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후한)

정치가, 후한 시대 인물,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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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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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후한 시대 인물, 삼국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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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한 말의 정치가이자 유비의 핵심 참모로 활약했습니다.- 유비가 익주를 점령하고 한중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유비가 한중왕으로 등극하는 데 중요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유비에게 큰 슬픔이었으며, 제갈량도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습니다.- 촉한 건국 과정에서 유비의 주요 정책 결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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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법정의 탄생]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인 법정(法正)이 태어났습니다. 자는 효직으로, 사례 부풍군 미현 사람입니다.

중국 후한 말의 정치가인 법정(法正)이 176년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자는 효직이며, 사례 부풍군 미현 사람으로 후한 남군 태수 법웅의 증손이자 선비 법진의 손자입니다.

205

[유장 휘하에서의 불우한 시절]

맹달과 함께 유장의 부하가 되었으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주변의 비방에 시달렸습니다.

법정은 맹달과 함께 유장의 부하로 있었지만, 당시 유장에게 중용되지 못했고 다른 이들에게 비방을 받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친구 장송과 함께 유장의 역량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211

[익주 이양 계획 모의]

장송과 함께 유비를 익주로 초청하여 유장의 익주를 유비에게 넘겨줄 계획을 은밀히 모의했습니다.

조조에게 푸대접을 받고 돌아온 장송이 유비와의 동맹을 유장에게 권하여 법정을 형주로 보내게 했습니다. 익주로 돌아온 법정은 장송에게 유비의 인물됨을 칭찬하고 유비를 끌어들여 익주를 넘겨줄 계획을 모의했습니다.

212

[유비의 익주 공격과 장송의 죽음]

유비가 양회와 고패를 죽이고 익주를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유비와 내통한 장송은 유장에게 처형당했습니다.

212년, 조조가 한중을 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장송은 불안해하는 유장을 움직여 유비를 익주로 불러들였습니다. 법정은 장송의 말에 따라 유비에게 유장을 죽이도록 권했으나 유비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유비가 양회와 고패를 죽이고 익주를 공격할 무렵 장송은 본심이 탄로나 유장에게 처형당했습니다. 유장군이 연패하고 제갈량, 장비 등이 유비를 돕는 등 유장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법정은 유장에게 항복을 권하는 글을 보냈으나 유장은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214

[유비의 익주 장악과 법정의 중용]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하면서 법정은 촉군태수와 양무장군을 겸하게 되었고, 유비에게 허정 발탁을 설득하여 성사시켰습니다.

214년 유장이 유비에게 항복한 후, 법정은 촉군태수가 되고 양무장군(揚武將軍)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유장의 부하였던 허정은 성도가 포위당했을 때 성벽을 넘어와 항복하려 했는데, 이 때문에 유비는 익주를 차지하고도 허정을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법정은 유비를 설득하여 허정을 발탁하도록 했습니다.

217

[한중 공격 제안 및 개시]

법정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유비가 한중을 공격하기 시작하며, 이는 삼국시대의 주요 전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17년, 법정은 유비를 설득하여 전략적 요충지인 한중을 공격하게 했습니다.

219

[정군산 전투와 하후연의 죽음]

한중 공방전 중 정군산 전투에서 황권의 계략으로 하후연이 격파되고 사망하는 주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중 공방전이 진행되던 중 정군산 전투에서 황권의 계략에 힘입어 조조군 장수 두호와 박호가 격파되고, 총대장 하후연이 전사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유비의 한중왕 등극과 법정의 최고 직위 임명]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고 한중왕으로 등극했으며, 법정은 그의 핵심 참모로서 상서령 겸 호군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유비가 한중 공방전에서 승리하여 한중을 차지한 후, 스스로 한중왕으로 등극했습니다. 이때 법정은 상서령(尙書令)과 호군장군(護軍將軍)을 겸하며 촉한의 주요 인사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220

[법정의 사망과 유비의 애도]

법정이 사망하자 유비는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며 익후라는 시호를 내리고 아들 법막을 관내후로 봉했습니다.

220년 법정이 죽자 유비는 법정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익후(翼侯)라는 시호를 내리고 아들 법막(法邈)을 관내후(關內侯)로 봉했습니다.

222

[제갈량의 법정 추모와 한탄]

유비가 육손에게 크게 패배하자, 제갈량은 만약 법정이 살아있었다면 유비의 잘못된 결정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의 부재를 한탄했습니다.

222년 유비가 이릉대전에서 육손에게 대패하자, 제갈량은 법정의 직설적인 화법과 다혈질적인 성격을 언급하며 '효직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주군을 막을 수 있었으리라'며 그의 부재를 크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이는 법정이 유비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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