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가수)

가수, 배우, 트로트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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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21- 17: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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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배우, 트로트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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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트로트의 살아있는 전설, '트로트 황제' 남진은 압도적인 가창력과 무대 매너로 1970년대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가요계를 주름잡았습니다. 가수뿐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활약하며 다양한 재능을 선보였고, '님과 함께', '빈잔', '둥지'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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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트로트 황제 남진의 탄생]

대한민국 트로트 황제 남진이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포일보' 발행인이자 국회의원이었던 김문옥 선생이다.

목포 최고의 부잣집에서 4남 6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남진은 어린 시절부터 풍족하게 자랐다. 아버지는 목포일보 발행인과 제5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신익희, 조병옥 등 당대 거물 정치인들이 그의 집을 자주 찾았다. 하지만 남진은 아버지의 정치적 길보다 인기 배우의 꿈을 키웠다.

1962

[배우의 꿈을 향한 학업 시작]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우의 꿈을 위해 상경, 서라벌예술초급대학 미술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 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며 꿈에 한 발 더 다가섰다.

어린 시절부터 가수보다는 배우를 지망했던 남진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목포고등학교 졸업 후 상경했다. 서라벌예술초급대학 미술학과에 입학했지만 1학년 1학기를 중퇴하고 재수 끝에 1963년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며 배우의 길을 준비했다.

1965

[팝 가수로 데뷔]

한동훈 음악학원에서 트레이닝을 거쳐 '서울 플레이보이'를 발표하며 팝 가수로 데뷔했다.

배우 지망생이던 남진은 한동훈 음악학원에서 약 2년간의 트레이닝을 거친 후 '서울 플레이보이'를 발표하며 팝 가수로 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67

[트로트 전향, '가슴 아프게' 히트 및 배우 데뷔]

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트로트 곡 〈울려고 내가 왔나〉가 히트하며 트로트 가수로 전향, 박춘석 작곡의 〈가슴 아프게〉로 큰 인기를 얻었다. 같은 해 영화 《가슴 아프게》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데뷔 초 팝 장르로 활동했으나 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울려고 내가 왔나〉가 히트하자 트로트로 전향했다. 1967년에는 히트곡 메이커 박춘석 작곡의 〈가슴 아프게〉를 발표하며 대중에게 널리 이름을 알렸다. 또한 박상호 감독의 영화 《가슴 아프게》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의 활동도 시작했고, 영화 《그리움은 가슴마다》는 국도극장에서 10만 명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1968

[해병대 입대 및 베트남 참전]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중 해병대 청룡부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며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데뷔와 동시에 큰 인기를 얻었던 남진은 1968년 해병대 청룡부대(해병 2여단 2대대 5중대 2소대)에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1969

[부일영화상 신인상 수상]

제12회 부일영화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의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1969년, 가수 활동과 더불어 영화배우로서도 활발히 활동하던 남진은 제12회 부일영화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72

['님과 함께' 대히트 및 나훈아와의 라이벌 시대]

해병대 전역 후 〈마음이 고와야지〉를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고, 1972년에는 대한민국 가요계의 상징적인 명곡 〈님과 함께〉를 발표하며 가수왕 자리에 오르며 나훈아와 함께 1970년대 가요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71년 전역 후 〈마음이 고와야지〉를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한 남진은 서울시민회관 리사이틀 공연을 시작으로 복귀를 알렸다. 당시 정통 트로트로 인기를 얻던 나훈아와 가요계의 쌍벽을 이루며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1972년 발표한 〈님과 함께〉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며 남진을 톱 가수 대열에 확실히 올려놓았다. 호남 출신 남진과 영남 출신 나훈아는 대조적인 매력으로 1970년대 가요계를 양분하며 전성기를 누렸고, 이 시기 남진은 줄곧 가수왕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73

[MBC 10대 가수왕상 3년 연속 수상]

1971년부터 1973년까지 MBC 10대 가수왕상을 3년 연속 수상하며 1970년대 가요계 최고의 스타임을 입증했다.

1971년, 1972년에 이어 1973년에도 MBC 10대 가수왕상과 TBC 방송가요 남자 가수상 대상을 수상하며 당시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1976

[윤복희와의 결혼, 그리고 이혼]

1976년 가수 윤복희와 세간의 이목을 끈 결혼을 발표했으나, 3년 7개월 만인 1979년 가정폭력 연루 논란과 함께 이혼하며 가요계 주도권을 점차 내주게 되었다.

1976년 유명 가수 윤복희와의 결혼 발표는 당시 대중에게 엄청난 화제였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아 가정폭력 문제에 휘말리며 결국 1979년 3월 9일, 3년 7개월 만에 이혼하게 되었다. 이혼 이후 그의 방송 출연은 점차 줄어들었으며, 조용필 등 신예 가수들에게 가요계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1980

[정치적 탄압과 미국 이민, 재혼 후 '빈잔'으로 화려한 복귀]

1980년 신군부의 탄압으로 미국 이민을 선택, 재혼 후 잠시 공백기를 가졌으나, 1982년 귀국하여 '빈잔'을 발표하며 성공적인 재기에 성공했다.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가수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 시기 강정연과 재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몇 년간 미국에서 지내다 1982년 귀국했으며, 예상치 못했던 그의 복귀와 함께 발표한 정통 트로트 곡 〈빈잔〉은 크게 히트하며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이 곡은 3년여의 공백을 무색하게 할 만큼 그의 건재함을 알렸다.

1989

[조직폭력배 난투극으로 중상]

고향 목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던 중 조직폭력배와 난투극에 휘말려 중상을 입고 대수술을 받으며 긴 휴식기에 들어섰다.

1985년 가수 복직 후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자 고향 목포로 내려가 유흥업소를 운영했다. 1989년 11월, 유흥업소에서 조직폭력배와 난투극이 벌어져 중상을 입고 몇 차례의 대수술을 받게 되면서 다시 활동을 중단하고 긴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1993

['내 영혼의 히로인' 발표로 재기]

긴 휴식기 끝에 '내 영혼의 히로인'을 발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1989년 사건 이후 휴식기에 접어들었던 남진은 1993년 '내 영혼의 히로인'을 발표하며 여성 팬들에게 큰 성원을 받았다. 이 곡은 그의 재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1999

['둥지' 대히트, 제2의 전성기]

1993년 〈내 영혼의 히로인〉으로 대중적 인기를 다시 얻기 시작하여 1999년에는 대한민국 대표 히트곡 중 하나인 〈둥지〉를 발표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긴 휴식기를 거쳐 1993년 〈내 영혼의 히로인〉을 발표하며 여성 팬들의 많은 성원을 받았다.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7년 만에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고, 1999년에는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둥지〉를 발표하며 젊은 세대에게도 큰 사랑을 받으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2005

['저리가' 발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던 중 17집 앨범의 타이틀곡 '저리가'를 발표하며 팬들에게 변함없는 인기를 증명했다.

1999년 '둥지'로 큰 성공을 거둔 후에도 남진은 꾸준히 활동하며 2005년 17집 앨범의 타이틀곡 '저리가'를 발표했다.

2008

[초대 대한가수협회 회장 선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발전을 위해 초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3년간 가요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했다.

2008년, 남진은 초대 대한가수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약 3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이는 그의 음악적 위상뿐 아니라 가요계 전반에 대한 그의 헌신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나야 나' 발표]

새로운 매력을 담은 곡 '나야 나'를 발표하며 또 한 번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2008년, 남진은 18집 앨범의 '나야 나'를 발표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담은 음악을 선보였다. 이 곡은 대중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으며 그의 지속적인 활동에 힘을 실었다.

2009

[장윤정과의 듀엣곡 '당신이 좋아' 히트]

장윤정과 함께 '당신이 좋아'를 발표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인기를 과시하며 트로트계의 화합을 이끌었다.

2009년에는 트로트 후배 가수 장윤정과 듀엣곡 '당신이 좋아'를 발표하여 젊은 세대에게도 큰 사랑을 받으며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10

[데뷔 45주년 기념 음반 및 콘서트]

데뷔 45주년을 기념하는 음반을 발표하고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며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는 현역 가수임을 증명했다.

2010년, 가수 데뷔 45주년을 맞아 기념 음반을 발표하고 성대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2

[20집 앨범 '이력서' 발표]

그의 음악 인생 20번째 정규 앨범인 '이력서'를 발표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2012년, 남진은 20번째 정규 앨범인 '이력서'를 발표했다. 이 앨범은 그의 오랜 음악 활동의 기록이자 현재 진행형인 그의 음악 여정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2017

[은관문화훈장 수훈]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는 영예를 안았다.

2017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며 그의 음악적 업적과 대중문화 발전에 대한 기여를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2020

[트롯어워즈 트롯100년 가왕상 및 공로상 수상]

제1회 트롯어워즈에서 트롯100년 가왕상과 공로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트로트 황제'로서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고히 했다.

2020년에 열린 제1회 트롯어워즈에서 트로트 100년 역사에 빛나는 가왕상과 더불어 공로상까지 수상하며 대한민국 트로트계의 살아있는 전설임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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