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수 (법조인)
법조인, 검사, 특별검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08:44
박영수는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검사로 재직하며 '강력통', '특수통'으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김대중 정부 사정비서관을 지냈으며,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로 임명되어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 규명에 중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검 활동 동안 다수의 인물을 구속 기소하는 성과를 냈으나, 2021년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 연루 의혹으로 특검직에서 사퇴하며 법조인 경력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1952
1952년 2월 15일 태어난 박영수는 훗날 대한민국의 검사이자 특별검사로 활동하며 법조계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1978
박영수는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사법연수원 10기로 수료했습니다.
1980
1978년 사법시험 합격 후 1980년 사법연수원 10기를 수료하며 검사 임용을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1983
박영수는 1983년 9월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검사로 임용되었으며, 이후 2004년 검사장으로 승진할 때까지 다양한 검찰 직책을 수행하며 강력통, 특수통으로 명성을 쌓았습니다.
2001
검사로 활동하던 박영수는 2001년 6월 김대중 정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으로 발탁되어 국정 운영에 참여했습니다.
2004
2004년 박영수는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검찰 내 주요 직책을 맡게 되었고, 법조인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받았습니다.
2005
박영수는 2005년 4월부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역임하며 '강력통', '특수통'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굵직한 사건들을 수사하고 지휘했습니다.
2009
박영수는 2009년 1월 15일 서울고등검찰청장 직을 끝으로 26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감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며 새로운 법조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압력으로 검사를 그만두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 임명]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특별검사로 임명되어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었다.
2016년 11월 30일, 박영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규명할 특별검사로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을 받아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수사 대상인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황교안 국무총리로부터 특검 임명장을 받았습니다. 이는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됨을 의미했습니다.
박영수 특별검사는 임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16년 12월 1일 윤석열 당시 대전고등검찰청 검사를 특검 수사팀장으로 지명하며,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철저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습니다. 이는 국민적 기대를 높이는 주요 인선이었습니다.
2017
[박영수 특검 활동 종료 및 수사 결과 발표]
90일간의 특별검사 활동을 마무리하며 문형표, 김기춘, 이재용 등 13명을 구속하고 총 30명을 재판에 넘기는 등 주요 성과를 발표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2017년 2월 28일까지 총 90일간의 수사 기간 동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습니다. 그 결과 문형표, 김기춘, 이재용 등 13명의 주요 인사를 구속하고, 이들을 포함한 30명을 재판에 회부하는 등 국정농단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다만, 삼성 관련 재판에서는 특검의 '정경유착' 주장이 2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석방되기도 했습니다.
2021
2021년, 박영수는 '가짜 수산업자' 김 모 씨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사회적 비판을 받으며 특별검사직에서 전격 사퇴하게 되었고, 이는 그의 법조인 경력에 큰 오점으로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