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 (야구인)
야구 선수, 야구 해설가, 국가대표 선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08:58
박재홍은 '리틀 쿠바'라는 별명으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주목받은 대한민국 야구의 전설적인 외야수이자 현 해설위원입니다. 그는 KBO 리그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고 세 차례 달성한 유일한 선수이며, 200-200, 250-250, 300홈런 등 수많은 기록을 세운 호타준족의 상징입니다. 은퇴 후에도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1973
1973년 10월 2일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깊은 열정을 키워나갔습니다. 그의 성장은 훗날 한국 프로 야구에 큰 족적을 남길 기반이 되었습니다.
1992
199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연고 팀인 해태 타이거즈의 1차 지명을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연세대학교 사회체육학과에 진학하는 파격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93
1993년 버펄로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 대회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그는 '리틀 쿠바'라는 별명을 얻으며 주목받는 아마추어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94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 대회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선보이며 한국 야구의 미래를 짊어질 선수로 평가받았습니다.
1995
[후쿠오카 유니버시아드 은메달]
후쿠오카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제대회에서의 꾸준한 활약을 보였습니다.
1995년 후쿠오카에서 개최된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 대회에 다시 한번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단체전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내며 실력을 입증했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입단]
연세대학교 졸업 후 현대 유니콘스와 밀약을 맺고, 해태 타이거즈 입단을 거부한 뒤 최상덕 선수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졸업 당시, 연고 구단인 해태 타이거즈로 입단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와 밀약을 맺었습니다. 해태 입단을 거부한 후,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최상덕 선수와 지명권을 맞바꾸는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하게 됩니다.
1996
[KBO 최초 30-30 클럽 가입 및 신인왕 수상]
데뷔 첫 해 KBO 리그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고, 만장일치로 신인왕을 수상했습니다. 또한 홈런왕, 타점왕, 골든글러브까지 휩쓸며 한국 야구의 새 역사를 썼습니다.
현대 유니콘스 입단 첫 해인 1996년, 30개의 홈런과 36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는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압도적인 활약으로 투표단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올랐으며, 홈런왕과 타점왕까지 석권하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한국 야구계를 뒤흔들었습니다. 공수주를 겸비한 '호타준족'의 대명사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1996년 4월 13일, 숭의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 현대 유니콘스 소속으로 출전하며 대망의 KBO 리그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의 데뷔는 한국 야구계에 새로운 바람을 예고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997
1997년에도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리그 최고의 외야수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또한 KBO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에게 화려한 볼거리를 선사했습니다.
1998
[30-30 클럽 두 번째 달성 및 아시안 게임 금메달]
KBO 리그 30홈런-30도루 클럽에 두 번째로 가입하며 꾸준함을 과시했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습니다. 또한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로서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1998년, 다시 한번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역사상 유일하게 여러 번 이 기록을 달성한 선수로서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뛰어난 성적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며,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1999
[개인 최다 만루 홈런 기록 및 올스타전 홈런더비 우승]
한 시즌 개인 최다인 4개의 만루 홈런 기록을 세웠고,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9년, 한 시즌 동안 4개의 만루 홈런을 때려내며 개인 최다 만루 홈런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그의 클러치 능력과 장타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또한 KBO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2000
[30-30 클럽 세 번째 달성, 타점왕 및 올림픽 동메달]
KBO 리그에서 30홈런-30도루 클럽에 세 번째로 가입하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 해 타율 3할, 100타점까지 기록하며 타점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시드니 올림픽 야구 단체전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0년, 박재홍은 KBO 리그에서 세 번째로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더불어 3할 타율과 100타점까지 기록하며 타점왕과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같은 해 시드니 올림픽 야구 단체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2002
[올스타전 MVP 및 아시안 게임 금메달]
KBO 올스타전 MVP를 수상하며 축제의 주인공이 되었고,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 아시안 게임을 빛냈습니다.
2002년, KBO 올스타전에서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며 뛰어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자국에서 열린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이는 그의 세 번째 아시안 게임 메달이자 두 번째 금메달이었습니다.
2003
[KIA 타이거즈 이적 및 아시아 선수권 동메달]
KIA 타이거즈의 정성훈 선수와 현금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습니다. 이적 첫 해 0.301의 타율과 19홈런 14도루를 기록하며 중심 타선 역할을 수행했으며, 삿포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2년 시즌을 끝으로 2003년, KIA 타이거즈의 3루수 정성훈 선수와 현금을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습니다. 이적 첫 해에는 0.301의 타율, 19홈런, 14도루를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선으로 활약했습니다. 또한 삿포로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참가하여 단체전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2004
[부진 및 SK 와이번스 트레이드]
햄스트링 부상으로 프로 데뷔 이래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시즌 후 KIA 프런트와의 FA 관련 갈등으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었습니다.
2004년 시즌에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0.253의 타율을 기록하며 프로 선수 생활 이래 가장 낮은 성적을 기록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시즌 후 FA 계약을 둘러싸고 KIA 타이거즈 프런트와 갈등을 겪었고, 결국 SK 와이번스의 투수 김희걸 선수와의 1:1 트레이드를 통해 팀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2005
[KBO 최초 200홈런-200도루 클럽 가입 및 FA 계약]
KBO 리그 최초로 '200홈런-20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또 하나의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또한 8월 2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과감한 홈 스틸을 성공시키며 노련함을 보여줬습니다. 시즌 후 SK 와이번스와 최대 4년간 30억 원에 FA 계약을 맺었습니다.
SK 와이번스 이적 첫 해인 2005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200홈런-200도루 클럽'에 가입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그의 독보적인 호타준족 능력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기록이었습니다. 그 해 8월 27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프로 통산 19번째 홈 스틸을 성공시키기도 했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 SK 와이번스와 최대 4년간 30억 원(옵션 포함)에 FA 계약을 맺으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동메달]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가대표로서 마지막 국제대회 메달을 추가했습니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 단체전에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는 그의 마지막 아시안 게임 출전이자 메달 획득으로, 오랜 기간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국위를 선양했습니다.
2008
[두 경기 연속 만루 홈런 및 연속 안타 기록]
5월 28일부터 29일까지 프로 통산 3번째 두 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4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28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맹활약했습니다. 같은 해 올스타전 홈런더비와 G마켓 월드 홈런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8년 5월 28일부터 29일까지 프로 통산 3번째로 두 경기 연속 만루 홈런을 때려내며 뛰어난 집중력을 보여줬습니다. 이와 함께 4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28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며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했습니다. 그 해 KBO 올스타전 홈런더비와 G마켓 월드 홈런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홈런왕'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2009
[KBO 최초 250홈런-250도루 클럽 가입]
KBO 리그 최초로 '250홈런-250도루 클럽'에 가입하며 또 한 번 전인미답의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시즌 후 SK 와이번스와 총 8억 원에 FA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2009년 4월 23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250홈런-250도루 클럽'에 가입하는 대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그의 꾸준한 기량과 뛰어난 운동 능력을 상징하는 기록입니다. 시즌이 끝난 후, SK 와이번스와 계약금 4억 원, 연봉 4억 원 등 총 8억 원에 FA 재계약을 체결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2011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선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6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선수들의 권익 보호와 리그 발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1년 12월 9일,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6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선수 대표로서 선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프로야구 리그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는 그의 리더십과 야구계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2012
[KBO 리그 통산 300호 홈런 달성]
KBO 리그 역대 7번째로 개인 통산 300호 홈런을 달성하며 거포의 면모를 마지막까지 보여줬습니다.
2012년 10월 3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벤자민 주키치 투수를 상대로 KBO 리그 역대 7번째로 개인 통산 300호 홈런을 달성하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이는 그가 장타력에서도 리그 정상급 선수였음을 증명하는 기록입니다.
[KBO 리그 통산 3000루타 달성 및 마지막 경기]
KBO 리그 역대 5번째로 개인 통산 3000루타를 달성했으며, 이 경기가 그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되었습니다.
2012년 10월 6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이승호 투수를 상대로 KBO 리그 역대 5번째로 개인 통산 3000루타를 달성했습니다. 이 경기는 공교롭게도 그의 현역 마지막 경기가 되었으며, 대기록 달성과 함께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2012년 11월 25일, SK 와이번스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팀에서 방출당하게 됩니다. 현역 연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결국 팀을 떠나게 되는 아쉬움을 겪었습니다.
2013
[현역 은퇴 선언 및 해설가 데뷔]
현역 선수 은퇴를 선언하고, 이듬해부터 MBC 스포츠+ 야구 해설가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2013년 1월 24일,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선수로서의 빛나는 경력을 뒤로하고 2013년부터 MBC 스포츠+의 야구 해설가로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며 팬들에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2019
2019년부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기술위원회 의원으로 위촉되어 한국 야구의 미래를 위한 인재 발굴 및 전략 수립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선수와 해설가를 넘어 행정가로서도 야구 발전에 힘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