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충 (촉한)

무장, 군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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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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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 군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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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충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무장으로, 유비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출사했습니다. 제갈량의 남정 시 장가태수로 임명되어 반란을 진압하고, 비한족들을 복종시켜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이후 내강도독으로서 이민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월수군을 회복하는 등 남방 안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진남대장군, 평상서사 등 주요 직책을 역임하며 촉한의 핵심 인물로 활약하다 255년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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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효렴 천거 및 한창현장 승진]

외가에서 자라 호독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마충으로 개명했습니다. 건안 말년, 효렴으로 천거되어 한창현의 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어려서 외가에서 양육되어 호독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후에 마충으로 고쳤습니다. 마충은 군의 관리가 되었고, 건안(建安) 말년(220년 즈음)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며, 한창현(漢昌縣)의 장(長)으로 승진했습니다.

222

[유비의 재능 인정]

이릉 대전 패배 후, 유비가 마충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비록 황권을 잃었지만, 새로이 호독을 얻었소. 이것으로 세상에 현인이 부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소"라고 칭찬했습니다.

유비가 동오 정벌에 나섰다가 이릉 대전 참패하자, 파서태수 염지는 마충에게 병사 5천여 명을 징발하여 군사가 없는 곳을 보충시켰으며 마충을 파견하여 영안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선주(유비)는 벌써 영안으로 돌아와 있었고, 마충을 만나 함께 대화를 나누고는 상서령 유파에게 말했습니다. "비록 황권을 잃었지만, 새로이 호독을 얻었소. 이것으로 세상에 현인이 부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소"

223

[제갈량 문하독 임명]

제갈량이 승상에 오르자, 마충은 그의 문하독이 되어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건흥(建興) 1년(223년), 제갈량(諸葛亮)이 승상(丞相)에 오르자, 마충은 문하독(門下督)이 되었습니다.

225

[장가태수 임명 및 남방 반란 평정]

제갈량의 남정(南征) 시 장가태수로 임명되어 반란을 진압하고, 은혜와 신의를 보여 여러 비한족들을 복종시켜 탁월한 능력을 보였습니다.

건흥 3년(225년), 제갈량이 남쪽의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출진하였고, 마충을 장가태수(牂柯太守)로 임명하여 장가군(牂柯郡)을 토벌하게 했습니다. 마충은 군승(郡丞) 주포(朱褒)를 죽이고 반란을 평정한 뒤, 은혜와 신의를 보여 여러 비한족들을 복종케 했습니다.

230

[승상참군 임명]

승상참군에 임명되었으며, 장사 장완의 휘하에서 유부에 소속되었고, 치중종사도 겸임하며 행정 및 군사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건흥 8년(230년), 승상참군(丞相參軍)에 임명되었으며, 장사(長史) 장완(蔣琬)의 휘하에서 유부(留府)에 소속되었고, 치중종사(治中從事)를 겸했습니다.

231

[제갈량 북벌 참여 및 강족 평정]

제갈량의 북벌 시 중군에 임명되어 군사 업무에 종사했으며, 북벌 이후 장억과 함께 문산군에서 반란을 일으킨 강족을 평정했습니다.

건흥 9년(231년), 제갈량이 기산(祁山)에 이르자, 마충을 중군(中軍)으로 삼아 군사(軍事)에 종사하게 했습니다. 기산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장억(張嶷)과 함께 문산군(汶山郡)에서 반기를 들은 강족(羌族)을 평정하였습니다.

[내강도독 임명 및 유주 반란 진압]

이민족 수령 유주가 반란을 일으키자, 장익의 후임으로 내강도독에 임명되어 유주를 토벌하고 감군, 분위장군, 박양정후에 봉해졌습니다. 오지의 현으로 이전하여 월수군을 회복하는 등 남방 안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같은 해에 장익(張翼)이 내강도독에 임명되었으나, 법률을 엄격하게 집행하여 습속이 다른 민족의 환심을 사지 못했고, 결국 건흥 11년(231년) 이민족의 수령 유주(劉冑)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마충을 장익의 후임으로 삼았으며, 마충은 유주를 베어 감군(監軍) · 분위장군(奮威將軍)이 되었고, 박양정후(博陽定侯)에 봉해졌습니다. 건녕군(建寧郡)에서 태수를 살해하거나 오나라로 압송하는 일이 발생하자, 내강도독은 항상 안전한 현(縣)에 상주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충이 부임한 이후로는 오지의 현으로 이전하였고, 장억과 함께 월수군(越嶲郡)을 회복하였습니다. 그 공으로 안남장군(安南將軍)을 수여받았으며, 팽향정후(彭郷定侯)에 봉해졌습니다.

242

[진남대장군 임명]

중앙으로 들어가 한중에 주둔하고 있던 대사마 장완에게 칙서를 전달했으며, 진남대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연희(延熙) 5년(242년), 중앙으로 들어가 한중(漢中)에 주둔하고 있던 대사마(大司馬) 장완에게 칙서를 전하였으며,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이 되었습니다.

244

[평상서사 임명 및 수도 방어]

위나라 침공 시 성도에 남아 평상서사로 임명되어 수도 방어 및 행정 업무를 담당했으며, 비의가 돌아오자 다시 남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연희 7년(244년), 위나라가 침공해오자, 촉나라의 대장군(大將軍) 비의(費禕)가 군을 이끌고 출정하였습니다. 마충은 성도(成都)에 머무르며 평상서사(平尙書事)로 임명되었고, 비의가 성도로 돌아오자 다시 남방으로 옮겼습니다.

255

[사망]

연희 1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연희 18년(25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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