살 전문점을 열면서 삼겹살의 대중화와 식문화 정착에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1990년대 직장인 회식 메뉴 1순위였던 삼겹살은 이때 소울푸드가 되었습니다.
2000
['오겹살' 신조어 등장 및 홍보]
상인들에 의해 돼지 껍데기를 제거하지 않은 삼겹살을 지칭하는 '오겹살'이라는 신조어가 마케팅 차원에서 만들어져 적극적으로 홍보되기 시작했습니다.
오겹살은 부분육을 지칭하는 정식 용어는 아니며, 도축업계에서는 '미박 삼겹살' 또는 '탕박 삼겹살'로 불립니다. 논리적으로 다섯 겹이라는 의미에 문제가 없지만, 마케팅을 통해 차별화를 꾀한 용어입니다.
2003
['삼겹살 데이' 제정 및 시작]
경기도 파주시와 파주연천축협이 구제역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는 양돈 농가를 돕기 위해 숫자 '3'이 겹치는 3월 3일을 '삼겹살 데이(삼삼데이)'로 지정하고 대대적인 홍보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2000년과 2002년에 걸친 구제역 파동으로 돼지고기 판매량이 급감하자, 소비 촉진을 통해 양돈 농가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기념일이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매년 전국 유통업체들이 할인 판매 행사를 진행하며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2005
[서울시, '삼겹살 면접' 실시]
서울특별시가 계약직 공무원 채용 면접을 삼겹살과 소주를 곁들인 심층 면접으로 진행하여 '삼겹살 면접'이라는 이름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시청 별관 인근 식당에서 진행된 이 면접은 고기 굽는 냄새와 술잔이 오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으며, 신문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이는 삼겹살 문화가 한국 사회에서 갖는 상징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012
[청주 '삼겹살 거리' 조성]
충청북도 청주시 서문시장에 전국에서 유일한 '삼겹살 거리' 340m가 조성되었습니다. 침체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삼겹살을 테마로 특화된 거리를 만든 것입니다.
1998년 시외버스터미널 이전 등으로 쇠락하던 서문시장을 살리기 위해 지역 상인들이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춘천 닭갈비 골목을 벤치마킹하여 청주시의 지원을 받아 조성했습니다. 매년 3월 3일 삼겹살 축제를 진행하며 지역 특산품과 연계한 행사도 열고 있습니다.
2014
['지방의 역설' 출판과 저탄고지 대중화]
미국 저널리스트 니나 타이슐츠가 《The big fat surprise》(한국 번역명: 지방의 역설)을 출판하며 '저탄고지(LCHF) 식이요법'이 대중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탄고지 식이요법은 원래 소아 뇌전증 환자 치료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이 책을 통해 '지방을 더 많이 섭취할수록 건강해진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대중적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이후 한국에서도 삼겹살 소비 증가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016
[MBC '지방의 누명' 방영 및 저탄고지 유행]
MBC에서 '지방의 누명' 다큐멘터리를 방송하면서 저탄고지 식이요법이 한국에서 유행처럼 번졌고, 전국적으로 버터와 삼겹살 품귀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 방송 이후 저탄고지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고지방 식품인 삼겹살 소비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국내외 주류 의학계에서는 과도한 지방 섭취의 부작용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2017
[삼겹살 발암물질 억제 연구 결과 발표]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이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상추, 양파, 마늘 등과 함께 섭취하면 발암성 물질인 벤조[a]피렌의 체내 독성화를 60%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삼겹살 섭취의 건강상 이점을 제시하며, 건강하게 즐기는 방법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삼겹살과 함께 채소를 곁들이는 한국의 식문화의 중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도축 방식 변화 (탕박 도입)]
국내 도축장에서는 2017년 12월 이후부터 돼지 껍데기를 벗겨내는 박피(剝皮) 대신, 뜨거운 물에 담가 털만 제거하는 탕박(湯剝) 방식만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변화로 인해 모든 삼겹살이 사실상 껍데기가 있는 형태로 유통될 수 있게 되었으며, 유통업체가 발골 작업 중에 박피 여부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지방층이 얇은 삼겹살만 '오겹살'로 유통될 수 있어 '오겹살'은 고급육으로 취급됩니다.
2021
[청주시, '삼겹살 원조 도시' 주장]
청주시가 '청주 삼겹살 활성화 연구 용역' 결과를 토대로 청주가 '삼겹살 원조 도시'라고 주장하며 '청주 삼겹살'을 지역 대표 음식으로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청주시는 달인 간장 소스와 파절이를 내놓는 조리법이 1960~1970년대 청주에서 시작된 삼겹살 조리법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조선시대부터 청주가 돼지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 등을 근거로 내세우며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