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초 (촉한)

장군, 군벌,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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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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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군벌,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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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삼국시대 촉한의 용맹한 무장이다. 서량 군벌 마등의 장남으로 세력을 이어받아 조조와 대립했으나 패했다. 이후 유비에게 망명하여 촉한의 표기장군으로 활약하며 이민족에게도 지지를 받았다. 뛰어난 무용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일족이 몰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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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마초 출생]

마초가 후한 우부풍 무릉현에서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이자 마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건장한 모습을 보였다.

마초는 후한 우부풍 무릉현(茂陵縣)에서 복파장군 마원의 후손이자 마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건장하여 장군으로서의 기질을 보였다.

200

[염행과의 일기토]

아버지 마등과 한수의 전쟁 중, 마초는 한수의 장수 염행과 일기토를 벌여 크게 다쳤다. 이후 사례교위 종요의 중재로 마등과 한수는 화해했다.

아버지 마등이 진서장군 한수와 전쟁을 벌이던 중, 마초는 한수의 명장 염행과 겨루었다. 염행이 모로 마초를 찌르려다 모가 부러지자, 부러진 모로 마초의 목을 가격하여 크게 다쳤다. 이후 사례교위 종요의 중재로 마등과 한수는 화해했다.

202

[곽원 토벌]

원담·원상 형제의 공격에 맞서 종요의 독군종사가 되어 곽원, 고간 토벌에 참여했다. 평양현 전투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분전하여 곽원을 격파하고, 부장 방덕이 곽원의 목을 취했다.

202년, 원담·원상 형제가 곽원과 고간을 보내 하동군을 공격하자, 마초는 종요의 독군종사로서 이들의 토벌을 도왔다. 평양현 전투에서 유시에 맞아 다리를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자루로 다리를 싸매고 분전하여 곽원군을 격파했다. 곽원의 머리는 마초의 부장 방덕이 베었다. 이 공으로 서주자사를 거쳐 간의대부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는 않았다.

208

[서량 세력 계승]

아버지 마등이 위위 직책을 받고 조정에 입조하자, 마초는 편장군과 도정후를 받으며 아버지의 세력을 물려받아 관서 지역을 통솔하는 독립적인 세력가가 되었다.

208년, 아버지 마등이 위위(衛尉)를 받고 조정으로 들어갔다. 마초는 편장군(偏將軍)에 도정후(都亭侯)를 받고 마등의 세력을 통솔하게 되었다. 동생 마휴와 마철도 업으로 이주하며 마초만이 서량에 남아 독자적인 세력가로 자리매김했다.

211

[조조에 맞서 동관 전투 시작]

조조가 한중으로 군을 움직이자, 관중십장과 함께 조조가 자신들을 노린다고 의심하고 동관으로 진군하며 조조에 맞서 대규모 전쟁을 시작했다.

211년 3월, 조조가 장로가 다스리던 한중으로 군을 움직이자, 관서의 세력가들이 조조가 자신들을 노리는 것이 아닌지 술렁였다. 마초는 한수를 설득하여 양추, 이감, 성의 등 관중십장과 함께 군을 일으켜 동관으로 진군하며 조조와의 대규모 전쟁을 시작했다.

[이간계로 인한 동관 전투 패배]

조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가후의 이간계에 빠져 관중십장 내부의 의심이 커졌다. 결국 조조군과의 회전에서 대패하고 서융으로 달아났다.

211년 9월, 마초는 조조군이 위수를 건너는 것을 저지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조조와의 강화 회담에서 가후의 이간계에 휘말려 한수와의 관계가 멀어졌다. 결국 조조가 벌인 회전에서 관서군이 대패하였고, 마초는 서융으로 도주했다.

212

[일족 200여 명 처형]

조조와의 전쟁 실패로 인한 죄에 연좌되어, 아버지 마등과 동생들을 포함한 일족 200여 명이 조조에게 처형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동관 전투에서 조조에게 대패한 이후, 마초의 아버지 마등과 동생 마휴, 마철 등 일족 200여 명은 조조의 죄에 연좌되어 212년 5월에 처형당했다. 이 소식은 마초에게 큰 충격과 깊은 복수심을 안겨주었다.

213

[서량 재기 및 기성 점령]

강족 등 이민족과 함께 농산 일대를 습격하여 다수의 군현을 호응시켰다. 기현을 포위하여 양주자사 위강과 태수를 살해하고 농우를 장악하며 정서장군을 자칭했다.

212년 혹은 213년, 마초는 강족 등 호인들과 함께 농산 일대를 습격하여 다수의 군현의 호응을 얻었다. 한중의 장로도 양앙을 보내 지원했다. 만여 명의 병력으로 기현을 포위하여 양주자사 위강과 태수를 살해하고 농우 지역을 장악했다. 이로써 마초는 스스로 정서장군 겸 병주목, 독양주군사를 자칭하며 다시 세력을 키웠다.

[양주 상실 및 한중 도주]

농우를 장악한 지 얼마 안 되어 양부 등이 반란을 일으켜 본거지 기성을 장악하고 마초의 처자를 살해했다. 이로 인해 마초는 모든 것을 잃고 한중으로 도주하게 되었다.

213년 9월, 마초가 농우 지역을 장악한 직후, 양부와 강서 등이 노성에서 반기를 들었다. 마초가 이를 진압하러 나간 사이, 양관과 조구가 본거지 기성을 장악하고 마초의 처자를 효수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마초는 할 수 없이 한중으로 도주했다. 도주 중 역성에서 강서의 어머니와 자식들을 살해하고 성에 불을 지르며 깊은 분노를 표출했다.

214

[장로 지원으로 기산 재공격 실패]

장로의 병사를 받아 다시 기산을 공격했으나, 하후연의 원군을 보고 싸우지 않고 철수했다. 장로와 불화를 겪으며 답답함을 느꼈다.

214년, 장로에게 의지하며 그의 딸과 혼인하려 했으나 무산되었다. 장로로부터 병사를 받아 다시 기산을 공격했지만, 하후연의 선발대 장합의 군세를 보고 싸우지 않고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장로의 장수들과 불화를 겪으며 장로에게 큰일을 이룰 수 없다고 답답해했다.

[유비에게 망명]

장로와 뜻이 맞지 않아 답답해하던 중, 성도를 포위한 유비에게 밀서를 보내 망명했다. 그의 합류로 성도는 유비에게 빠르게 항복했다.

장로와는 큰일을 이룰 수 없다고 여기던 마초는 유비가 성도의 유장을 포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유비에게 밀서를 보내 망명을 청했다. 무도군을 통해 촉나라로 들어갔고, 유비의 환영을 받으며 성도 아래에 주둔하자 성은 두려움에 떨며 얼마 안 가 항복했다. 유비에게 평서장군에 임명되고 남군 임저현을 수비하며 도정후 작위를 유지했다.

215

[가족의 비극과 방덕의 이별]

유비에게 망명한 후, 장로 세력에 남아있던 첩 동씨와 아들 마추는 조조가 한중을 정복한 뒤 각기 염포와 장로에게 하사되었다. 장로는 마추를 참수하고, 방덕은 조위의 장수가 되었다.

마초가 유비에게 망명한 이후, 그의 첩 동씨, 아들 마추, 부장 방덕은 장로의 세력에 남아 있었다. 조조가 한중을 정복하자, 방덕은 조조에게 귀순하여 조위의 장수가 되었고, 동씨는 염포에게 하사되었으며, 마추는 장로에게 하사되었다. 장로는 이후 마추를 참수했다. 방덕은 훗날 조위의 장수가 되어 촉한과 맞서게 된다.

217

[무도군 전선 참여]

장비 등과 함께 무도군 하변현으로 전진했으나, 이듬해 조홍에게 패하고 유비의 한중 전선에 합류했다.

217년, 마초는 장비, 오란, 뇌동과 함께 무도군 하변현(下辯縣)으로 전진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18년 조홍에게 패배하였고, 이후 유비의 한중 전선에 합류하여 활약했다.

219

[한중왕 유비의 사방장군 임명]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좌장군에 가절을 받아 관우, 장비, 황충과 함께 사방장군(오호대장군)의 한 명으로 임명되었다.

219년,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면서 마초는 좌장군에 가절(假節)을 받아 관우, 장비, 황충과 나란히 사방장군이 되었다. 이는 그의 군사적 지위와 유비 진영 내에서의 중요성을 공고히 하는 사건이었다.

221

[표기장군 승진]

표기장군으로 승진하고 양주목을 겸했으며, 태향후로 진봉되어 촉한 내 최고위직 중 하나를 맡았다.

221년(장무 원년), 마초는 표기장군으로 승진하고 양주목을 겸했으며, 태향후(斄鄕侯)로 진봉되었다. 이는 그가 촉한 내에서 최고위 장군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한다.

222

[마초 사망]

47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유비에게 사촌 동생 마대 등 남은 일족의 보살핌을 부탁하는 유언을 남겼다.

222년, 마초는 47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그는 유비에게 ‘가문의 제사가 끊기지 않도록 사촌 동생 마대 등 얼마 남지 않은 일족을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며, 멸족 위기에 처한 가문에 대한 애통함을 드러냈다.

260

[위후 시호 추증]

관우, 장비, 방통, 황충과 함께 위후(威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260년(경요 3년), 마초는 관우, 장비, 방통, 황충과 함께 위후(威侯)라는 시호를 받아 그의 공적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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