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길 (야구인)
야구인, 야구 감독, 해설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08:37
KBO 리그에서 보기 드문 성공적인 외야수 출신 야구 감독입니다.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태평양 돌핀스 세 구단의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확고한 야구 철학을 가졌으나, 선수단과의 잦은 불화로 인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감독직 외에도 야구 해설가, 스포츠 기자 등으로 활동하며 한국 야구계에 기여했습니다.
1941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을 역임하고 야구 해설가로도 활동한 야구인 박영길이 1941년 11월 5일에 태어났습니다.
1982
1982년부터 1983년 7월 5일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창단 감독을 맡으며 프로야구 감독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1983
1982년부터 이끌었던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에서 1983년 7월 5일자로 물러났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130경기에서 53승 76패 1무를 기록했습니다.
1984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 코치로 활동하며 선수들을 지도했습니다.
1986
1986년을 끝으로 삼성 라이온즈 타격 코치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삼성 라이온즈의 제4대 감독으로 1986년 11월 24일 부임하여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1987
김일융의 일본 복귀와 황규봉의 코치 승격 등으로 투수력이 붕괴된 삼성 라이온즈가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상대팀에게 스윕패를 당했습니다.
1988
1988년 플레이오프에서 3패로 탈락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성적 부진을 선수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하여 선수들의 집단항명 사태를 불렀습니다. 이 사건은 감독직 사임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삼성 라이온즈, 장명부 2군 코치 영입]
삼성 라이온즈가 투수력 강화를 위해 장명부를 2군 투수코치로 영입했습니다.
삼성 라이온즈는 투수력 강화를 위해 1988년 2월 16일부터 장명부를 1년 계약 형식으로 2군 투수코치로 영입했습니다. 이는 전년도 한국시리즈 스윕패의 여파로 보입니다.
선수들과의 불화로 인한 집단항명 사태 이후, 1988년 11월 15일 임기를 1년 남겨두고 삼성 라이온즈 감독직에서 중도 하차하게 되었습니다.
1989
1989년부터 1990년까지 MBC 프로야구 해설자로 활동하며 현장을 떠나 대중에게 야구를 해설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0
1990년을 끝으로 MBC 프로야구 해설자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시 감독직 복귀를 모색했습니다.
4년 임기 형식으로 태평양 돌핀스 감독에 1990년 11월 1일 부임하며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그러나 장명부 투수코치 영입이 구단 반대로 무산되고 기존 김성근 사단 코치진과의 불화가 예상되는 등 난항이 예고되었습니다.
태평양 돌핀스 감독 부임 후 1990년 12월 3일 기존 코치진 중 박용진 코치만 퇴진시키고 신용균 수석코치, 이선덕, 이홍범, 성기영 코치 등을 새롭게 보강하며 코칭스태프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1991
[태평양 돌핀스 감독직 중도 해임]
신용균 수석코치와의 불화로 계약기간 3년을 남기고 태평양 돌핀스 감독직에서 중도 해임되었습니다.
기존 '김성근 사단'의 일원인 신용균 수석코치와 불화를 겪었고, 이로 인해 전체 코칭스태프가 동요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1991년 10월 22일, 계약기간을 3년이나 남기고 태평양 돌핀스 감독직에서 중도 해임되었습니다.
1995
1995년부터 2003년까지 PSB TV 프로야구 해설자로 활동하며 팬들에게 야구 소식을 전달했습니다.
2001
2001년부터 스포츠서울의 객원기자로 활동하며 야구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칼럼을 독자들에게 선보였습니다.
2003
2003년을 끝으로 PSB TV 프로야구 해설자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2010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 해치 구단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구단 운영 및 전략에 대한 자문을 제공했습니다.
2011
2011년을 끝으로 서울 해치 구단 고문직에서 물러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